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씨왕조 벌휴왕과 지진내례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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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씨왕조 벌휴왕과 지진내례여왕

벌휴왕을 후계자로 지목한 지진내례여왕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1-11-17 10:28:00

신라 9대 벌휴왕은 석씨왕조의 실질적인 시조이다. 선조 석탈해는 벌휴왕이 즉위함에 따라 신라 4대왕으로 편입되며 또한 3성(박·석·김)시조로 당당히 자리매김한다. 벌휴왕은 5대 파사왕 계열의 박씨왕조를 중단시키고 석씨왕조를 출발시킨다.

부계혈통의 기록상 차이점

벌휴왕의 부계혈통은 기록마다 약간의 차이가 난다. 『삼국사기』에서는 석탈해의 아들 각간 구추(仇鄒)이고(석탈해-구추), 『신라사초』는 석탈해의 손자 갈문왕 석추(昔鄒)이다(석탈해-석추). 구추의 아들이 석추이다. 그런데 『고구려사략』은 『삼국사기』와 마찬가지로 구추로 설정하되 구추를 석탈해 아들이 아닌 다파나국의 시조인 협보(陜父)의 아들로 설명한다(협보-구추).

기록마다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석탈해와 협보는 혈연적 특수관계이다. 고구려 개국공신 협보는 고구려에서 쫓겨나면서 처조카인 석탈해와 동행한다. 이후 협보가 일본열도로 건너가 다파나국을 건국하자 협보의 양자에 입적된 석탈해는 다시 한반도로 건너와 경주에 입성해 석씨시조가 된다. 이런 까닭으로 고구려인의 시각이 반영된 『고구려사략』은 협보와 석탈해를 동일시해 구추를 협보의 아들로 설정하며, 신라인의 시각이 반영된 『신라사초』는 구추는 별개로 하고, 아들 석추를 벌휴왕의 부계혈통으로 정리한다. 다만 『삼국사기』의 ‘석탈해-구추’ 설정은 『고구려사략』의 ‘협보-구추’와 『신라사초』의 ‘석탈해-석추’를 절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모계혈통은 지진내례

다음은 벌휴왕의 모계혈통이다. 어머니는 지소례(박씨) 갈문왕의 딸인 지진내례(只珍內禮)이다. 원래 지진내례는 7대 일성왕의 왕비이다. 일성왕(박씨)과 사이에 8대 아달라왕을 낳고, 또 석추갈문왕(석씨)과 사이에 벌휴왕을 낳는다. 지진내례는 박씨와 석씨의 공통분모이다.

이는 어찌된 연유에서 벌어진 일일까. 신라는 독특한 체제의 왕조국가다. 고구려와 백제가 남왕(男王) 중심의 단일지배체제라면 신라는 남왕과 여왕의 공동지배체제다. 『삼국사기』〈시조 혁거세 거서간〉편에 ‘이성(二聖·2명의 성인)’의 표현이 나온다. 이는 건국 당시의 정치상황을 반영한다. 진한 6촌은 외부인 박혁거세를 남왕으로 추대하면서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대변할 수 있는 알영을 여왕으로 지명한다. 이런 연유로 알영은 박혁거세의 ‘난생신화’ 못지않은 ‘용신화’를 가진다. 신라가 27대 선덕여왕을 배출한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시 여왕은 지진내례이다. 지진내례는 일성왕과 석추갈문왕을 남편으로 삼으며, 또한 아들 아달라(박씨)와 벌휴(석씨)를 차기 왕으로 지목한다. 아달라왕과 벌휴왕은 아버지는 다르나 어머니가 같은 동모(同母)형제이다. 특히 『신라사초』에는 지진내례가 아달라왕에게 차후 보위를 벌휴에게 물려주라고 유언한 내용이 나온다. ‘(벌휴가) 장성하자 풍성하고 아름다우며 덕이 있어 많은 사람이 따랐다. 어렸을 때부터 형군(아달라왕) 선금을 지성으로 섬기며 잠자리는 일어나기와 눕기를 함께 하였다. 선금이 말하길 “나는 너와 하루도 같이 하지 않으면 편안하지 않다”고 했다.’

선금이 즉위해 지후(지진내례)가 노금(일성왕)을 따라 죽으며 말하길 “너로 하여금 보위에 오르게 한 것은 석추의 공이다. 너희 형제가 천하를 함께 함이 옳도다”고 했다. 이에 선금(아달라왕)이 유조를 받들어 이로써 천자의 후계자로 삼고 나라를 전했다.(及長豊美有德人多服之自幼事兄君先今至誠起臥共之先今曰吾無汝一日不得安先今卽位只后殉于老今曰使汝登祚昔鄒之力也可與爾弟共天下先今乃奉遺詔以爲天嗣以傳國-〈벌휴기〉) 결과적으로 지진내례의 유언은 지켜지고 신라왕통은 박씨에서 석씨로 넘어간다.

지진내례는 신라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녀의 선택으로 신라는 새로운 왕조시대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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