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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협, 변호인 조력권 침해 우려 성명 발표
이재명 후보의 살인범 조카 변호 논란이 원인
흉악범도 변호인 조력 받는 게 헌법정신 부합
이재명 후보의 유족에 대한 사과는 이해 되나
흉악범 변호가 잘못인 것처럼 오해 남겨 유감
1일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변호사의 변론권과 피고인의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과도한 논란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요지는 ‘변호사는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억울함이 없게 변론해야 하는 직업적 사명이 있고 헌법은 흉악범에게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 권리는 신체의 자유를 위하여 피의자 등에게 수사기관과 대등한 지위를 주는 것이므로 모든 국민에게 예외 없이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권이다. 그런데 변호인이 흉악범을 변론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으면 헌법이 보장하는 피고인의 방어권이 무력화되고 법치주의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니 사회적 지탄을 받는 강력범죄자를 변호했다는 이유로 변호사를 인신 공격하면 이는 지극히 부당하다’는 것이다.
헌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규정돼 있어 아무리 흉악 범죄자라도 유죄 확정 전까지는 죄 없는 사람으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어 체포·구속할 때 수사기관이 이 권리를 고지하지 않으면 불법 체포가 돼 즉시 석방해야 하고 체포·구속된 후에도 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는 국가가 국선변호인을 붙여 주어야 한다. 이런 권리를 보장해 주기 때문에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벌을 주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변협의 성명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확인한 것에 불과했다.
그럼 변협은 왜 새삼스럽게 이런 논평을 냈을까. 그 이유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관련이 있다. 그가 성남시장이 되기 전에 모녀 살인죄를 저지른 조카를 변호하면서 심신미약 감경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의 비난이 일었다. 아무리 조카라도 어떻게 흉악범을 변호했냐는 것이다. 그러자 그가 유족을 찾아가 살인범 조카를 변호한 일을 사과했던 것이다. 유족의 아픔만을 생각하면 사과가 당연하게 여겨지겠지만 대부분 변호사들은 속으로 꽤 씁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흉악범이라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헌법상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변호인 이재명으로서는 유가족을 찾아가서 사과할 정도로 비난받을 짓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식의 사과가 대중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앞으로 피해자 측이 피고인의 변호사를 찾아가서 사과를 요구하는 일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강력사건이나 피해자가 많은 경제범죄 사건은 피고인이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도 제대로 변호를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변협이 성명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형사사건 변호에는 무죄 변론도 있지만 정상을 참작할만한 사정도 있으니 가벼운 형을 선고해 달라는 정상참작 변론도 있다. 경찰과 검사가 실컷 수사해 기소한 사건에 무죄 가능성은 적기 때문에 정상참작 변론이 훨씬 비중이 크다. 그래서 변호사로서는, 아무리 흉악범일지라도, 성장과정상의 문제라도 찾아서 정상참작 변론을 해주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변호사의 존재 이유이고 의무다.
특히 흉악범에 있어서는 심신미약이 대표적인 정상참작 사유다. 2019년 4월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나온 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한 안인득도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2심에서는 심신미약이 인정돼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었다. 이 사건 기사를 검색하면 1심 국선변호인이 했던 고뇌가 나온다. 살인마를 변호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필요적 변호 사건이라서 변호사가 붙을 수밖에 없으니 안인득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변호인으로서 도와줘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인득은 피해망상증 같은 게 있어서 현실을 왜곡해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안인득 한 명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사회안전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인득은 자신은 심신미약이 아니라며 국선변호인단의 변론을 거부해 놓고는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제 정신이 아닌 것이 확실해 보이고 그렇다면 심신미약 변론을 한 국선변호인들은 자기 임무를 다했던 것이다. 사실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줄지 말지는 판사에게 달려 있는데 그 판사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형법에는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는 심신상실자는 벌하지 않고 이런 능력이 미약한 심신미약자는 형을 감경해 주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 안인득의 정신감정 결과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판사로서는 사형을 무기징역으로 감경해 주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변론하고 판결해야 하는 변호인과 판사에게는 이런 숙명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전직 변호사가 덜컥 피해자를 찾아가 자신의 과거 변론을 사과해 버렸으니 변호사들은 불안하고 씁쓸했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눈에는 이재명 후보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변호사라는 직업인 전체에게 전가시켰다는 생각도 든다. 이재명 후보는 조카의 살인범죄를 처음에는 데이트 폭력 범죄정도로 취급했었다. 말도 안 되는 물타기였다. 데이트 폭력에 살인 사건까지 넣는 것은 일반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난이 커지자 이를 수습하려고 유족에게 사과하면서 흉악범 변호 자체를 몹쓸 짓인 것처럼 일반화시켜 버렸다. 나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재명 후보는 9월 8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잘못된 판결과 오판 가능성을 무시할 없다는 이유로 사형제 폐지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그가 말한 오판을 막기 위해서는 살인범에게도 변호사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살인범 조카 변호를 사과한 것은 모순된 행동인 것이다. 유가족에게는 조카를 대신해 숙부의 자격에서 사죄를 하되, 대중 앞에서는 대통령 후보의 자격으로 변호사들을 매도하지는 말아 달라고 했어야 했다. 변호인 조력권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킬 절호의 기회가 허망하게 사라진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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