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오판이 부른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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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히틀러와 김정은

한 사람의 오판이 부른 세계대전

오주한 정치전문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1-16 22:38:18

800㎜ 구스타프 열차포라는 ‘물건’이 인류역사에 등장한 바 있다. 길이 47m, 중량 1350t, 운용인원 최소 2750명의 이 거포는 무려 중량 5t의 고폭탄을 47㎞ 거리까지 날려 보낼 수 있었다. 해당 고폭탄은 착탄 시 핵무기와 흡사한 버섯구름을 만들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250명의 조작요원들에게는 특수 귀마개가 지급됐지만 귀를 틀어막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사격 때마다 이들의 고막은 터져나갔다고 한다.

구스타프 열차포는 어마어마한 덩치에 걸맞게 특수 제작된 차량에 실려 폭 50m의 철로를 통해 이동했다. 전선 어디로든 수송하기 위해 2500명의 철도작업원들은 수시로 진격로에 철로를 설치했으며 2개 방공포 대대가 이들을 엄호했다.

1937년 나치독일이 개발한 구스타프 열차포의 목적은 오직 단 하나, 프랑스가 1935년 자국과 독일 국경에 설치했던 난공불락의 요새인 마지노선 돌파였다. 두께 3.5m의 철근콘크리트 장갑을 두른 채 기관총 포탑, 주포 등에서 막강한 화력을 토해낼 수 있었던 마지노선은 프랑스 최후의 보루였다. 1940년 이 마지노선이 무너지면서 프랑스는 결국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나치는 1936년 잠수함인 7형 유보트를 대량생산하기도 했다. 유럽 정복 야욕에 사로잡혀 지상전력 강화에 혈안이 됐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해군 제독 카를 되니츠의 의견을 받아들여 해양강국 영국을 겨냥해 유보트 생산에 심혈을 기울였다.

침묵항해‧급속잠항 능력이 뛰어났던 유보트의 활약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 해저의 악마는 섬나라인 영국과 대영제국 식민지, 유럽 본토 등을 오가는 상선들을 상당수 격침시키는 방식으로 영국 해안선을 완벽히 봉쇄했다. 피해 최소화를 위해 구축함 등 호위 아래 한 덩어리로 뭉쳐서 항해했던 상선 선원들은 바다 밑에서 한 척씩 한 척씩 야금야금 동료 상선을 격침시키는 유보트를 보면서 치를 떨어야 했다.

되니츠가 “우리는 300척의 유보트만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유보트의 전공은 혁혁했다. 독일 국방군의 전격전 앞에 퇴로마저 차단당한 채 독 안의 쥐 신세가 됐다가 1940년 덩케르크 철수작전으로 기사회생한 영국은 만성적 물자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모든 군수물자를 버려둔 채 장병들 몸만 빠져나온 탓이었다.

여기에 유보트의 봉쇄작전까지 겹쳐 고사 직전까지 갔던 영국은 한 때 식민지였던 미국의 지원으로 연명해야만 했다.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샤워장에서 나온 뒤 미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앞에 나타나 “대영제국 총리는 미합중국 대통령께 감추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조크를 던지며 ‘재롱’을 떨고 ‘구걸’할 정도로 영국의 처지는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다.

나치는 유럽 정복을 위해 인류 최초의 탄도미사일인 V-2 로켓 개발도 진행하고 있었다. 독일 육군 로켓연구소장이었던 발터 도른베르거는 19세의 기린아였던 베르너 폰 브라운을 영입한 뒤 히틀러의 독재가 시작된 1933년부터 시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다섯 개의 시제품 중 네 번째였던 A-4 로켓이 제식무기로 채택됐으며 ‘보복’을 뜻하는 ‘페르겔퉁(Vergeltung)’의 첫 글자를 따서 V-2로 명명됐다.

V-2는 앞선 모델이자 인류 최초 순항미사일이었던 V-1보다 더 많은 첨단기술이 적용됐다. 수직‧수평 비행 과정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자이로스코프가 설치됐으며 몸체에 실린 아날로그 컴퓨터가 엔진 점화 여부를 결정했다. 초속 1.6㎞(마하 5)라는 가공할 속도의 V-2는 영국 본토에 불벼락을 안겼다. 런던에서만 2000여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으며 영국인들은 외출을 삼간 채 미국이 지원한 통조림햄을 배급받아 연명했다. 만약 나치가 핵개발까지 성공했더라면 영국의 운명이 어찌됐을 지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이렇듯 나치는 노골적으로 침략 의지를 드러내왔기에 유럽은 예방전쟁 등의 형태로 제2차 세계대전을 얼마든지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안일함으로 인해 대륙은 수천만명이 사망하는 아비규환의 전화(戰火)에 휩싸이고 말았다. 바로 영국 총리이자 처칠의 전임자였던 네빌 체임벌린이 문제의 인물이다.

1938년 3월 독일 국방군이 오스트리아로 진군해 강제병합할 정도로 나치의 정복은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하지만 체임벌린은 “히틀러는 이성적인 인물이기에 서유럽을 공격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하며 오스트리아 합병 당해 9월 히틀러와 만나 뮌헨협정을 체결하고 ‘우리 시대의 평화’를 선언했다. 기만술에 성공한 히틀러는 불과 6개월 뒤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며 다시 6개월 뒤 폴란드를 전면 침공했다. 그리고 급기야 서유럽까지 진격해 프랑스를 점령하는 등 방심하고 있던 유럽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 모든 재앙은 한 사람의 오판으로부터 시작됐다.

북한의 잇따른 극초음속미사일 발사를 두고 정치권 평가는 엇갈린다. 한 대선후보는 방어적 공세를 위한 선제공격(킬체인)을 주장한 반면 다른 대선후보는 이를 ‘불장난’으로 규정하며 반대했다. 분명한 건 뮌헨협정 체결로 인해 온 유럽에서 ‘평화주의자’로 칭송받았던 체임벌린은 결과적으로 틀린 판단을 내렸음이 입증됐으며, 제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히틀러의 야망을 경고하면서 ‘전쟁광’으로 비난받았던 처칠은 옳은 판단을 했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 제2의 히틀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주한 정치전문기자 jhoh@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