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일터는 어떻게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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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씨의 죽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일하는 건 아닐까?
“과노동에 ‘존버’하다 스러져간 망자만 ‘존버씨’가 아니다”

이두경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1-18 10:25:26

우리 시대 ‘존버(최대한 버틴다는 뜻의 은어)씨’의 삶을 반추해보며 과로와 죽음의 거리를 멀어 보이게 하는 자본주의적 담론·장치에 어떻게 균열을 낼지 고민하는 책 ‘존버씨의 죽음’이 출간됐다.

“카드사에서 차세대 시스템을 개발하던 중 IT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택배 기사 임모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서울시청 공무원이 투신자살했다” “집배 노동자가 목을 매 자살했다” “경마장 기수가 자신의 차량에 불을 피워 자살했다”와 같이 버젓이 일터에서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 매일같이 전해지고 있다.

사회학자인 저자 김영선은 ‘그들은 왜 죽었을까?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분명 업무와 관련된 죽음인데, 그들의 죽음은 왜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 것일까? 왜 우리 일터는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되었을까?’라고 의문을 제시하며 “우리 시대 존버씨가 죽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과로+성과체제’가 야기하는 사회적 살인을 규명하고 그동안 개념조차 없었던 ‘과로죽음’에 이름을 부여한다.

책에는 “한 달에 많이 서면 12번의 당직을 섭니다. 이게 어찌 사람 사는 일입니까. 이제 조금은 쉬어야겠네요.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했는데, 너무 많이 힘들어 이제는 내려놓을려구요”라는 한 부산경남경마공원 말관리사의 유서도 담겨있다.

오늘도 버티고 또 버텨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버씨. 저자는 존버씨가 노동의 고통과 비참에 시달리는 김알바, 김인턴, 김사원, 김대리, 김과장과 다르지 않은 이름이라고 규정했다. 갈아넣고 쥐어짜고 태우는 ‘과로+성과체제’에서 존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과로위험과 성과 압박에 노출돼 있는 우리 모두가 바로 ‘존버씨’라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과로죽음’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돌연사(과로사)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과로자살)를 말한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실태 파악은 전무한 상태고, 사회적 사실을 담아내는 개념이나 법제도가 부재한 실정이며 ‘언어 없는 사건, 개념 없는 현상’일 뿐이다. 책은 이런 ‘과로죽음’에 개념과 언어를 부여한다.

우리 일터의 현실을 추적하고 존버씨의 ‘과로’를 조명해 ‘과로죽음’이 과로+성과체제가 불러일으킨 필연적인 죽음이자 사회적 타살임을 밝힌다. 단순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가 교차하면서 발생하는 사건임도 명확히 규명한다. 이 ‘과로죽음’이 반복해 발생하는데도, 왜 ‘과로’는 누락되는지 그 원인 또한 살펴본다.

이두경 기자 dkle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