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를 세운 북방유목민족 오환족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신라를 세운 북방유목민족 오환족

오환족 구루돈의 신라 지배층 접수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1-12-14 18:18:03

『수서』<동이열전> 신라편 기록이다. ‘위 장수 관구검이 고구려를 토벌해 격파하니 고구려는 옥저로 쫓겨 갔다. 그들은 그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이때 따라가지 않고 남아 있던 자들이 마침내 신라를 세웠다(魏將毌丘儉討高麗破之奔沃沮其後復歸故國留者遂為新羅焉).’ 고구려를 침공한 위(魏)의 관구검 군대 일부가 돌아가지 않고 한반도로 남하해 신라를 접수한다. 이 내용은 『북사』 신라전에도 나온다. 정말로 그런 역사가 있었을까.

신라로 남하한 오환선우 구루돈

위(魏)는 중국 삼국(위·촉·오)시대 조조의 셋째아들 조비가 세운 나라이다. 관구검(毌丘儉)은 위나라 장수로 두 차례(244·245년)에 걸쳐 고구려를 침공한다. 이로 인해 고구려는 수도 환도성(현 요녕성 해성)이 유린당하며 11대 동천왕은 압록강 중류지역까지 후퇴한다. 이후 동천왕은 유유의 희생과 밀우의 분전에 힘입어 관구검 군대를 패퇴시킨다. 이때 관구검 군대의 일부가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신라로 내려온다.

이들의 실체가 패퇴하던 관구검 군대가 자신들의 전공을 새겨놓은 비석인 ‘관구검기공비’에 나온다. 1906년 중국 길림성 집안현에서 발견된 이 비석의 비문은 총 7행이다. 이 중 4행에 ‘토구장군 외오환선우▨(討寇將軍巍烏丸單于▨)’가 있다. 선우는 훈족왕의 칭호로 오환선우는 북방유목민족인 오환족의 수장을 일컫는다. 신라로 남하한 세력은 바로 ‘오환선우’가 이끄는 오환족 집단이다. 오환족은 훈족(흉노)에서 분화된 북방민족이다. 넓게는 몽골인종에 속하며 선비족과 함께 동호(東胡)로 불린 족속이다. 주요 활동지는 지금의 흥안령산맥 주변 초원지대다.

오환선우는 누구일까. 구루돈(寇婁敦)이다. 『삼국지』〈위서〉관구검 편에 나오는 우북평 오환선우이다. 구루돈은 서기 237년(경초 원년) 오환족 무리 5000명을 이끌고 관구검에게 투항한다. ‘우북평 오환선우 구루돈과 요서 오환도독 솔중왕 호류 등은 지난날 원상을 뒤쫓아 요동으로 달아난 자들로 무리 5000여명을 이끌고 항복했다. 구루돈이 동생 아라반 등을 보내 궁궐에 들어가 조공했다(右北平烏丸單于寇婁敦遼西烏丸都督率衆王護留等昔隨袁尙奔遼東者率衆五千餘人降寇婁敦遣弟阿羅槃等詣闕朝貢).’

구루돈이 바로 《관구검기공비》의 ‘토구장군 외오환선우’이다. 토구장군은 위(魏)에 투항한 북방민족 출신 장수에게만 수여하는 일종의 군호(軍號)이다. 오환선우 구루돈은 관구검에 투항한 후 관구검의 부하장수(토구장군)가 되며 관구검 군대의 일원으로 고구려를 침공한다.

신라지배층으로 변신한 오환족

오환선우 구루돈의 남하에 대해 『삼국사기』는 두 가지 단서를 기록한다. 하나는 서기 245년(조분왕 16년) 10월 고구려가 아무런 이유 없이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한다(高句麗侵北邊于老將兵出擊之不克退保馬頭柵). 신라와 고구려가 최초로 대면한 사건이다. 245년은 관구검 군대가 고구려 동천왕에게 패퇴당하며 《관구검기공비》를 세워놓고 돌아간 해이다. 동천왕은 관구검 군대의 패잔병인 구루돈의 오환족이 신라 땅으로 도망가자 이들을 뒤쫓아 신라 국경을 넘어선다.

또 하나는 3년 후인 248년(첨해왕 2년) 정월, 장훤(長萱)이라는 인물이 갑자기 등장해 서불한(국무총리)에 임명되고 국정에 참여한다(春正月以伊飡長萱爲舒弗邯以參國政). 장훤은 신라로 내려온 오환선우 구루돈으로 추정된다. 장훤은 247년 11대 조분왕을 밀어내고 첨해왕을 옹립한다. 오환족 출신 장훤집단이 신라를 장악한 것이다.

참고로 『삼국사기』는 위임행위를 ‘委(맡김)’와 ‘參(참여함)’으로 구분해서 쓴다. 委는 내부인사를, 參은 외부 인사를 가리킨다. 서불한에 임명되어 국정에 참여(參)한 장훤은 명백한 외부출신 인사이다.

이어 2월, 신라는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해 화친을 맺는다(二月遣使高句麗結和). 이제는 장훤(구루돈) 집단이 위의 패잔병이 아니라 당당히 신라인이 됐다고 고구려에 통보한다. 장훤 집단은 신라에 들어온 지 3년 만에 위의 패잔병에서 신라 지배층으로 신분이 급상승한다.

북방식 유물의 출현

고고학적으로 3세기 후반에 낙동강 하류지역에서 유물의 대변화가 일어난다. 북방식 유물이 출현하는데 그것도 3세기 후반이라는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통상적으로 유물의 형태와 양식은 일정의 시간을 두고 주변 공간으로 점진적 확산, 발전하는 양태를 보인다. 그러나 이 시기 북방식 유물의 등장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느낌이다.

주요 유물은 마구류와 철제갑주 그리고 동복(銅鍑·청동솥) 등이 대표적이다. 순장(殉葬)과 토기를 다량 부장하는 것도 이 시기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다. 무덤양식도 구덩이 속에 널(관)만 넣는 널무덤(목관묘)과는 달리 구덩이에 먼저 나무곽을 짜서 넣고 그 안에 다시 본래의 널을 안치하는 덧널무덤(목곽묘)으로 변화한다.

북방식 유물과 무덤양식의 출현은 오환족이 한반도로 남하하면서 가져온 것이다. 특히 오환족은 단순히 신라 입성에 그치지 않고 일부는 금관가야와 임나에까지 내려간다.

신라 지배층이 된 오환족의 등장은 새로운 왕조 출현을 예고한다.

정재수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