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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탐구는 발전을 낳고, 그 자체가 지혜다. 나이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두 부류로 나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한 부류는 타인 관찰의 힘이 갈수록 강해져서 누군가의 몸짓이나 언어, 표정 따위를 잘 기억해낼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온갖 가상의 영상 또한 잘 만들어 낸다. 또 한 부류는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관찰력을 증장시키는 사람이다. 그의 특징은 눈여겨보면 드러난다. 자신에게 향하는 말이나 행위에 대해 ‘미세하게나마’ 느리게 반응한다. 그는 잠시 멈추는 습관을 지녔다. 그는 집중하지만, 그 집중과 집중 사이에 공간을 만들 줄 안다. 그의 특징은, 상대의 말이나 생각을 가로채거나 넘겨짚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언젠가 인체 해부영상을 네 시간 동안 지켜본 적이 있다. 해부 집도의는 여러 종류의 메스를 들고 플라스티니제이션(Plastinization)이라는 생체보존기술로 완벽하게 보존된 인체의 해부 장면을 실연했다. 영상 속 인체 해부는 성인 남성의 근육과 관절, 생식기관, 소화기관, 순환기관 순으로 진행됐다. 해부과정은 근접촬영과 원격촬영을 통해서 실낱같은 신경 줄기까지 보여주기도 하고, 그 광경에 집중하고 있는 청중의 표정이나 시선에 앵글을 돌리기도 했다.
화면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인체의 내부에서 발산하는 비릿한 살 내음과 소독 내음을 들이마시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화면의 생동감도 생동감이지만 사람의 몸이라는 선입견만 빼면 영낙없이 푸줏간의 고기와 다를 바 없었으므로 그 개념의 차이를 메꾸느라 마음이 바빴다. 카메라가 실험용 시신의 내장 속 어느 지점에 바짝 다가서면 푸줏간 냄새가 더 강해지는 착각도 했다. 하지만, 해부를 진행하는 집도의의 태도에서 그런 생각은 이내 지워졌다. 그는 크고 작은 메스로 실험용 인체의 근육과 지방 덩어리, 대동맥 따위를 능숙하지만, 세심하고 냉정하게 적출하거나, 분리하면서 설명했다.
타인의 마음은 당신에게 잡히지 않는다
나의 관심은 여느 관람자와 크게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피부를 벗겨낸 인체의 근육은 실험 집도의에 의해서 경활근, 대흉근, 소흉근. 흉골쇄골유돌근, 횡복근, 내복사근, 봉공근 따위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실험 집도의는 자신과 조금도 다름없는, 한때 인간의 존엄성을 갖추고 있었을 사람의 피부와 근육을 적나라하게 분리해 놓고 관중을 향해 근육이나 장기의 역할을 설명했다.
어린 나이 같았으면 아마 영상 보는 것을 포기했으리라. 원시 인간의 식인 풍습이 충분히 이해될 만큼 ‘짐승적인’ 인간의 피부 안쪽 장면을 지켜보며 장시간 동안 집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그 영상을 통해 나의 몸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알지 못했거나 막연하게 짐작했던 몸이라는 세계가 그의 몸을 통해서 고스란히 반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몸이라는 물질의 내부를 한번도 본 적 없는 내가 어떻게 해서 실험용 해부 시신의 몸과 나의 몸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일까. 내 삶의 경험치를 근거로 내세우기에는 뭔가 허술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이제껏 단 한번도 인체의 적나라한 내부를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었다. 직접 확인해본 적 없는 사실의 일반화는 위험하다고 배운 내가 이 영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시신 해부영상은 당신과 내가 ‘다르지 않다’라는 전제가 만들어 놓은 장이었다. 몸은 그렇다. 한때는 생명이었으나 지금은 마음이 빠져나간 존재의 물질과 형체를 해부하는 영상만으로도 나의 내부를 반성적으로 확인하고 타인의 장기를 통해 나의 장기를 이해할 수 있다니.
마음은 어떤가. 몸에 비해 달라도 많이 다르다. 마음은 반드시 몸속에 생명력이 깃들어 있어야만 확인할 수 있다. 그것도 내 마음이라야만 한다. 인류는 아직도 타인의 마음을 완벽하게 헤아릴 수 있는 발명품을 갖고 있지 않다. 타인의 마음은 몸의 해부도처럼 당신의 마음과 유사할 수 없다. 만약 2000만명의 마음 해부도를 그린다면 2000만장을 그려야 할 것이다.
그 모든 마음의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불교 수행자인 전현수 박사는 마음의 두 가지 특성을 이야기 한다. 첫째, 마음은 늘 어떤 대상을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마음은 마치 원숭이가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나뭇가지를 붙들 듯이 어떤 대상이든 붙들려는 특성이 있다. 마음의 두 번째 특성은, 길을 잘 닦는다는 것이다. 한번 간 길은 또 가려는 항상성을 갖는다. 이 두 가지 특성은 물론, 인체 해부실험처럼 타인의 것을 대비시켜 줄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 마음이 움직이는 상황과 시점, 관점, 방향 따위를 짐작조차하기 어렵다. 마음에 관해 더 심각한 사태는, 몸의 주인조차도 자기 마음의 시점, 관점, 방향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마음은 그 활동 범위나 조건 속에서 그야말로 술 취한 원숭이처럼 떠돌기도 하고, 어느 한 곳에 꽁꽁 묶여 있기도 한다. 그런 타인의 마음을 빤히 다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내 배로 난 자식인데 내가 자식 생각을 모를 리 있어?’ ‘보나마나 뻔해. 내일은 또 딴소리 할 거야.’ ‘세상없어도 나만큼은 그 사람이 무슨 짓 할지 다 알거든!’ ‘저 치가 달려가는 걸 보니 또 똘이 보고 싶은 모양이지.’ 당신은 이렇게 타인 관찰의 힘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그 반대의 길이 있다. 타인의 여러 행태를 추측하거나 예상하는 행위를 결단코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무엇이라도 지향해야 하는 ‘마음’으로서는 그 대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 결국 나의 몸과 마음밖에 없다. 추측이나 예상 따위가 제거된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이를테면, 나를 보더니 뒤로 돌아서 달려가는 사람을 보고, ‘무슨 잘못을 했길래 저렇게 도망가지?’와 ‘내 쪽으로 오다가, 뒤로 돌아서 달려가는구나’의 차이가 보이는가. 같은 현상을 보고, 전자는 부정적 추측을 하고, 후자는 일어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전자는 타인 관찰에 따른 마음의 부정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경우고, 후자는 일어난 현상을 일어난 대로 본 경우다. 누구 인생이 행복하겠는가. 삶의 지혜는 이렇게 작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증장해간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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