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건축, 그리고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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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이의 도시인문학

삶을 짓는 건축, 그리고 건축가

빈민촌과 건축을 연구, 제안하는 어반 씽크 탱크 건축스튜디오
건축가 없는 건축, 어려운 생활 조건에서 건축의 가능성 모색
삶의 의미와 공간 역할에 질문하는 건축가의 역할-소명 필요

유영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1-11-10 09:53:36

건축(archtecture)의 어원은 그리스어 짓는 이를 뜻하는 테크톤과 수장을 뜻하는 아키가 결합한 ‘arkhitekton’에서 비롯된 건축가(architect)라는 행위자에서 출발했다. 우리말의 건축(建築)이 건축가를 품고 있지 않기에 영어의 architecture와 architect의 관계처럼 행위에 주목하는 시각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건축이 그 유래 안에서 명사가 아닌 동사로서 주목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출생신고를 마친 갓난아이처럼 건축물은 준공이 된 후 비로소 제도적 존재성을 갖는다. 건축물은 들어설 장소의 맥락을 보고 장소 안에 물질적으로 놓인다. 한데 준공도 아닌 완공을 하지 못한 건물이 있다. 공사 대금과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에 얽혀 제도적인 건축물로도 존재하지 않는 구조물,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빈민가라는 별명을 가진 45층의 토레 다비드(Torre David)의 이야기다. 지어졌지만 지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이 모순적인 대상에서 건축가는 찾아볼 수 없다. 생존을 위해 붉은 벽돌과 버려진 산업 구조물로 스스로 주거지를 지어낸 치열한 삶의 현장만이 존재할 뿐이다.

건축가 없는 건축물. 그들의 구축적 행위를 흥미롭게 바라본 건축가들이 훗날 토레 다비드를 건축물이 아닌 하나의 현상으로서 건축계에 끌어들였다. 스위스의 건축그룹 Urban Think Tank(U-TT)는 건축가 없이 탄생한 이 건축 현상에 주목했다. U-TT는 토레 다비드를 주제로 전시하여 2012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했다.

▲ 토레 다비드. 주민들은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붉은 벽돌을 사용해서 만든 입면을 만들었다. ©wikimedia commons

토레 다비드의 입주민들은 입면이 부재한 건물에 벽돌을 쌓거나 부자재를 이어 공간을 만들고 통행이 불편한 지역은 벽을 뚫어 길을 만들었으며 기둥과 기둥을 기준 삼아 세대별 공간을 규정지었다. 수도와 전기 공급을 위한 선을 건물 전체에 연결하여 관리하고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는 등 그들의 행위는 건축의 물질적, 비물질적 영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건축가는 마치 한 문화권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처럼 현상을 탐구하고 분석한다. 실제 U-TT는 현장 연구를 통해 건물 입면을 활용한 에너지 생산 시스템을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거주자들의 불법 점유와 제안 실현을 위한 자금 조달, 허가 등 현실적 제약으로 건축가는 관찰자와 제안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빈민촌의 도시와 건축적 현상에 주목하며 이 시대, 혹은 미래 건축가들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부를 위한 도시와 건축, 그리고 소외된 빈곤 지역을 더욱더 극단적이게 만드는 현실 또한 도시의 발전과 세계화가 만들어 낸 사회적 지형이라고 이야기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구축해낸다.

대표적 작업인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시의 차카오 지구 내 수직적 운동장(Vertical Gym) 또한 그들이 빈민가에 제시하는 대안이다. 빈곤이라는 지형의 경제적 위상이 건축물의 구축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제적, 또는 자연재해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위험성 등 거주 불안정성이 차카오의 장소성을 더욱 견고히 만들어준다. 소위 스타 건축가들의 보편적인 건축물은 이곳에 경제, 구조, 환경의 현실적 이유로 조성이 어려우며 결국 빈민들의 삶의 지평 위에 타당한 지역적 건축이 들어서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버티컬 짐 차카오(Vertical Gym Chacao). 여러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운동 시설을 다양한 운동장의 적층이라는 모델로 구현했다. ©urban think tank

빈민가의 땅은 생존으로 치열하다.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생존(labor)의 아우성의 틈 사이에 스스로의 터전을 일구어낼 작업(work)의 환경으로서의 건축이 필요하다. 따라서 커뮤니티를 위한 시설이 들어설 면적은 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여유롭지 못하다.

적은 면적과 예산을 조건으로 해야 하는 환경에서 U-TT는 적층이라는 해결책을 찾았다. 수직적 도시에 대한 열망은 세계화나 보편주의 건축 안에서 논의되는 편리성과 효율과는 다른 맥락에서 도출된다. 생존을 위해 붉은 벽돌로 직접 집을 짓는 베네수엘라의 빈민가에서 적층은 범접할 수 없는 건축의 기술이지만 건축가가 제시할 수 있는 적층의 의미는 기술 그 이상이다. 이곳에서 U-TT는 피난처 이상으로 사회와 커뮤니티를 짓는 건축물을 제시했다.

교육받고 훈련된 전문 건축가 없이 재료와 구조, 또한 운영 시스템으로까지 커뮤니티에서 자체적으로 고안된 토레 다비드, 적은 면적의 땅에 필요한 공공시설을 도입한 수직적 운동장은 건축물이 아닌 건축 현상으로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함께 생산해 내는 과정으로서의 U-TT의 작업은 우리에게 건축이 단순한 구축 행위의 결과물이 아닌 지어진 방식과 인지, 경험되는 방식으로까지 확장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건축가 없는 건축, 설계하지 않고 건축을 현상으로서 탐구하는 건축가, 실현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건축가. 변화하는 시대에 다양해지는 건축가의 역할, 그리고 나아가 건축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끌어낸다. 일하고 거주하는 삶의 공간을 짓는 건축이라는 행위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삶이 건축을, 건축이 삶을 따르는 이 시대 공간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어져야 하겠다.

유영이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