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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첩첩산중의 모습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해방 이후 최악으로 치달은 한·일 관계’란 말이 비일비재하게 쏟아져나왔다. 수출규제, 징용공 판결, 위안부 보상, 후쿠시마 원전수 해양 방출 등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산재한 채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갈등이 깊어가는 양상이다.
1월22일엔 문재인 대통령의 설 선물에 독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주한일본대사관이 선물 수령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지며 새해 들어서도 한·일 관계의 갈등 관계가 평행선을 그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더해졌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1월17일 정기국회 외교연설을 통해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주장해 ‘독도’를 둘러싼 한·일 관계 역풍이 계속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함께 커졌다.
지난 5년 간 일본 외교가에서는 ‘코리아패싱’이란 말이 횡행할 정도다. 한국은 일본 외교가에서 “강제징용문제를 비롯한 역사문제에서는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해결하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 재협상은 없다’는 식의 단호한 모습까지 보여왔다.
이에 대해 한국은 ‘진정한 사죄와 개인 배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양보 없는 기싸움을 펼치는 중이다. 서로 다른 방향을 응시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비판으로 ‘반일’과 ‘혐한’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현재의 한·일관계에 대해 ‘최악의 국면’이란 말이 종종 나온다. 코로나19 국면에 입출국길이 막혔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자행된 ‘반일불매운동’과 일본이 행한 ‘수출규제’ 여파가 각국 시민들의 가슴에 남아 첨예한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양국 정부 간 갈등이 시민들에게까지 번진 양상이다. 수교 이래 최악의 국면에 빠진 한·일관계 도화선은 ‘형해화 된 위안부 합의’와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이다. 이후 양국은 상호 보복의 악순환을 거듭 중이다.
日 ‘수출규제’, 韓 ‘반일불매운동’ 촉발한 ‘2018 대법원 징용공 판결’
한·일 갈등의 계기는 2012년 5월 대법원 1부의 판결이다. 대법원은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최종 확정하며 도화선이 됐다. 이 같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일본 정부는 이듬해 1월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분쟁 해결 절차를 규정한 제3조에 따라 외교 당국 간 협의를 요청했으나 한국이 응하지 않았다.
같은 해 5월 한·일 양국과 제3국으로 구성된 중재위원회의 설치를 다시 요구하지만, 한국이 이에도 응하지 않자 7월에는 제3국만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 설치했음에도 무시됐다. 이 가운데 6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회견을 가질 수 없었고 양국 간 갈등은 극단적으로 악화했다. 7월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발표했다. 사전 협의나 어떠한 예고도 없었던 갑작스러운 조치였다.
이에 따라 8월에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고 통보했으나 11월 지소미아 종료 6시간 전 양국은 극적 합의를 한다. 한국에서 발단이 된 건 ‘가지 말자. 먹지 말자. 사지 말자. 팔지 말자’는 모토로 ‘반일 불매 운동’이었다. 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 등을 통해 “이 기회에 일본을 넘어서자. 충무공은 배 12척으로 일본을 물리쳤듯이 우리는 싸워 이길 수 있다”고 불매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한국에선 일본 여행 안 가기, 유니클로, 맥주, 담배 같은 일본 소비재 안 사기 등을 이행 했고 일본행 항공권 취소율이 50%에 육박하고 일본 자동차·맥주 등 한국에서 유행했던 소비재들 매출은 대부분 두 자릿수 이상 급락했다. 유니클로 등 한국과 합작기업의 매출은 반 토막이 났다. 말 그대로 광기어린 ‘반일불매 운동’이 극적으로 연출됐던 장면이 있는 데, 바로 인천상인회가 7월23일 남동구 상가밀집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렉서스 차량을 쇠파이프로 부수는 퍼포먼스까지 한 것이다.
이를 낱낱이 보도한 일본은 언론의 과도할 정도의 ‘혐한 감정’ 부추기가 시작됐다. 일본 내 혐한 세력들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한국과 단교”를 외치는 혐한 시위대는 주말마다 도쿄 도로를 점령했다. 한국의 불매운동은 당시 타깃이 됐던 품목들의 수입량·판매량 등이 회복하며 한 풀 꺾인 기세지만, 일본 언론은 이의 회복 추세를 다시금 재보도 하며 ‘불매운동은 허구였다’ ‘거짓말 하는 한국인들’이란 식의 보도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으며 일본 내에서 혐한 기류는 사그라들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위안부 팔이’ 논란에 오염된 30년 여성인권운동
‘위안부 문제와 피해자 사과’도 빼놓을 수 없는 이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부터 ‘일본정부 공식 사죄’ ‘원칙적 대응’과 ‘2015 위안부 합의 전면 재협상’을 내걸었다. 실제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아베 신조 총리와 전화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정서상 수용이 안 되고 있다”고 언급했고,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2017년 7월7일 함부르크 G20 정상회담에서 처음 대면했는데, 아베 총리의 면전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취임 직후부터 일본에 반하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에 더해 위안부기림의날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고, 일본군 위안부문제연구소 사업도 추진되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 재검토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그 결과 비공개 합의 내용이 들어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되며 사실상 합의는 해체되는 수순에 이르렀다. 여성가족부는 2015년 일본에 10억엔을 받아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수순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 2020년 5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두 번의 기자회견을 열고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무소속)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의 전신)를 향해 피해자들을 “이용했고” 모금한 기부금도 할머니들을 위해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정의연 위안부 논란’이 제기됐다.
또한 윤 의원이 회계처리 부실, 안성 힐링센터 고가 매입, 윤 당선자의 개인계좌로 모금된 기부금 사적 사용 문제 등이 제기됐다. 위안부 인권운동 30년차에 가장 비극적인 일이 일본이 아닌 한국의 그것도 위안부 운동의 중심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정치권의 공방이 이어졌고, 일본 측의 이 할머니와 윤 의원에 대한 각종 보도가 쏟아졌다.
‘국제사회에 위안부 네거티브 언론 플레이를 하며 일본을 여성인권을 유린한 파렴치한 전범국’으로 묘사해 온 정의연이 되려 피해자 할머니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부를 축적했단 사실은 일본열도를 뒤흔들만한 스캔들이었다. 결국 윤 의원은 보조금 관리 위반·업무상 횡령·배임·준사기 등 8개 혐의를 받아 재판에 넘겨졌고 현재 재판은 진행 중이다.
논란에도 2020년 12월의 ‘베를린 소녀상 설치 논란’과 같은해 7월 ‘평창 소녀상 앞 무릎꿇은 ‘아베 사죄상’ 등은 일본 내에서 역보도 되며 ’한국의 국제적 반일운동‘은 지속될 것이란 이미지를 심어주며 일본 내에서의 ’혐한감정‘은 더욱 골이 깊어져 가기만 했다.
결국 과거사에 단단히 발목잡혀 과거로의 회귀만 지속하던 한·일관계에 새롭게 등판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같은해 9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를 언급하지 않은 채 주변국 외교에 관한 의견을 밝혔다.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하면서 호주·인도·유럽·아세안 등과 협력하여 미·일 중심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실현하겠다는 그의 외교청사진에 한국은 빠져있었다.
‘과거사 논란’ 봉합하고 새로운 경제·안보 협력 강화해야
평행선을 달리던 한·일관계에 유화의 움직임도 보여지는 중이다. 양국 정상부터 나섰다. 지난해 3·1절 기념사를 통해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과거사가 미래를 위한 양국의 협력을 가로막아서는 안 되며, 과거의 문제와 현안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신임 총리 또한 전임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달리 의회 첫 연설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다.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일관된 입장으로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밝히며 양국 간 관계 개선 여지가 있음을 알렸다.
기조의 물결에 힘입어 차기 행정부에선 느슨해진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양자관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일 공조 등을 통한 새로운 한·미·일 동맹의 복원과 강화를 위한 전략을 짜야 할 필요성이 언급된 대목이다.
과거사 문제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존의 피해자 중심에서 국가 대 국가의 협력 차원의 이슈로 달라진 것이다. 지난해 4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패소했으며,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1+1+α)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으로 재단을 설립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또는 위로금을 지급하는 일종의 절충안인 ‘문희상안’이 테이블 협상 테이블 위에 다시 올랐다.
한국 드라마가 제3의 한류를 불러일으키며 2020년 초반 크게 유행했으며, 지난해 한국 영화계를 뜨겁게 달군 건 ‘귀멸의 칼날’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유통계에선 불매운동 여파로 소비가 크게 줄어든 일본 산 맥주와 자동차 등의 판매량이 회복세를 보이며 ‘문화·경제 교류’ 부분은 코로나19 여파에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한국의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히는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장은 EAI에 기고한 글에서 한·일관계 해법을 위해 “투 트랙 접근, 즉 역사문제와 안보·경제 협력 의제를 이원화하고 탈동조화 하자는 원칙을 견지하자”라며 “복잡다단한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시도는 접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강제동원의 경우 일본기업 자산의 현금화 실시를 최대한 유예하고 양국이 한 차례 보복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도록 정치력을 모아야 한다”면서 “위안부 판결의 경우도 양국관계를 위기국면으로 몰고 간 강제동원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2015년 합의를 재활용하는 등 양방향 협력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점진적 과거사 문제해결과 함께 경제협력강화를 통한 양국 간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득은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상호보완해 나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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