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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아티스트의 외모나 실력만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넘어 스토리 요소를 부각한 세계관 마케팅이 부상하고 있다. 세계관을 통해 본인만의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팬덤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세계관을 바탕으로 음악 산업 외에 다른 분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다만 아이돌 세계관이 대세가 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새어나오고 있다. 아이돌 세계관은 처음에는 매력적인 소재였지만 너도 나도 세계관을 들고나오면서 신선함이 사라졌다는 우려섞인 반응도 나온다.
세계관 통해 다른 아이돌과의 차별점 확보…팬덤 결집력 강화 효과도
세계관은 현실 세계와 다른 사건 또는 요소들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일관적인 설정을 가진 가상 세계를 의미한다. 만화,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유의 개성적인 설정을 가진 세계관을 보유하고 있다.
아이돌 산업은 세계관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업계 중 하나다. 최근에 데뷔하는 아이돌은 대부분 그룹의 색깔을 나타내는 고유한 세계관을 보유하고 있다. 유수의 해외 언론이 K-POP 열풍에 대해 분석하면서 K-POP 아이돌만의 특색으로 세계관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룹 홍수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아이돌이 데뷔하는 상황에서 매력적이고 독창적인 세계관은 다른 그룹과의 차별점으로 작용한다.
세계관 열풍의 시초는 2012년 데뷔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EXO(엑소)로 알려졌다. 엑소 태양계 외행성을 뜻하는 엑소플래닛(exoplanet)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름이다. ‘미지의 세계에서 온 새로운 스타’라는 뜻으로 기억과 초능력을 잃고 지구에 온 외계인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다.
엑소 멤버 각각이 가진 빛, 불, 바람, 물 등의 초능력은 안무, 노래가사, 뮤직비디오 등에 등장하며 엑소의 무대에 세계관을 녹여냈다.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시도였기에 처음에는 반발과 조롱도 있었지만 엑소가 인기를 얻으면서 엑소 세계관 또한 ‘엑소학’이라는 용어가 새로 생길 정도로 광범위하게 소비됐다.
지난해 11월 데뷔한 aespa(에스파)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가수와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가 소통하고 교감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에스파는 이러한 세계관에 따라 실제 멤버 4명 외에 4명의 AI 멤버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에스파는 ‘블랙 맘바’, ‘넥스트 레벨’ 등의 앨범에서 에스파와 아바타의 연결을 방해하는 블랙맘바를 찾기 위해 광야(KWANGYA)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SM 엔터테인먼트는 개별적인 설정에 그치지 않고 SM 소속 아티스트들의 콘텐츠를 하나로 연결한 통합 세계관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이성수 SM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지난 25년 동안의 모든 에스엠 아티스트들이 연결되는 시공간을 초월한 넓은 콘텐츠 세계를 선보이려고 한다”며 “SMCU라는 SM만의 메타버스, 케이팝을 가장 케이팝답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IP로 확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스타로 떠오른 방탄소년단도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그룹 중 하나다. 방탄 소년단 멤버들은 학교 3부작, 청춘 3부작, Love yourself 시리즈 등을 거치며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고 소년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에는 멤버들의 외모와 실력 외에도 ‘방탄소년단 유니버스’의 힘도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이돌 세계관은 팬들에게 아티스트의 무대나 외에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연예 기획사는 무대나 뮤직비디오, 세계관 영상 등에 세계관을 암시하는 ‘떡밥’을 숨겨 놓는다. 팬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활동이 없을 때도 세계관이 담긴 상징을 찾아보며 숨은 의미를 찾아내고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며 세계관을 즐긴다.
아이돌 세계관은 아이돌 문화를 단순하게 가수의 노래를 보고 무대를 즐기는 것을 넘어서 세계관이 품고 있는 의미를 공유하고 같이 해석해 나가는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더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팬덤의 결집력을 증대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일반인은 알아볼 수 없는 세계관적 상징을 소비하면서 아이돌과 연결돼있다는 느낌을 받고 팬덤의 소속감도 커진다.
각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을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세계관을 정리해 설명하고 관련 영상 등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그룹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와 컨셉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고 아이돌 그룹에 ‘입덕(어떠한 그룹의 팬덤이 되는 것)’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기획사들이 세계관을 담당하는 스토리텔링 팀을 따로 운영하는 등 세계관 형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며 “다른 아이돌과의 차별화, 팬덤 충성도 강화 등을 위해 아이돌 세계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음악 산업 넘어 종합 콘텐츠 진출…‘세계관 홍수’에 반발 목소리도 제기
아이돌 세계관은 가요계를 넘어 웹툰, 드라마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2019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는 방탄소년단의 LOVE YOURSELF 앨범 시리즈에 동봉돼있던 ‘화양연화 더 노트’의 내용을 웹툰화한 ‘화양연화 pt.0’를 연재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세계관을 담은 드라마 ‘유스(YOUTH)’를 제작하기도 했다.
FT아일랜드, 씨엔블루 등을 배출한 연예 기획사 FNC 엔터테인먼트는 신인 그룹 ‘피원하모니’의 데뷔를 앞두고 ‘피원에이치 : 새로운 세계의 시작(피원에이치)’이라는 영화를 내놓았다. 피원에이치는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다른 차원에 흩어진 멤버들이 희망의 별을 찾기 위한 여행을 다루는 영화로 그룹의 색깔과 세계관을 영화에 담았다.
아이돌 세계관이 다른 분야로 확장하면서 아이돌 세계관이 음악 산업에 그치지 않고 보다 폭넓은 콘텐츠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가 대세가 되면서 경쟁력을 갖춘 IP(지적재산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상황에서 아이돌 세계관이 IP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평가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아이돌 그룹이 자신을 대중에게 콘텐츠로 내놓을 수 있는 영역에서 세계관은 스토리텔링 콘텐츠적인 측면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며 “아이돌 가수들은 세계관을 통해 다른 팀들과의 차별성을 만들고 음악적인 외적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돌 산업의 세계관 활용에 반감을 가지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 언급한 방탄소년단 세계관 드라마 ‘유스’는 팬들의 반대로 인해 촬영이 중지됐다.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는 드라마에 멤버들의 실명이 그대로 사용되는 것에 반발했다.
드라마 내에서 음주, 방화, 살인 등 자극적인 설정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세계관을 잘 알지 못하는 대중이 현실과 픽션을 혼동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이브와 드라마 제작사는 극 중 역할명을 바꿔 다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돌 산업에 세계관 열풍이 불면서 아이돌 세계관이 참신함을 잃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세계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 없이 유행 따라가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세계관에 관심이 없는 팬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한 아이돌 팬은 “자연스럽게 녹여내면 모르겠는데 뜬금없이 잠깐 집어넣고 이건 사실 세계관이다라는 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제대로 하지 못할 거면 그냥 세계관을 도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아이돌 팬은 “단지 멤버들이 좋고 무대가 좋아서 아이돌을 좋아하게 됐고 그런 사람이 많은데 굳이 세계관을 집어넣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그런 거 할 시간에 멤버들 케어 잘해주고 앨범이나 빨리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최근 아이돌들의 ‘세계관 홍수’에 대해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기획사들이 아이돌을 제작하면서 세계관에 너무 집착해 아티스트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평론가는 “세계관을 도입한다고 해도 매력적이고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무턱대고 어렵고 심오한 세계관을 들이대는 것은 역효과가 될 수 있다”며 “음악 산업에 있어서 음악과 아티스트가 주가 되고 세계관은 부가 돼야 하는데 요즘에는 주객전도가 된 경우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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