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쟁, 속도보다 방향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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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초거대 AI 시대

AI 경쟁, 속도보다 방향 먼저

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1-20 23:42:43

사물과 소프트웨어, 데이터를 연결해 물체와 기기를 연결하는 사물 인터넷(IoT)으로 우리 생활의 면면이 한층 편리해졌다. 디지털에 여전히 적응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이런 세상에서 도태되는 듯한 소외감으로 약간은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세계는 이 부적응자들의 소외감은 아랑곳없이 더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가 아니라 ‘어디론가’를 향한다고 표현한 것은 그 방향이 과연 우리가 흔히 진전, 향상, 개선을 내포하는 의미로 쓰는 앞을 향한 것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에 꽂혀있다. 그것도 이른바 ‘초거대 AI’라고 부르는 것을 개발하기 위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등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LG, 네이버, KT, SK텔레콤 등 국내 IT 기업들도 앞다퉈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초거대 AI의 성능을 가늠하는 지표는 ‘파라미터(매개변수)’의 양이다. 파라미터는 인간 뇌에서 학습·연산을 하는 시냅스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오픈AI가 지난해 공개한 초거대 AI 모델은 1750억개의 파라미터로 구성됐고, 중국 화웨이가 내놓은 모델은 2000억개의 파라미터를 갖는다. 이어 네이버는 2040억개, LG는 3000억개, MS가 엔비디아와 공동 개발한 모델은 5300억개의 파라미터로 구성됐다. LG는 이를 1조로 높일 계획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불과 약 1년 사이에 AI의 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 파라미터 개발이 이처럼 급속도로 진행된다는 것은 향후 AI 개발에 가속도가 붙어 더 빨라질 것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이와 함께 그 속도를 과연 인간이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초거대 AI에 거는 기대는 현재 번역이나 영상 판독 등의 영역에서 인간의 지능과 감각, 그리고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AI의 등장으로 인간의 수고와 시간을 대신해 줄 비서와 같은 AI의 출현일 것이다. 따라서 최근 초거대 AI는 언어, 음성, 영상 등 다양한 데이터를 동시에 이해하고 처리하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번역의 예를 들어보자.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와 도착언어인 영어를 쓰는 사람들의 비슷한 정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정확한 번역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에서 ‘즈려밟고’에 깔려있는 한의 정서를 충분히 이해해야만 한다. 또 ‘가시옵소서’라는 글귀는 잡고 싶은 마음과 체념이 뒤섞인 정서를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우리 민족이 아니면 과연 온전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표현이다.

이 복잡미묘한 정서와 감정과 모순적인 논리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자료가 입력되어야 할 것이다. AI가 ‘초거대’의 규모로 커져만 가는 이유 중 하나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인간을 대체할 정도의 능력을 가진 AI가 등장하면 그 다음에는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진 AI가 탄생할 것이다. 이미 특정 분야에서는 인간의 노동과 시간을 절약해주는 AI들이 개발됐고 앞으로는 그 영역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앞으로 AI는 대규모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딥러닝 학습으로 인간보다 더 똑똑해질 것이다. 문제는 그 효율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AI가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번역을 예로 들었듯이 인간이 원하는 슈퍼 AI는 수많은 학습을 통해 인간의 경험치를 능가하는 경험과 이에 다른 판단력, 즉 사고력을 갖게 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시점에 이르면 인간이 AI를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통제한다는 것은 그 대상의 한계를 알고 그 한계점에서 제약을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계를 알 수 없는, 즉 우리의 이해 범위를 넘는 대상을 통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상을 파악하고 분석이 가능해야 통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의 능력을 인간이 통제가능한 범주 안에 두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가 미래의 AI가 가질 능력을 현재 파악할 수 없다면, 그리하여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그림을 정확히 그릴 수 없다면,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AI가 일단 자신만의 판단력을 갖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그것의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이미 놓쳤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 과학자는 AI를 움직이는 프로그램에 과연 ‘종료’라는 버튼이 작동할지 혹은 영원히 프로그램이 진행될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만일 AI가 인간이나 인간 세상을 파괴하려한다면 프로그램이 종료하도록 설계됐다고 할지라도 그 프로그램이 과연 정지하게 될지는 알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파국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AI의 능력이 아예 제한되도록 설계해야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에 모순이 있다. 만일 AI의 반란이 두려워 그들의 능력을 인간의 통제 범위 안에 두고 출발한다면 애초에 AI를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AI 개발 경쟁이 더 치열해져서 우리가 가려는 방향 보다는 속도에 치중하게 된다면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곳에 와버렸을 지도 모른다. 지금 AI 속도전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전에 우리가 가려는 방향을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