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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와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30>

우리 상고역사와 지나 역사 제대로 되고 있나

상고시대 역사와 지나의 조작역사 제대로 바로잡아 세워야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2-04 11:11:35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 역사는 상고 때부터 대륙에서 시작해 반도역사가 아닌데도 지나(支那)와 일본의 집요한 역사왜곡으로 우리 역사는 뒤엎어져 있다. 이제는 우리 역사를 제자리에 바로세우고 지나의 조작된 허구역사를 배제해 바로 세워야 한다. 
 
역사를 모르면 국가민족의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찾을 수 없다. 지나와 일본이 우리 사서를 없애고 우리 역사를 왜곡한 허구역사를 배제함으로 우리 역사를 제자리에 바로 세워야 한다. 우리는 역사가 얼마나 중요함을 모르고 있다. 
 
역사를 알아야 우리 민족의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찾을 수 있는데도 오늘 우리 사회가 가치관의 변질로 나아갈 바를 모르고 사회공동체의식이나, 연대의식이 실종됨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범죄자들이 오히려 득세하는 사회풍토는 우연이 아니다. 법치국가라 하지만 이미 법치는 없고 ‘떼법’이 판치는 이 사회는 이미 선진국들이 버린 낡은 이데올로기에 안주하여 나라가 황패화 되어있고 나아갈 방향도 찾지 못하는 모습은 구 시대 유물에 눌려 허덕이고 있는 상황 같다.
 
우리는 아직도 19세기 철학과 사상의 오류에 빠져 주체성이 상실된 민족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전진할 수 없고 정체되어 타락의 길에 빠져 있는 양상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제 우리는 재출발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역사학자가 우리 상고사도 제대로 연구하고 있느누것으로 보이지 않는데 이는 지나와 일본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들 나라는 상고사가 없는 나라인데도 상고사와 고대사를 연구하는 인구가 엄청나게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극소수이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 교육부가 지나와 일본이 왜곡한 역사를 가르침으로 역사를 모르며 우리가 나아갈 삶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데 비롯된다. 우리가 고대부터 유라시아와 유럽까지 지배한 것을 숨김은 큰 잘못이다.
 
얼마 전 아침에 TV를 보니 아나운서가 ‘우리 5000년 역사’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한심함을 금치 못했다. “어느 민족이나 역사에서 배움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희망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는 사회 여론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역사 무지다.
 
오늘은 우리가 상고시대부터 고대에도 대륙을 지배한 역사사실은 앞으로도 우리의 자주자존의 사상과 민족자부심을 가질 때에 이뤄짐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자주자존의 민족의식 가져야 한다
 
우리는 고대에 대륙을 지배한 역사사실을 반도역사로 할 수 없다. 그것은 예맥과 몽골은 무력으로 유럽까지 정벌해 정복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고 삼국시대는 고구려와 백제 등 동이족이 대륙을 지배한 사실을 숨길 수가 없다.
 
여기서 우리 민족의 기원에 대해 학자들이 달리들 말하고 있으나 파미르고원에서 발흥(勃興)해 타림분지(塔里木盆地)에서 나눠졌다 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최초의 시원국인 환국(桓國)도 파미르고원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동남방의 곤륜산(崑崙山)자락과 동북방인 천산(天山)으로 펴져 갔다고 전해지고 있는 것이 세계 석학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타이완의 서양지(徐亮之)박사와, 미국의 존 카터 코벨박사, 러시아의 푸틴 박사등 세계사학자들이 똑같은 주장하고 있음을 본다. (以上은 한동억 [인류시원의 역사] 16면~21면 참조하고 본문 인용했음). 
 
당시 이곳은 기후가 온화한 온대지방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살기에 적합해 수많은 부족들이 모여 살게 되어 12부족들이 연방국으로 환국이 나온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99.9%가 석기시대라 하는데 우리는 구석기시대를 거치지 않고 1만 년 전 신석기시대 이미 환국을 건국했는데 바이칼호 지방에서 원(源)을 발(發)한 알타이어족이 먼저 대륙에 입주해 대륙을 지배했던 것이다. 
 
한편 곤륜산하(崑崙山下) 타무리분지(盆地)에서 원(源)을 발(發)한 지나족(支那族)이 황하, 양자강유역을 타고 동하(東下)하기 시작해 처음으로 동방족과 교섭(交涉)한 곳이 오늘 조양(朝陽)~북경(北京)~산동반도(山東半島)지방이었다. 
 
이 지방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왜(倭)가 대륙에 있을 때의 삼국시대도 우리가 지배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정창(文定昌) 선생은 알타이어계를 동방족(東方族), 지나어계(支那語系)를 서방서장족(西方西藏族)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한편 공자(孔子)는 지나의 역사상한(歷史上限)을 요(堯)로하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비로소 황제(黃帝)를 그들 시조로 하고 있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미 밝힌대로 황제(黃帝)는 배달국 제왕으로 지나의 조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맥조선과 낙랑조선도 무녕(撫)寧)지방에 실재했다
 
지나와 일본은 동주시대(東周時代)부터 1000여 년간 대륙을 지배한 예맥을 그들은 더러운 족제비 예맥족(濊貊族)이라 하며 숨기나 이 예맥은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것을 철저하게 숨기어서 그 역사를 덮고 있다.
 
그러나 예맥조선은 창려지방(昌黎地方)에 예맥조선이 부여(夫餘)보다 먼저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필자가 2016년 8월에 지나 역사 탐방 시, 구입한 지나의 책 중에 장금규(張金奎)저 [흉노제국(匈奴帝國)]이 있다. 
 
이 책에는 그들은 흉노(匈奴)라고 하지만 예맥조선이 유라시아뿐만 아니라 유럽과 로마제국의 멸망도 [훈족]이라 하는 우리 예맥조선족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한.중.일은 예맥조선을 지우고 있으나 3000년 전, 대륙에 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맥조선을 [흉노제국(匈奴帝國)]이라 하고 있다.  
 
동사강목(東史綱目)은 [古記云 北夫餘 爲檀君之後 夫餘 在 遼東之地千余里)]라 하여 단군(檀君)이 처음 설치한 북부여(北夫餘)의 위치를 명백히 했는데, 문헌비고(文獻備考)는 그러한 부여(夫餘)에 관하여 [商 武丁 甲子(서기전 1286년) 徒于濊地 子孫相傳)이라 하여 그 부여(夫餘)가 남만주 예지(濊地)에 이거(移居)하였음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문헌비고(文獻備考)가 말하는 이 예(濊)는 요동반도 이서(以西)~만리장성 동편에 위치해있는 광영평야(廣寧平野)지방을 말한 것이다. 이 지방의 조선족을 후세의 지나인들이 조양지방(朝陽地方)에 자리한 번조선(蕃朝鮮)사람들과 함께 동호(東胡)라 불렀다. 이 동이족국가들은 대륙을 지배했다.
 
규원사화(閨怨史話)는 단군조선 1048년경 두홀왕연대(豆忽王年代)에 남후(藍候)가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가서 고죽군(孤竹君)을 쫒고 그 도읍(都邑)을 남방 엄독(奄瀆)에 옮겼는데, 고죽국(孤竹國)의 위치가 오늘날의 창려지방(昌黎地方)에 있었음을 지나의 여러 고서적(古書籍)들은 전하고 있다. 
 
예컨대 문헌비고(文獻備考)외에 고죽성(孤竹城)은 독사방기요 영평부조(讀史方輿紀要 永平府條). 고고죽국지(古孤竹國地)는 (讀史方輿紀要 永平府條 卷十七 直隸 八)등에 기록들을 보면 무녕지방(撫寧地方)에 위치한 남후(藍候)의 조선(朝鮮)을 예맥조선, 낙랑조선이라 칭했다고 하고 있다. 
 
낙랑조선도 서기전 2137년~서기32년까지 천년왕국으로 무녕지방(撫寧地方)에 있었던 것으로 한서 권 28에도 낙랑조선이 건재했음을 말하고 있다. (以上은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102面~105面 參考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글을 맺으며
 
우리는 한족에 지배받은 적 없는 자랑스러운 역사 잊어서는 아니 된다. 예맥은 맥(貊) 혹은 맥(貉)이라 하다가 예(濊)로 합쳐서 예맥(濊貊)이라 하고 있다. 이 예맥이 인류 최초의 문명인 요하문명;홍산문호(紅山文化)의 주역인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필자도 2016년 이곳을 답사하고 실재를 확인했다.
 
예맥조선의 모돈선우(冒頓單于)는 한고조(漢高祖)가 건국한지 겨우 2년 후인 서기전 200년에 예맥을 정토(征討)하기 위해 32만 대군을 화북(華北)에 모여서 운강(雲崗)의 석굴(石窟)가까운 평성(平城;山西省大同縣)까지 진군(進軍)했다.
 
그 때 돌연 모돈선우(冒頓單于)가 이끄는 예맥조선40만 기마군단(騎馬軍團)에 포위되어 한군(漢軍) 32만이 격파되고 만다. 이후 한(漢)나라는 60년간 한(漢)나라가 예맥조선의 제후국으로 조공(朝貢)하게 하고 그들을 지배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의 국가 활동에 관한 상고시대 역사연조(年祚)를 개관(槪觀)하면 환국(桓國)이 3301년, 배달국이 1565년 단군조선이 2096년을 비롯해 예맥, 부여, 삼국시대 발해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대한제국시대, 국치(國恥)시대, 대한민국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이것이 정확한 연표 아니다. 더 가해져야 한다. 
 
우리는 찬란한 역사를 한족(漢族)에 앞서 오래전부터 사서(史書)를 가진 민족이다. 그런데 위장(魏將) 관구검(毌丘儉)의 사서를 훔쳐 간 것과 당(唐)의 우리사고(史庫)를 전소(全燒)시켜 우리 역사말살하려하나 우리 역사는 영원한 것이다. 
 
우리 민족은 세계 5대문명을 일으킨 선진민족이다, 러시아의 민족학자 S.M. 시로코그로프(Shirokogrov)는 만주계(滿洲系) 선(先) 퉁그스족이 서기전 3000년 기(年紀)에 이미 황하와 양자강 각 중류이하의 중간지역에 선주(先住)인으로 살고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지나 해안지대, 만주, 한반도. 동부시베리아 바이칼호 지방에서 살다가 약6000년 전부터 점차만주, 북지(北支)지방으로 이동해온 종족이라 했다. 
 
이는 우리 민족이 상고시대 신석기중기부터 시베리아 바이칼호 지방에서 원(源)을 발(發)한 배달국 때도 대륙에 선주해서 문명을 일으킨 주인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以上은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19面~21面 參考 引用하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張金奎, [匈奴帝國].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반재원,[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紘一 監修 [世界を変えた 戰爭, 革命, 反亂].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中國の歷史].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전문가 칼럼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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