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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휴가 늘이기보다는
정규직 휴가 줄여버린 시대정신
깎아 내리고 절망감 주는 대신
젊음에 희망 줘야 나라가 산다
어른들은 죽어라 싸우지만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은 비슷해졌다. 못난 어른을 둔 탓에 미래가 없어져 버렸다는 공통점을 갖게 됐다.
양국 어른들은 비슷한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다. 우리는 ‘잘 살아보세’, 일본은 ‘우리 모두 잘 사는 사회’ 혹은 ‘위를 보며 걸어가세’. 그리고 양국 어른들 모두 “요즘 것들은 왜 잘 살려고 노력하질 않나. 우리는 전쟁도 뚫고 죽어라 살아왔는데”라며 젊은이를 못마땅하게 본다. 그런 한·일 기성세대들이 양국 젊은이들 행태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판결을 소개한다.
요즘의 시대정신
2020년 10월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한국의 우정사업본부격인 일본우정그룹에 대해 판결을 내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불합리한 격차가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이 하는 일이 비슷하니 대우도 ‘공정하게 하라’는 판결이었다. 당시 우정그룹 정규직은 여름 겨울 합해 휴가가 6일인 반면, 비정규직은 휴가가 없었다. 우정그룹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시대정신’에 맞는 격차 해소 방안을 내놨다.
‘비정규직에게 이틀간 여름 겨울 휴가를 주는 대신 정규직은 휴가를 이틀 줄인다.’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규직 휴가를 줄여버린 것이다. 지난 시대의 정의인 ‘다 같이 잘 살아 보세’ 대신, 요즘 시대정신에 맞는 ‘함께 더불어 평등하게 못 살아 보세’를 택한 것이다. 일부 나이 드신 분들은 “말도 안 되는 짓”이라 비판했지만 사회에서는 “시대정신에 맞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 세상이 됐다. 같이 못 사는 하방 평준화가 거의 유일한 차별 해소법인 세상이다.
허망한 꿈이 돼 버린 “나도 언젠가 결혼하고 집 사고...”
한국과 일본 젊은이가 공통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나도 언젠가는”이란 생각이다. 나도 언젠가는 ‘저 사람처럼 멋지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비롯, 나도 언젠가는 ‘결혼할 수 있다’ ‘애기 가질 수 있다’ ‘집을 살 수 있다’ 등등. 현실감이 없으니 꿈꾸지 않는다. 나름 잘 나가는 친구여야 이룰 수 있는 꿈이 돼 버렸다.
일본 공영 NHK방송이 올해 임금이 오를 것 같느냐고 묻자 젊은이 72%가 그럴 리 없다고 대답했다. 일본에서 요즘은 연봉 4000만원도 고액 연봉자로 간주된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에 ‘(박봉)3000만원으로 살아가기’란 책이 잘 팔렸었다. 요즘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대 초반 남자 연봉은 평균 2100만원이다.
두 세대 전 한·일 양국 젊은이들은 ‘내일은 오늘보다 멋진 날’ ‘내년엔 올해보다 월급이 오를 것’ ‘저건 찜해 놨다가 보너스 나오면 사야지’ 같은 생활을 했었다. 요즘은 그런 세상이 있었나 미심쩍어 한다. 다른 별나라 얘기하나 생각한다.
평등하게 못 살자
“잘 사는 사람 깎아 내리지만 말고 노력 좀 해라. 중산층이 누리는 혜택을 줄일 경우 자네가 중산층 됐을 때 손해 볼 것 아닌가.”
이 말은 이제 설득력 없다. 그런 자리에 올라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풍요롭게 사는 사람을 봤을 때 “부럽긴 하지만 나도 분명 저런 삶을 누릴 때가 올 것”이라고는 이제 생각하진 않는다.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2030세대가 느끼는 공정은, 나에게서 부를 약탈해간 자를 손 좀 보고 끌어내리는 것이다. ‘다들 잘 살자’ 대신, ‘평등하게 못 살자’가 공정한 사회로 비쳐진다. 모두가 이득을 보는 방향으로 협조하는 ‘호혜 의식’은 지금 기능부전 상태다. 이제 손잡고 ‘잘 살아 보세’를 노래하는 젊은 사람은 없다.
포퓰리즘 생존에 최적인 환경
잘 사는 녀석은 분명 부당한 기득권자이므로 비리를 밝히고 끌어내리는 것이 민의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포퓰리즘 정당이 안 나오면 이상하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선 오랫동안 주변부를 맴돌던 청년이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가정을 꾸리고 집을 사는, 전에는 당연했던 5대 일상을 못 하게 된 ‘청년 문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난제다. 하지만 아무리 난제라고 해도 지금과 같은 식으로 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의 어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비니를 쓰고 조거팬츠를 입고 춤을 추며 ‘스우파(스트릿우먼파이터)’ 흉내나 내고 있다. 깊은 생각 없이 “20대로 있는 동안 매년 100만원(병사 월급은 200만원) 주겠다”고 공약하고, 주택 311만호 공급할 테니 집 걱정 말고 표나 달라고 한다.
‘짱구는 못말려’의 장르
전에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방영된 ‘짱구는 못 말려’라는 TV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부부가 단독주택에 살며 자가용 굴리고 개구쟁이 아이 둘이나 키우는 ‘극히 평범한’ 중산층을 그린 만화였다. 작가도 그런 중산층 가정을 만화의 배경으로 잡었다. 하지만 요즘 20대가 보기에 짱구네 집은 ‘압도적 승자’ ‘부유층 가정’이다. 절대 서민 집안이 아니다.
그런 집을 ‘일반 가정’이라 부르는 세상은 수십 년 전에 사라졌다. 기성세대에게 짱구네 집은 최불암 김혜자 나오는 그리운 옛 드라마인 ‘전원일기’지만, 20대에겐 ‘판타지’로 장르가 분류된다.
솔직히 필자도 잘 모르지만 외국을 보면 사회주도층이 △신자유주의 비판 △좌파 가속주의 제안 △AI와 사회참여 등 미래의 주인인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는 토론을 하고, 이념을 개발해 앞으로 살아갈 길을 모색해주는 등 죽기 살기로 뭔가 하고 있다.
그렇게 노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젊은이의 미래에는 분명 희망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둘째 남을 깎아 내리기만 하는 것이 결코 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적어도 정상은 아니라고 믿게는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좌우뿐 아니라 위아래도 죽어라 싸우는 나라, 그러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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