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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행된 전기통신사업법을 둘러싼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골자인 이번 개정안을 두고 형평성과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해외 기업에 대해서는 제대로 적용이 되지 않는데다 물리적으로 관련 시스템 구축 여력이 부족했다는 이유에서다. 여론 잠재우기에만 급급해 성급하게 규제를 내놓다 보니 효과는 고사하고 민간사업자의 부담만 키우는 꼴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텔레그램·디스코드 등 해외 사업자 제외…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 확산
웹하드 사업자와 대형 부가통신사업자의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의무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속칭 N번방 방지법)이 10일부터 시행됐다. 불법으로 촬영된 음란 동영상이 인터넷이나 SNS, 메신저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개정안은 연 매출 10억원 이상 또는 일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의 부가통신사업자에 불법 촬영물 등에 대한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불법촬영물 등의 식별 및 게재 제한 조치를 위해 6개월간의 계도기간을 뒀다.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국내 IT 기업들은 일제히 조치에 나섰다. 네이버는 10일부터 불법 촬영물 등에 대한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에 나섰다. 네이버에 등록되는 콘텐츠에 대한 특징 정보를 추출한 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공하는 불법 촬영물 등 특징정보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일치하는 경우 해당 콘텐츠 게재를 제한하는 ‘불법 촬영물 등 DNA 필터링’을 적용한다.
카카오 또한 카카오톡 ‘오픈채팅 그룹채팅방’에 불법 촬영물 등의 유통방지 및 이용자 보호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에 나섰다. 불법 촬영물을 유통할 경우 삭제 등 유통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지고 관련 법률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공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정작 사태의 발단이 된 ‘텔레그램’에 대해서는 적용조차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텔레그램은 ‘N번방’이 존재했던 스마트폰 메신저 프로그램이다. N번방 방지법이 정작 N번방이 존재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텔레그램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가 해외에 법인을 둔 외국기업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구글 등과 같이 해외 법인이더라도 국내에 법인을 둔 사업자라면 규제를 적용하고 필요에 따라선 제재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제재 자체가 어려워 사실상 규제적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N번방 방지법 적용 대상이 된 온라인 커뮤니티 에프엠코리아 운영진은 ‘과도한 규제 및 검열에 대한 사이트 입장’ 게시물을 통해 “해외에서 운영되는 사이트는 자발적인 자체 기준에 따라 검열을 하더라도 국내의 여러 다른 강제 검열이나 규제로부터 자유롭다”며 “국내 사이트는 여러 기관의 자율점검이라는 요청을 받으며 그 외에도 강제로 상당히 많은 규정을 적용받고 있다”고 밝혔다.
박병진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외국계 기업에 대해 규제하려고 하면 외국계 기업에 대해 한국만의 규제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회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과 외국의 규제가 차이가 날 경우 국내 법을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국내 사업자 역차별 논란에 대해 오해라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해외 사업자에게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서비스의 특성에 기반한 것이다”며 “원칙적으로 해외 사업자도 규제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법을 적용한다고 해도 제재를 가하지 못하면 법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개정안의 역차별 문제는 처음 나올 때부터 지적됐던 부분이다. 결국 국내 기업들만 규제를 받게 되는 셈인데 이런 식이라면 이용자들을 전부 해외 기업에 뺏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데이터베이스 신뢰성 미검증… 관련기기 구입·테스트 기간도 부족”
N번방 방지법 적용을 두고 국내 업체들 사이에서 기술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오로지 여론을 잠재우기에만 급급해 무리하게 법을 시행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불법 촬영물 적발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데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음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정부에서 법을 강행했다는 지적이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불법 촬영물을 적발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 값을 실시간으로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테라바이트씩 데이터가 올라오기 때문에 수시로 데이터베이스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서버나 트래픽에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방통위는 방심위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필터링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데이터베이스에 오류가 있는지 확인할 구조적 시스템이 하나도 갖춰져 있지 않다”며 “오류 발생 시에 책임은 사업자가 지게 되는데 시스템의 신뢰성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술 자체가 일반적인 부가 통신 사업자들이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고 특정 서버 용량이 한정돼있는 웹하드 사업자들에게 적용하던 기술이다”며 “실시간 클라우드 사업의 경우 서버 트래픽이 수백배에 달하는데 그런 기술을 전체 사업자에게 적용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 장비를 구매하는 데만 한 두 달은 걸리는데 12월에 적용하기 위한 시스템 가이드가 8월에 나왔다”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계속해서 말했지만 정부에서 들어주지 않다가 나중이 돼서야 계도기간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인력 자체가 부족한 커뮤니티 사이트 운영업체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보배드림 사이트 관리자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대기업은 바로 적용했다고 하는데 우리 같은 경우에는 인원 규모가 작아 아직 개발을 진행 중이다”며 “기술 적용을 위한 기계를 구하는 데에도 시간이 들고 기계 구입비도 부담이다”고 말했다.
권세화 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기계만 사 온다고 되는 게 아니라 테스트를 하고 실제 적용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한데 규모가 큰 기업들이 이제 기계를 들여왔고 나머지는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상황이다”며 “계도기간이 끝났을 때 법 적용을 위한 완벽한 체계가 갖춰질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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