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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늦가을 황제의 능침 산책 후 만난 건강식
고종·순종 묻힌 홍유릉 만추 역사문화기행
남양주 호평동 숨은 약선 맛집 ‘토종마루’
유성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1-11-25 11:24:00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에는 대한제국 1·2대 황제인 고종과 순종 황제 부부가 잠들어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홍유릉이 있다. 이와 함께 고종과 후궁인 순원황귀비 엄 씨(귀비 엄 씨) 사이에서 태어난 황태자 영친왕과 부인 이방자가 합장된 영원, 이들의 둘째 아들 황세손 이구가 묻힌 회인원, 고종과 귀인 양 씨 사이서 난 덕혜옹주, 귀인 장 씨와 낳은 의친왕 부부 합장묘, 후궁 묘역 등이 조성돼 있다.
 
20일 김태휘 해설사 설명으로 홍유릉을 한 바퀴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경춘선 기차를 타고 늘 ‘패싱’만 했던 금곡역에 거의 이십 년 만에 발을 내디딘 듯했다. 도시의 변화를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남양주시는 1995년 미금시와 남양주 군이 통합하면서 생긴 도시다. 홍유릉이 있는 금곡은 시청이 있는 남양주시의 중심부다. 예전에 철을 파낸 곳이라 해서 '쇠푼'이라고 불렀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금곡(金谷)이라고 했다.
 
금곡역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홍유릉에 도착했다. 왕릉 권역으로 들어서니 수목의 높이가 남다르고 공기 역시 도시와는 달랐다. 늦가을 황제의 능을 배우고 걷는 시간이 무척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능 입구를 들어서서 얼마 가지 않아 펼쳐진 유릉의 압도적인 석물은 오늘 해설이 무척이나 흥미로울 것을 예고했다.
 
홍유릉은 홍릉과 유릉을 합한 능호다. 서울 선정릉이 선릉(성종)과 정릉(중종)을 합친 이름인 것과 같은 경우다. 남양주에는 홍유릉을 비롯해 사릉과 광릉 등 조선 왕릉이 위치해 있다. 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 씨의 능이다. 인근에는 조선 15대 광해군과 문성군부인 류 씨의 묘, 14대 선조의 후궁이자 광해군의 사친인 공빈 김 씨의 묘, 17대 효종의 후궁 안빈 이 씨의 묘가 있다. 광릉은 7대 세조와 정희왕후 윤 씨의 능이다. 인근에는 22대 정조의 후궁이자 23대 순조의 사친인 유비 박 씨의 원소인 휘경원과 19대 숙종의 후궁 영빈 김 씨의 묘소가 있다.
 
능·원·묘, 봉문 형태 알아가는 재미
 
▲ 조선 왕릉은 신분에 따라 능, 원, 묘로 나뉜다. 사진 위부터 순종황제의 유릉, 영친왕 영원, 덕혜옹주 묘다. [사진=필자제공]
 
조선 왕릉은 능, 원, 묘 영역이 있다. 능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무덤을 일컫는다. 원은 왕의 사친(왕을 낳은 후궁이나 왕족), 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세손, 황태자와 황태자비의 무덤이다. 묘 나머지 왕족인 대군, 군, 공주, 옹주, 후궁과 폐왕의 무덤을 말한다. 연산군은 임금을 지냈지만 폐왕이 됐기 때문에 ‘연산군 묘’라고 능호를 붙였다.
 
봉분 형태에 따른 분류도 듣고 보니 유익했다. 단릉은 왕과 왕비의 봉분을 단독으로 조성한 능이다. 대표적으로 태조 건원릉, 단종 장릉, 중종 정릉 등 15기에 달한다. 단릉 형식은 태조 건원릉부터 시작해 조선 중기까지 나타나며 18세기 이후에는 거의 볼 수 없다.
 
쌍릉은 왕과 왕비의 봉분을 하나의 곡장 안에 나란히 조성한 능이다. 김 해설사는 “이 경우는 우상좌하(右上左下)라고 오른쪽에 왕, 왼쪽에 왕비의 원칙에 따라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명종 강릉, 영조 원릉, 철종 예릉 등 9기다. 쌍릉 형식은 조선 시대 전반적으로 고르게 나타난다.
 
합장릉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능이다. 영조 이전의 합장릉은 혼유석을 2좌씩 배치했지만 영조 이후에는 1좌씩 배치했다. 대표적으로 세종 영릉, 인조 장릉, 정조 건릉 등 8기다. 이번 답사지인 순종 황제 유릉은 황제와 두 황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동봉삼실 합장릉이다. 합장릉 형식은 18세기 이후에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능역 조성 때 소요되는 경비와 인력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동원이강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과 상설을 조성한 것이다. 세조 광릉이 최초며 예종 창릉, 성종 선릉 등 7기가 있다. 선조 목릉은 세 개의 서로 다른 언덕(선조, 의인왕후, 인목왕후)에 별도의 봉분을 조성했다. 숙종 명릉은 쌍릉(숙종과 인현왕후)과 단릉(인원왕후)의 형태로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을 조성하는 능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형식은 세조 광릉을 시작으로 15세기에만 집중됐고 이후에는 볼 수 없다.
 
동원상하릉은 한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위아래로 조성한 능이다. 능혈 폭이 좁아 왕성한 기가 흐르는 정혈(正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풍수지리적 이유가 적용됐다. 효종 영릉과 경종 의릉 2기가 해당된다. 왕의 능침에만 곡장을 두른 특징을 보인다.
 
삼연릉 한 언덕에 왕과 두 명의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능으로 헌종 경릉이 유일하다. 우상좌하(右上左下)의 원칙에 따라 오른쪽(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왕을 모시고 첫 번째 왕비(효현성황후)와 두 번째 왕비(효정성황후)를 순서대로 모셨다.
 
작은 언덕이 구(丘), 큰 언덕이 능(陵)이다. 흔히 사용하는 구릉은 크고 작은 언덕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평지에서부터 솟아 있는 곳을 말한다. 신분 제도가 있던 시대에는 신분과 벼슬에 따라 무덤의 높이, 규모, 장식도 달랐다.
 
9품 능참봉 품계와 달리 권한 막강
 
능묘에는 구역을 경계 짓기 위한 해자(垓字)가 있다. 궁궐을 들어설 때 건너는 금천교와 같은 개념이다. 능의 권역에 들어서면 석물이 즐비하고 봉분이 보일랑 말랑 높이 조성돼 있다. 이번 홍유릉에서도 봉문의 끝만 살짝 보일 뿐이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능묘(陵廟)가 세워지는 한편 제수와 관리를 위한 경제기반인 밭이 내려지는데 이를 능위전이라 했다. 또 능을 관리하는 종9품 참봉 벼슬아치를 두었는데 이를 특별히 능참봉이라 불렀다. 조선 후기에 능참봉을 제외한 다른 참봉직이 대부분 없어지면서 능참봉이 곧 참봉을 뜻했다.
 
능참봉은 능에 소속된 수복이나 수호군, 능위전 관리를 맡았다. 또 능에서 제사를 지낼 때 준비를 하고 대략 한 달 전에 한양에 올라가서 축향(祝香)을 받는 일을 했다. 왕이 능행을 오면 맞이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일부러 능참봉을 자원하는 이도 많았다고 한다. 미관말직이지만 임금의 능을 관리한다는 상징성이 매우 컸다. 그래서 ‘소년(少年)하지 않고 지식 있는 사람’이 임명됐다. 그래서 과거를 거치치 않은 지방 사족들이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 사다리 역할을 했다. 유명한 남명학파 창시자 남명 조식이 처음으로 받은 벼슬 능참봉이다.
 
권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임금의 조상인 선왕들의 무덤인 만큼 관리가 부실하면 무거운 책임이 따랐다. 능참봉의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능역 관리와 함께 산림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조선 후기 온돌이 보편화하면서 땔나무 수요가 급증했다.
 
이 때문에 남의 산의 땔감을 베어가는 투작(偸斫)이 횡행했다. 투작은 장기간에 걸쳐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사산(私山)은 물론 국가가 관리하는 산들도 피해를 입었다. 대부분 능참봉들은 투작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일부는 본인이 직접 나무를 베어 내다 팔다 걸려서 장형 후에 유배되는 경우도 있었다.
 
압도적 석물 등 기존 왕릉과 많이 달라
 
▲ 홍유릉의 석물은 기존 왕릉 석물과 많이 다르다. 전에 없던 코끼리, 낙타가 등장한다. 제향공간도 정자각이 아닌 일자각이고 비석도 대한이란 국호로 시작한다. [사진=필자제공]
 
김 해설사는 홍릉과 유릉이 기존 조선 왕들의 능역과 크게 다른 점을 몇 가지 알려줬다. 먼저 재실과 금천교, 홍살문 등 진입공간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향도와 어도, 일자각까지 영역인 제향공간에서 기존 정자각과 큰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진입공간은 왕릉의 시작 공간으로 관리자(참봉 또는 영)가 머물면서 왕릉을 관리하고 제향을 준비하는 재실부터 시작된다. 능역으로 들어가기 전 홍살문 앞에는 금천교라는 석조물이 있다. 왕과 왕비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을 상징한다. 진입 공간 부근에는 음양 사상과 풍수 사상에 따라 연지를 조성했다.
 
유릉의 석물은 크기도 크기지만 그간 왕릉에서 볼 수 없었던 코끼리, 낙타를 볼 수 있다. 홍릉 석물은 조선인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유릉은 일본인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다. 석물 가운데를 지나는 향도와 어도도 삼도로 만들어 황제의 격을 맞췄으며 정자각은 일자각으로 만들었다. 침전 뒤 봉문 역시 정면을 벗어나 사선에 위치하는 등 동안의 형식이 많이 벗어났다. 이 또한 일본인 건축가에 의해 조성됐기 때문이다.
 
유릉을 먼저 돌고 능참봉 이야기를 마치자 홍릉으로 향했다. 비각 안에는 그간 비석에서 볼 수 없었던 새 국호인 대한(大韓)이 새겨져 있다. 조선 왕릉의 입지는 철저하게 풍수 사상에 기초했다. 도읍지인 한양 주변의 한강을 중심으로 한강 북쪽의 산줄기인 한북정맥과 남쪽의 지형인 한남정맥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도성 내는 무덤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궁궐과의 거리도 중요했다. 풍수적으로 명당이면서도 도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이 왕릉의 최적지였다. 이는 후왕들이 자주 선왕의 능을 참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덕혜옹주와 의친왕 묘를 둘러보고 후궁 묘역에 다다랐으나 일찍 문을 닫는 바람에 들어갈 수 없었다. 홍유릉에서 가장 멋지다는 은행나무길은 이미 은행잎이 모두 떨어지고 날려서 남은 게 없었다. 그래도 이곳저곳 남은 단풍이 탐방객을 반겼고 2시간여에 걸친 해설 답사가 끝나고 인근에 있는 맛집으로 향했다.
 
건강한 약선요리 한상 받은 느낌
 
▲ 남양주시 호평동 ‘토종고을’ 능이오리백숙과 도토리묵, 웅숭깊은 맛의 갖은 반찬들. [사진=필자제공]
 
이날 찾은 지역 식당은 남양주시 호평동 아파트 단지 뒤에 숨어 있는 ‘토종고을’이다. 일행 중 한 명이 오래전 맛있는 기억을 떠올려 찾아낸 곳이다. 능이오리백숙을 사전에 주문해 놓은 터다. 식당 입구에는 압도적 크기의 간판이 반겼다. 외관은 허름해 보이지만 내부는 각종 약술을 담가 놓은 벽면과 연탄난로 등이 운치를 느끼게 했다.
 
상차림이 시작됐다. 상위로 차려지는 반찬 면면이 내공이 느껴진다. 더덕 고추장박이, 오가피순장아찌, 알타리무볶음, 김치, 묵은 쌈 된장, 물김치 등 어느 하나 뒤로 처지지 않고 어느 것 하나 도드라지지 않은 슴슴함의 향연이다. 한해 반짝 여문 맛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쌓인 맛이 우러났다. 시간이 흘렀지만 향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윽하고 깊어진 맛, 우리는 그것을 웅숭깊다고 표현한다.
 
능이오리백숙이 커다란 도기 그릇에 담겨 나왔다. 이미 완전히 조리된 상태라서 잘라서 먹으면 된다. 한 마리째 제공된 것을 손님들 앞에서 먹기 좋게 잘라준다. 오리 다리하나가 미니 족발만 하다. 물론 약간의 과장이다. 그만큼 큰 오리를 잡았다는 의미다.
 
능이가 들어간 국물은 거무튀튀하고 맛의 무게가 달라진다. 거기에 잘 손질한 부추가 듬뿍 고명으로 나온다. 찹쌀밥이 따라 나오는데, 개인 취향대로 죽을 만들거나 맨밥으로 먹어도 좋다. 직접 쑤었다는 도토리묵은 좋은 참기름과 만나 입안을 행복하게 했다. 시장기 때문에 허겁지겁 먹는 데 열중해 개업한 지 몇 년이 됐는지, 대표 메뉴가 무엇인지, 어떻게 음식 장사를 시작했는지 등 기초 취재조차 못 했다. 한 번 더 가고 싶어서 일부러 그냥 온 건 아닌지 싶기도 하다. 건강한 약선요리 한상 받은 느낌이다.   
 
▲ ‘토종고을’의 내외부.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약술과 아날로그 감성의 연탄난로. 오랜 장맛과 장아찌 맛이 담겨 있는 장독과 압도적 크기의 간판. [사진=필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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