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말까지 입맛대로 바꾸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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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중국 버전의 ‘파이트 클럽’

영화 결말까지 입맛대로 바꾸는 중국

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1-28 00:02:40

중국 당국이 20여년 전에 개봉됐던 미국 영화의 결말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이젠 역사 왜곡도 모자라 영화 내용까지 제멋대로 바꿔서 빈축을 사고 있다. 최근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파이트 클럽(Fight Club)’이 중국에서 완전히 다른 결말로 편집돼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외신을 통해 보도됐다. 영화를 제작한 미국은 물론 기존의 결말을 알고 있던 중국인 시청자들도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파이트 클럽’의 오리지널 엔딩이 ‘너무 폭력적이고 범죄를 미화한다’는 이유로 중국 검열 당국이 다른 내용으로 대체했다고 보도하면서 그로인해 엔딩의 내용은 순해지고 영화팬들은 분노했다고 전했다.

문제의 ‘파이트 클럽’은 1999년 미국 영화 감독 데이비드 핀처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 개봉됐고 이후 2016년과 2017년에 재개봉 됐지만 그리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핀처 감독은 우리에겐 브래드 피트가 노인에서 아기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년)와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들게 된 과정을 그린 영화 ‘소셜 네트워크’(2010년)로 이름이 귀에 익은 감독이다.

‘파이트 클럽’은 이 두 작품보다 약 10년 전에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감독이 아직 더 혈기왕성했던 30대에 만들어졌고 그만큼 기성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이 크게 반영된 작품이다. 그런데 중국 당국의 검열을 거쳐 중국 인민들에게 유통된 중국 버전의 ‘파이트 클럽’은 그 핵심인 저항정신이 쏙 빠진 채 껍데기만 걸치고 있었던 셈이니 영화팬들의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파이트 클럽’은 이중인격으로 드러난 억압과 무의식 등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풍부한 소재를 담고 있으면서 물질적 풍요 속의 공허와 같은 철학적 주제를 제공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등 영화 기법의 모델이 되기도 하는, 화제성 많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에서 대놓고 말해 주듯 이 작품에는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 그 폭력성의 수위도 만만치 않다. 중국 검열 당국이 문제 삼은 마지막 장면 역시 그러하다. 주인공이 총구를 입안에 넣고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 이어 연쇄적인 폭발 속에 건물들이 무너져내리는 모습 등은 꽤나 폭력적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스트리밍 서비스업체 ‘텐센트 비디오’가 내놓은 중국 버전에서는 주인공이 입안에 넣은 총구의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고 한다. 이어진 폭파 장면은 삭제되고 그 대신 영어자막으로 뒷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인을 위한 버전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어 자막이 아니라 영어 자막을 화면에 띄웠다는 점도 흥미롭다. 마치 영화가 원래 그렇게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겠다는 검열 당국의 속셈이 읽힌다. 거짓에 거짓이 더해진 것이다.

영어자막의 내용은 이러하다. “타일러(주인공의 한쪽 인격)가 제공한 단서를 통해 경찰은 신속히 계획 전모를 파악하고 모든 범죄자를 소탕했다. 그리하여 대규모 파괴를 목적으로 한 타일러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차단됐다.”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기존의 질서를 일탈하려는 불순분자들의 계획이 국가에 의해 평정됐다는 결론이다. 참으로 사회주의스러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중국 당국이 입을 막는 것은 영화뿐이 아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콘텐츠에도 강력한 규제를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다. 26일(현지시간) CNN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고위급 사이버안보 관계자는 중국의 대명절 춘절과 동계올림픽이 다가옴에 따라 ‘인터넷 정화’ 작업의 일환으로 “불법적” 온라인 콘텐츠를 엄중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사이버스페이스 당국은 25일 약 한달에 걸쳐 인터넷 정화 작업에 들어간다고 공언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며, 평화로운 온라인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기관은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중국의 인터넷과 데이터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강력한 인터넷 감시기구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동계올림픽에 이처럼 민감하게 공을 들이는 것은 이번 행사가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최대의 행사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번 올림픽에 잡음이 이는 것을 원치 않고 강력한 화합의 모습을 세계인에게 보여줌으로써 시진핑의 통치가 성공적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진실은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중국의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으면 무엇보다도 그 바탕엔 자유가 공기처럼 흐르고 있어야 한다. 자유 없는 평화와 행복은 가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