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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너무나 멀리 와 버린 민주당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1-24 09:05:35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절차적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 내걸고 출범
/유엔 승인 때에도 국익 중시해 팔 걷고 나서
/친북, 반미에 포퓰리즘까지 정반대로 질주 중
/“민주당은 죽었다” 개탄 목소리, 귀에 들릴까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100년 정당’과 함께 ‘민주당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자주 입에 올린다. 민주당이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 1955년 9월18일 창당된 민주당이다. 올해도 같은 날에 66주년 기념행사를 치렀다. 수치상으로는 앞으로 34년이 지나면 ‘100년 정당’에 오른다. 한국 정당사(史)에서 가장 오래 된 정치단체임을 내세우려는 뜻일 것이다.
 
옛 민주당과 현 더불어민주당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파란만장했던 우리 현대사에서 각 정당들은 저마다 험로를 걸었고, 그때그때 이합집산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큰 틀에서 보면 굳이 별개의 정당들이라고 부인하기도 어렵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옛 민주당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초기의 정체성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느냐에 있다.
 
옛 민주당의 ‘초심’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48년 12월12일 유엔의 대한민국 승인 때 우리 대표단의 면면이다. 유엔 승인은 ‘신생 대한민국’에 ‘운명의 순간’이었다. 이때 승인을 얻어냄으로써 1950년 6.25전쟁에서 유엔군 참전을 이끌어냈고, 침몰 직전의 대한민국이 기사회생했다. 오늘날 우리가 선진국 소리를 듣게 된 갈림길도 여기에 있다.
 
당시 제3차 유엔총회 장소인 프랑스 파리에 파견된 대표단은 3개월 동안 말 그대로 악전고투를 치렀다. 승인을 얻어낼 전망은 소련 등 공산 진영의 강한 반대로 매우 불확실했다. 이들은 ‘일을 이루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라(事不成生不還)’는 비장한 각오로 멀리 헤이그의 이준 열사 묘소까지 찾아가 참배했다.
 
대표단은 수석대표 장면, 차석대표 장기영, 정치고문 조병옥, 경제고문 김우평, 고문 정일형 등으로 이뤄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훗날 민주당 창당의 주역이라는 사실이다. 조병옥은 1960년 대통령선거 때 민주당 대통령후보, 장면은 1956년, 1960년 대선 때 민주당 부통령후보로 나섰다. 또한 장면은 김대중 대통령의 가톨릭 입교 때 대부(代父)이자 정치적 멘토이기도 했고, 조병옥의 두 아들 조윤형 순형, 정일형의 아들 정대철도 나중에 민주당을 무대로 정치활동을 했다.
 
1955년 민주당 창당은 반(反)이승만 세력이 결집한 결과였다. 앞서 1954년 11월에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중대 위기에 놓이자 이들은 민주주의 회복과 시민적 자유를 외치며 이승만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이를 시작으로 해서 ‘권위주의 집권 세력’과 ‘민주주의 야당 세력’이 격돌한 오랜 투쟁이 1987년 민주화까지 30년 이상 계속됐다. 그 선봉에 섰던 민주당은 ‘민주’ ‘자유’ ‘법치’ ‘인권’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한국 사회에 자리매김했다.
 
초기 멤버들에게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정치노선이 반공주의였다. ‘반공’이라면 무조건 거부감을 갖는 젊은 세대들이 있지만 반공주의는 엄혹했던 남북 대치와 냉전 상황을 같이 고려해 해석될 필요가 있다. 요즘 스타일로 변환하자면 이들의 반공주의 목표는 ‘체제 수호’와 ‘국가정체성 확립’, 구체적으로는 ‘국가안보와 국방력 강화’였다. 천신만고 끝에 출범한 대한민국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사명감의 발로였다. 이들은 “국가이익 앞에는 정파가 따로 없다”는 신념에 투철했다. 그런 연유에서 유엔 승인 때 잠재적 야당 세력이면서도 나라를 위해 팔 걷고 나섰던 것이다.
 
이런 초창기 정신에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을 대입해 보면 전혀 다른 집단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우선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현 민주당 일각의 역사인식은 대한민국 승인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초창기 멤버들의 헌신을 비참한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민주’와 ‘자유’, ‘인권’도 어느새 사라졌다. 언론, 5.18, 대북전단 등의 각종 이슈에서 표현의 자유 같은 기본권 짓밟기를 서슴지 않는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온 만큼 옛 정체성의 핵심이었던 ‘법치’는 뭉개버리고 장기 집권을 위한 ‘법에 의한 지배’로 모드를 바꿨다. 야당 대선 후보만을 겨냥하는 신설 공수처의 일그러진 몰골을 보라. 이승만의 장기 집권에 분노해 뭉친 정당이 60여년 뒤 같은 모습으로 겹쳐지고 있다.
 
최근 이재명 대선 후보의 ‘재난지원금 뿌리기’가 미수에 그치는 과정에서 민주당은 초심과의 ‘괴리’를 넘어 급기야 ‘타락’의 단계에 이르렀다. 이 후보가 대선 직전인 내년 1월쯤 국민 1인당 30만~50만원을 주자고 나선 것은 대놓고 표를 사겠다는 의도나 다름없다.
 
이 방안을 덜컥 접수한 민주당의 대활약이 펼쳐졌다. 매표용이 아닌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전 국민 방역 지원금’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만들었다. 막대한 재원 마련을 위해 올해 징수할 세금 납부를 내년으로 미루는 사상 초유의 ‘세금 유예’ 방안도 냈다. 정부 실무부처가 ‘위법’이라며 반대하자 이들을 ‘국정 조사’로 위협했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그린 이 그림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든지, 이 방안에 반대하는 70% 국민의 싸늘한 눈총에 대한 의식조차 없었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오래 기억될 결정적 장면이다.
 
민주당이 국민 선택을 받겠다며 앞세운 이재명 대선 후보는 주사파로 알려진 경기동부연합과 연결돼 있는 친북(親北) 의혹에다, “미군은 점령군, 소련은 해방군” “미국이 승인해 일본이 한국을 합병했다”는 반미(反美) 시각이 두드러진다. 선거 구호인 ‘이재명은 합니다’에 담긴 그의 추진력 이미지는 ‘물 좋은 지자체’에서 돈 뿌리기로 쌓았던 신기루에 불과하다. 또한 대장동 사태나 코로나 사태 등을 통해 이 후보는 절차적 정당성이나 개인적 자유는 얼마든지 깔아뭉갤 수 있는 ‘위험한 선동가’ 기질을 드러냈다.
 
대통령 후보는 그 시점에서 해당 정당의 모든 것이 응축된 존재다. 이 후보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 체제 수호와 국익 우선이라는 옛 민주당 정신과는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 민주당의 오랜 지지자들 사이에서 “민주당은 죽었다”는 개탄이 나오는 씁쓸한 결말이다.
 
민주당은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이재명 후보는 최근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어디까지 떠내려갈지 궁금하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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