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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잠언 12 : 20>
흔히 인생 70세를 고희(古稀)라고도 한다. 당나라 ‘두보’의 곡강시(曲江詩)의 첫구 ‘인생칠십고래회(人生七十古來稀․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문 것이다)’에서 유래했다.
남북한이 70년 넘게 전쟁을 하지 않은 것은 드문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어찌 보면 전쟁의 부재를 뜻하는 ‘소극적 평화’에 가깝다. 이른바 평화체제가 정착돼 활발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는 ‘적극적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6․25 전쟁 발발 70년이 넘은 시점에서 과연 적극적 평화는 가능한지, 또 그러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에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또 종전선언을 꺼내들었다. 문 대통령은 베트남에 이어 아프간의 과정(평화협정- 미군철수- 패망)을 보면서도 종전선언을 고집할 것인가. 북한이 지금까지 미사일을 쏘아대면서도 남한을 넘보지 못한 것은 미군과 유엔군이 주둔하고 있어서다. 진정 종전을 생각했다면 앞서 현재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선교사와 납북어부, 그리고 국군포로 송환을 요구해야 했다. 납북자들을 송환하지도 못하는 종전은 아무 의미도 없다.
종전선언은 노무현-김정일 간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다루어진 바 있다. 당시 노 대통령 곁에서 이런 과정을 지켜본 청와대비서실장이 바로 문 대통령이다. 그런 문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올 유엔총회에서도 “종전 선언을 이뤄내면 비핵화 진전과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종전선언은 법적 구속력은 없는 정치적 행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이처럼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간 발언으로 미뤄볼 때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에 대해 평화협상을 끌어낼 요술 방망이로 착각하는 것 같다. 종전 선언으로 안보를 보장해 줌으로써 북한을 평화협상에 끌어내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엔 몇 가지 논리적 비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먼저 언급하자면 현 상황에서 종전선언이 이뤄지는 건 어렵다. 북한은 여전히 미국의 대북제재 철회를 요구하고, 미국은 의미 있는 비핵화부터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여정은 “조선반도에서 군사력의 균형을 파괴하려 들지 말라”고 요구했다. 종전선언을 하려면 먼저 대북제재를 풀고 비핵화를 포기하라고 주문한 셈이다.
이에 대해 미 국방부 대변인 반응은 냉정했다. “(미국은) 종전선언 논의에 열려있다”면서도 “다만 미국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다”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이 아닌 비핵화에 무게가 실려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에 뒤질세라 일각에서 북한 대변인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한국전쟁 종전을 선언하려면 대북제재를 풀어야 한다”며 “남은 임기 동안 현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덜 부담이 가는 남북·한미·북미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런 평행선이 계속되는 한 종전선언은 성사될 리가 만무하다. 만약에 우리 측이 모든 것을 양보하고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북한이 진정성 있게 대화에 응하며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는 보장은 없다. 실속만 챙긴 북한에게 또 이용만 당할 게 뻔하다.
아직은 종전선언 운운할 때가 아니다. 북한은 최근까지도 사거리 1500㎞에 달하는 준중거리 순항미사일과 열차발사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하는 등 연일 미사일을 영공에 발사하며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 운운하는 게 과연 적절하고 제 정신은 있는 것인가.
간첩죄로 복역한 자와 6․25전쟁에서 우리 국군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자를 존경한다는 문 대통령은 북한을 ‘주적’이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국방부 역시 국방백서에서 주적이란 단어를 뺐다. 또 최근까지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데도 국방부는 ‘도발’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군(軍)이 적(敵)이 없어지면서 군기가 해이해졌다. 통일부, 외교부, 국정원까지도 그렇다.
종전선언에 집착해있는 문 대통령에게 찬물을 끼얹는 미국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한․미)는 각각의 (종전선언) 조치를 위한 정확한 순서, 시기, 조건에 관해 다소 다른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종전선언을 집요하게 요구해온 한국 정부에 ‘협력한다’는 수준의 원론적인 입장만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번의 미국 입장은 상당히 달랐다. 종전선언을 하려면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조건이 일치하지 않으면 종전선언이 어렵다고 했다.
정부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4년 반 동안 줄기차게 종전선언을 추진해왔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또 종전선언을 촉구하면서 다시 불이 붙게 되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워싱턴을 방문, 미 정부 인사들과 종전선언에 관한 협의의 시간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정의용 외교부장관이 러시아 외교부장관에게 종전선언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미국이 아직은 종전선언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못 박으면서 문 대통령의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한미우호협회 주한미군사령부의 S 대령은 “미국은 70여년의 한미동맹의 끈끈한 관계를 지속시키고 싶어 하지만, 북한이 한미간에 이간질을 하고 있고, 이에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지나치게 공개적으로 추진하면서 한미동맹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사전에 한국과 미국이 조율을 통해 갈등을 줄여나가야 하는데, 한국 정부가 한미동맹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키려는 모습으로 비쳐져 안타깝다. 종전선언이 되면 북한은 미군 철수를 주장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한국은 아프간처럼 될 것이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S 대령은 “그러나 미국 정부가 그대로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종전선언이 선포될 경우, 미군 철수가 나오고 또 유엔군이 해체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전쟁이 재발할 경우 그때는 유엔군이 참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것을 문 대통령이 대신 해결해주려고 안달이다. 더구나 북한은 문 대통령에게 거침없이 막말을 하면서도 핵무장을 강화하며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남한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북한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는가.
한술 더 떠 북한은 종전선언을 하려면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북한이 말하는 적대정책 폐기는 한미연합훈련 폐지는 물론 유사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과 전략자산을 모두 거둬들이는 것을 뜻한다. 사실상 한미동맹을 와해시키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유엔군사령부의 존속에도 영향을 준다. 유엔사는 유사시 우리를 지원할 유엔군 증원 전력을 제공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한반도에선 큰 충돌은 없었다. 사실상 종전은 어떤 의미에선 이미 이뤄진 셈이다.
50년 안보리 결의로 출발한 유엔사는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고 한반도 평화를 회복하는 게 목표다. 종전선언이 이뤄질 경우 “한반도 평화가 이뤄졌다는데 유엔사가 왜 필요 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반박할 것인가. 더구나 유엔사가 해체되면 한국 방어를 위해 마련된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를 미군이 맘대로 쓸 수가 없게 된다. 문 정부는 이런 안보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무시한 채 종전선언에 매달리고 있다.
북한이 바뀌지 않는 한 종전선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한미동맹과 한반도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종전선언을 정권 말기에 추진하려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것이다. 종전선언이 아니라 강력한 국방력으로 북한 도발을 억제하고 차기 정부에 안정된 안보를 넘겨줘야 맞다. 그것이 문 대통령의 마지막 임무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처럼 북한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북 견제조치만 없애고, 이뤄지는 종전선언 얘기는 이제 더 이상 꺼내지 말고 당장 멈춰야 한다. 북한을 향한 종전선언에 더 이상 목을 매선 안 된다.
“일제 시절 태어나 공산치하에서 살며, 6․25전쟁도 겪었고, 또 군사독재도 겪어본 사람으로서 오늘의 한국을 보면 전쟁의 폐허에서 70여년을 쌓아올린 나라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나라 없는 설움으로 산 우리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있는 세대들과는 (달리) 남다른 애국심이 있다. 그 마음을 버릴 수 없어 이렇게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101세인 원로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피맺힌 고언(苦言)이다. 김 교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퇴행을 크게 우려했다. 특히 대통령은 물론 정치 지도자들에게 국제 감각이 너무 없는 것도 신랄하게 지적하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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