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건설할 돈으로 월세 지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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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임대주택 현실 직시해야

문용균 기자페이지 + 입력 2021-11-03 00:02:43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A씨는 쾌활한 성격인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의 변화를 느끼곤 ‘사춘기가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과 대화하던 A씨는 충격에 휩싸였다. A씨의 아들 입에서 나온 말은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반에서 놀림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아들은 반 친구들이 아들보고 ‘너 엘사냐, 휴거냐’라고 물어본다고 했다”며 “내 아들이 자기가 원치도, 의도하지도 않은 것 때문에 학교에서 무시 받는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나고 서럽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의 말을 듣고 정말 무리를 해서라도 ‘이 아파트를 벗어나야겠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많은 이들이 알겠지만 여기서 ‘엘사’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아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은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줄여서 엘사라 부른다. 동심(童心) 속에 남았어야 할 주인공이 친구를 조롱하는 말로 둔갑했다.

임대 아파트 거주자를 무시하는 말은 엘사가 처음은 아니다. LH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에 사는 사람을 비하하는 뜻으로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휴거(휴먼시아+거지)’란 말이 몇 년 전 유행처럼 돌기도 했다.

지난해 LH는 새 주택 브랜드 ‘안단테’를 출시했다. 아파트 품질을 민간분양 버금가는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임대주택이 아닌 공공분양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자조차 공공분양이 아닌 공공임대주택의 이미지 개선이 한계가 있음을 시인한 셈이다.

거주하면 무시 받는 공공임대주택, 기피 현상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LH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공공임대주택 공실은 3만3152호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종배 의원실은 3만호가 넘는 공실이 나온 이유가 시장 수요는 무시하고 공급건수 늘리기에 급급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입주한 건설형 공공임대주택 5만2484호 중 5642호가 미임대 상태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가 비싸단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공공임대주택은 지어질 것이다. 계획된 물량이 있기 때문이다. 여당 대통령 후보는 좋은 입지에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한 지 오래다.

중산층이 거주할 정도의 임대주택을 건설할 수 있을까. 단순히 주택 면적을 늘린다고 중산층이 주변의 차별 없이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급화도 넘어야할 산이 많다. 특히 고급화로 높은 임대료 책정이 불을 보듯 뻔 상황에서 주거 복지가 맞느냐는 논란에 직면할 수 있다. 그 정도 월세를 낼 능력을 가진 이들이 굳이 임대 아파트에 들어갈까.

만약 어떻게든 공급을 한다고 해도 분양 가구와 임대 가구를 섞은 ‘소셜믹스’라는 아파트만 봐도 누구나 알아챌 수 있게 지어져 같은 단지 안에서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 대놓고 건설한 임대단지에서 제2, 제3의 엘사가 나오지 않을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이름을 바꾸고 내실을 다진다고 해도 민간 아파트를 넘어서긴 어렵다.

안타깝지만 사는 곳이 나의 얼굴이 되는 현실에서 당장 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공공임대주택은 공급하되 민간이 참여하는 공공분양 형태가 돼야한다. 그 수는 많을 필요가 없다.

또한 주거 복지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임대주택을 짓지 말고 취약 계층이 스스로 거주지를 택하도록 하고 적잖은 비용을 지원해 주는 형태가 이상적으로 보인다. 집주인조차 이 사람이 정부에게 월세 지원을 받는 대상자임을 모르도록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만약 이런 식이 어렵다면 집주인에게 세금 혜택 등을 부여하고 임대료 인상폭을 제한할 수도 있겠다.

이미 지어진 공공임대 아파트는 민간 건설사가 참여하는 재건축 혹은 리모델링을 적극적으로 진행해 새 아파트로 탈바꿈 시키고, 지방에 있는 ‘주공’아파트들은 주거 기능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고 무시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겠지만, ‘엘사’, ‘휴거’란 말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해외 사례를 보고 생각한 이런 대안이 아닐지라도 정치권에선 임대 아파트 거주자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

문용균 ykmoo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