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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타 가운데 한국인 귀화 1호
‘神의 손’ 선방 펼친 레전드 골키퍼
직업병 때문인지 일상의 완벽성 추구
17년째 지도자로 후학 지도에 열중
너무 사랑하는 한국에 뼈 묻을 작정
축구판에는 ‘신의손’이라는 말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손으로 결승골을 넣은 유명한 오심 사건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국내 프로축구에서 골키퍼로 ‘신(神)의 손’처럼 맹활약한 구 소련 연방인 타지키스탄 출신의 발레리 샤리체프가 한국인으로 귀화하면서 얻은 이름이다.
1990년대 K리그를 떠들썩하게 한 푸른 눈의 샤리체프는 30년째 한국을 떠나지 않고 한국 축구에 몸담고 있다. 그는 한국인으로 귀화하면서 팬들이 지어준 ‘신의손’이라는 별명을 한국명으로 쓰고 있다. 당시 그의 소속팀인 안양 LG 축구단 숙소는 경기도 구리의 챔피언스파크에 있었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구리 신씨’의 시조가 됐다. 당시 조광래 안양 감독(현 대구FC 사장)은 한국 귀화시험을 통과한 그에게 ‘신의손(申宜孫)’이라는 번듯한 이름을 선사했고, 샤리체프도 마음에 들어했다.
일화 천마의 K리그 첫 3연패 견인
신의손은 현역 시절 K리그에서 최약체로 꼽히던 일화 천마에서 골문을 지키며 당시 한 번도 이룬 적 없는 K리그 3연패를 일궈냈다. 혹독한 스파르타 훈련으로 유명한 ‘독사’ 박종환 감독이 이끌던 당시 일화에는 2018러시아월드컵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신태용, 고정운, 김경범 등 호화 멤버에다 신의손이 골문을 굳게 지켜 최강의 전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1992년부터 신생팀 일화 천마의 유니폼을 입고 한국땅을 밟은 그의 나이는 33살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미지의 땅에 발을 내디딘 셈이다. 포지션이 골키퍼였기에 가능한 나이였다. 당시 K리그에서는 외국인 용병 선수를 팀당 3명까지 보유할 수 있었으나 대부분 공격수가 주축을 이뤘고, 골키퍼로는 신의손이 처음이었다.
한국에 오기 직전에는 소련 리그 ‘올해의 골키퍼’로 선정됐을 정도로 이름을 날린 그였다. 소련에서 100경기 이상 무실점을 기록한 선수를 뜻하는 ‘야신 클럽’의 여덟 번째 회원이기도 했다. 그가 K리그에 온 것은 동기가 있었다. 한국보다 축구 선진국이었던 소련에서 우승 트로피, MVP 등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룬 상황이었다. 몸도 문제 없었고 새로운 도전이 재미있었다. 그는 우승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일화는 1989년 창단되어서 우승 경험이 전무한 약체 팀이었다. 신의손이 입단한 이듬해부터 일화는 K리그 3연패를 이룰 수 있었고, 그의 이름은 지가를 올렸다. 선수들은 팀내 최고령인 신의손을 ‘체프 형’이라 부르며 잘 따랐다. 당시 주장이던 신태용보다도 무려 열 살이나 많았던 체프 형이었다.
은퇴 위기에서 귀화해 그라운드 컴백
우승 DNA를 심어주고자 했던 신의손은 일화가 3연패한 1993~95년 3년 연속 팀 최소 실점인 0점대(0.87) 실점율을 기록했고, 그의 우승 열망은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AFC챔피언스리그의 전신)과 이듬해 아시안 슈퍼컵,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아프리카 우승팀과 대결)까지 이어졌다.
신의 손같은 그의 활약에 자극을 받아 1995년 K리그에는 각 구단들이 용병 골키퍼를 앞다퉈 영입하는 바람에 외국인 골키퍼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외국인 골키퍼가 리그를 장악하고 국내 선수 골키퍼의 경쟁력이 약해지면서 프로축구연맹은 97년부터 단계적으로 출전 제약을 뒀고 99년에는 외국인 골키퍼 영입 및 출전 금지 규정을 만들었다. 그렇게 강제 은퇴의 길에 놓인 그는 안양 LG에서 골키퍼 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년 뒤에는 어렵기로 소문난 귀화 시험에 합격해 당당히 한국인이 된 샤리체프는 한국인 ‘신의손’으로 새롭게 태어나 다시 그라운드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는 축구에 대한 열정과 한국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능했다. 복귀한 그 해에 팀의 우승과 함께 마흔이 넘은 나이에 골키퍼 부문 베스트 일레븐에 다시 이름을 올리는 업적을 거뒀고, 45세에 ‘레전드’로서 현역을 은퇴했다.
아직도 깨지지 않은 무실점 기록
신의손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무실점 기록을 K리그 역사에 새겨 놨다. K리그 통산 320경기 출전에 357실점을 기록한 신의손은 1993년 4월10일부터 8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웠다. 이는 28년째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하지만 그는 부산 대우 로얄즈와의 9번째 경기에서 종료 5분전 실점했고, 10번째 경기에서도 무실점으로 막았다. 당시 5분을 더 집중했더라면 10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웠을 것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팬들로부터 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욕을 먹는 자리다. 무실점으로 승리할 경우 골을 기록한 선수가 조명을 받기 마련이고, 질 경우에는 실점을 한 골키퍼를 탓하기 일쑤다. 이런 속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18살 때부터 마지막 포지션인 골문을 지켜온 그는 일상에서나 그라운드에서나 조심성과 완벽성이 몸에 배어 있다.
몇 해 전 방송에 소개된 그의 일상은 그의 성격 그 자체를 보여줬다. 외출 시에 소지품 확인은 기본이고, 수돗물은 잠겼는지, 현관문은 제대로 닫혔는지, 강아지 밥은 있는지, 전자 제품들은 모두 꺼져있는지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매일 매일 체크한다. 차에서 내리면 차문 4개를 모두 손으로 일일이 당겨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승용차가 주차한 곳이 어디인지 블록을 셀 정도로 꼼꼼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일종의 직업병이라 할 수 있다.
한국땅 30년째 이젠 어엿한 한국인
성실성 하나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그는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도 K리그 FC 서울, 경남 FC, 여자축구 대교 캥거루스, 부산 아이파크 등지에서 쉼 없이 골키퍼 코치로 후학들을 지도해왔고, 현재까지도 K3리그 김해시청에서 골키퍼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윤성효 감독을 도와 K3리그 원년 우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동메달을 따낸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표팀의 골키퍼 이범영 등 그의 제자 또한 적지 않다.
가족들은 모두 소련에서 태어났지만 딸과 부인은 국적이 타지키스탄이고, 아들은 미국이다. 한국땅에서 환갑도 넘긴 신의손은 이젠 ‘외국인 귀화 선수’가 아닌 ‘한국인’이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 선수단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대거 특별귀화시킨 선수들 상당수는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갔지만 신의손은 30년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17년째의 지도자 생활을 그만두더라도 축구가 좋고 한국을 너무 사랑하기에 한국에다 뼈를 묻을 작정이다. 코리안 드림을 이룬 한국인 신의손의 앞날을 열심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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