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주 
/임성근 전 판사 탄핵심판, 헌재 다수의견 각하로 결정
/탄핵 주도 이탄희 의원, ‘법기술적 결정’이라며 맹비난
/다수의견, 이미 예견된 결론을 56p분량으로 상세 설명
/별 논증없이 ‘중대 법 위반’ 인정 소수의견도 존중해야
/헌정질서 무시한 이탄희 의원의 헌재 비난 매우 부적절
10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임성근 전 판사에 대한 최초의 법관 탄핵심판을 5명의 다수의견으로 ’각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헌법과 법률상 탄핵심판은 해당 공직자를 ’파면‘하는 것에 그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임성근 씨는 탄핵소추가 의결된 지 20여일 뒤에 임기 만료 퇴직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파면을 목적으로 하는 탄핵심판 자체가 부적법해져 결국 각하로 끝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됐었다.
그런데 탄핵을 주도했던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다수 의견 재판관이 본안 판단을 회피했다”, “극히 유감이다”, “국회는 헌법재판소에 헌법 수호 기관의 역할을 요구했는데 다수 의견은 법기술자적인 판단에 그쳤다”고 맹비난했다. 같은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를 ‘법기술자’라고 비난한 것은 매우 과하지만 일단 정말 ‘법기술적’ 결정인지가 궁금했다.
아직 결정문이 공개되지 않아서 보도자료를 살펴봤는데 총 21p 중에 다수의견은 10p, 소수의견은 5p 분량으로 소개하고 있다. 실제 결정문에서도 다수의견 분량이 2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겨레신문의 보도(2021. 10. 30자 “재판개입 임성근에 헌재는 ‘백지답안지’를 냈다”)에 의하면 54p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결정문이 89p였던 것과 비교하면, 탄핵 심사를 할 수 없는 이유를 석사급 논문 분량인 54p로 설명했다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꽤 성의를 표시한 것으로 평가될만하다. 청구를 ‘각하’한다고 간단히 끝낼 수도 있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재판관 중 1인은 각하도 아닌 ‘심판절차종료’ 의견을 냈다. 다수의견을 짧은 지면에서 소개하기도 어렵지만 필자가 읽어보니 참 재미가 없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쓴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수의견도 읽어 봤다. 실정법의 한계를 넘어 헌법 위반을 선언한 것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필자는 임성근 판사 탄핵사유에 실정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려는 의도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재판 관여라는 사실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과연 재판의 ‘독립’이 침해되었는지를 헤아려 달라는 칼럼(2월 10일자. “임성근 판사를 위한 변명”)을 쓴 적이 있었다. 실제 사유를 보면 대단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수의견을 평가하려면 탄핵 사유를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총 3가지였는데 하나는 메이저리거 오승환 선수의 도박사건이었다. 검사가 700만원 벌금형을 청구하며 사안이 가벼워 재판을 열 필요도 없다고 보아 약식기소한 것을 담당판사가 굳이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재판이 열리면 오승환의 메이저리그 복귀는 무산되고 한국 야구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KBO의 로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형사수석이었던 임성근 씨가 담당판사에게 주변 다른 판사들 의견을 좀 더 들어봐 달라고 권유하였고 그 판사는 주위 의견을 들은 후 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벌금만 1000만원으로 올려 결정했다. 순전히 절차에 대해 관여했는데 만약 담당 판사가 그대로 정식재판에 회부했으면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망신 줬다고 법원이 비난받았을 사안이었다.
또 하나는 쌍용차 관련 집회에서 민변 변호사들이 현직 경찰의 팔을 붙잡고 20m를 끌고 가다가 상해를 입힌 사안이었다. 민변 변호사들이 피고인이라서 판결을 두고 논란이 생길 수 있을 사안이었다. 그래서 임성근 씨가 판결의 결론도 아니고 양형 이유 부분에서 논란의 소지 있을 표현을 ‘톤다운’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판사가 표현을 수정했는데 결과적으론 민변 변호사들에게 유리했다. ‘분노와 공격적 태도’, ‘범죄에 해당한다고 섣불리 단정’ 같은 꾸짖는 표현이 다 빠지고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 발생한 것이므로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무색무취하게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민변과 협조적 관계인 민주당이 이 정도를 문제 삼는 이유가 잘 납득되지 않는다.
결국 핵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오보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기자에 대한 명예훼손 재판 개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기사는 한국의 여성대통령이 국민 몇 백 명이 물에 빠져 죽는 시간에 호텔에서 남자를 만나 연애질을 했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매우 치욕적인 것이었다. 아무리 우리 대통령이 밉다고 일본의 극우신문 기자에게 허위사실로 모욕당하는데 참고 있어야 하는가. 가토는 언론자유라며 취재원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외교문제도 있었고 결국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이 재판 처리를 두고 법원행정처와 청와대 민정수석실 간에 의견 교환이 있었고 윗선의 주문을 임성근 씨가 재판부에 전달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러나 탄핵소추안에도 적시된 임성근 판사의 요청은 ‘유무죄는 알아서 하겠지만 허위인 점은 밝혀줘야’, ‘대단히 미안하지만’ 같이 조심스럽고 정중했다. 그래서 외형상 개입은 있었지만 결론을 바꿔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그 동기도 충분히 참작할만 했다. 재판부도 이견 없이 수용했기 때문에 재판의 ‘독립’이 침해됐다는 사실관계는 보이지 않는다.
헌재 소수의견은 이를 헌법과 법률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보았던 것인데 그 이유를 보면 과연 헌법재판관이 쓴 것인지 의심가게 할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우선 탄핵심판의 대상은 공직자가 ‘직무집행에 있어서’(직무관련성) 한 행위이기 때문에 일단 그 공직자의 정당한 직무 범위에 드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대법원장이라고 해도 남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정당한 업무에 들지 못한다. 그래서 예전에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에서 대검공안부장이 자기 후배인 조폐공사 사장에게 어떤 주문 전화를 했지만 무죄가 선고됐었다. 아무리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검공안부장이라도 조폐공사의 일은 자기 업무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실 직무 권한 내의 행위이냐는 직권남용 사안에서 제일 중요하게 다퉈지는 쟁점인데도 소수의견은 형사수석부장이라는 ‘기회’에 한 행위라서 ‘사실상’ 다른 법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고 하면서 별다른 논증도 없이 기존 결정례도 무시해 버리고 이 쟁점을 넘어가 버렸다.
‘중대한’ 위반인지와 관련해서도 외부의 개입을 차단해야 할 책무가 있는 수석부장이 오히려 반복적으로 재판에 개입하고 요청사항이 판결에 그대로 반영된 외관이 있다는 이유로 인정해 버렸다. 나아가 아무 근거도 없이 형사수석부장에게 외압을 차단할 의무까지 있다고 전제했다. 수석부장이 관행상 사건배당, 공보를 맡고 법원장의 법관 평정 업무도 보조한다지만 법원조직법상으로는 법원장 유고시 대행자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사실 임성근 씨의 영향대로 판결이 고쳐졌다면 임성근이 아니라 그 판결을 한 판사들부터 탄핵소추 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헌법은 법관을 대법관과 그냥 ‘판사’로만 구분하지 부장판사를 달리 구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관의 독립이란 ‘판사’ 개개인의 의무이지 상급자가 하급자도 외압에서 지켜줘야 한다는 해석이 도출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헌법에서 신분까지 보장해 준 법관의 독립을 그 법관 스스로 지켜야지 누가 지켜준다는 말인가. 그래서 필자는 다수의견이 아니라 소수의견이 오히려 법기술자적인 판단 아니냐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의문을 거두어야 한다. 최고 헌법재판기관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논란을 끝내는 방법이고 그게 바로 헌법정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탄희 의원이다. 그야말로 법기술자 아닌가 싶다. 판사 출신으로 실정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의원이 개인도 아니고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서, 같은 헌법기관을 ‘법기술자’라고 매도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탄핵 사유의 유무와 별개로 헌정질서 자체에 대한 모독이고 이 정도면 의원 ‘제명’ 사유에도 해당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의원 제명은 헌법 개정과 동일하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므로 통과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의원에게 묻고 싶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헌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니 그에게 제명사유가 있음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일단 제명 안건이 상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해도 수용할 의사가 있는지를. 만약 제명안이 부결되면 소수당(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제명에 찬성했는데도 헌법수호기관이 되어야 할 다수 집권당이 내 편이라는 이유로 정파적인 표결을 했다고 비난해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지 말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3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