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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축구사에 빛날 6번째 대기록
가시밭길 우려됐지만 오히려 꽃길
본선대비 '호랑이 발톱' 세워야 해
8강 진출, 사치스런 희망사항 아냐
월드컵 축구대회는 단일 종목으로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다. 엄밀히 말하자면 국가 대항전인 세계축구선수권 대회다. 월드컵을 주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은 209개국에 이르며, 단일 종목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행사이자 가장 오래된 세계선수권대회다. 월드컵이라는 단어는 일반 명사가 되어 요즘에는 야구·농구·빙상·사격 등 여러 종목에서도 월드컵이라는 이름으로 대회를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월드컵이 전통성과 최고의 대회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심어진 이유다.
두 경기 남겨놓고 본선 확정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얼마전 2022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을 거뜬히 통과해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최종예선 두 경기를 남겨 놓고도 일찌감치 티켓을 거머쥔 것은 젊은 대표 선수들의 투혼과 열정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무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한국은 이제 단골손님이다. 이는 월드컵 5회 우승에 빛나는 브라질(22회), 4회 우승을 차지한 독일(16회), 두번 우승한 아르헨티나(13회) 등에 이어 세계 6번째의 값진 기록이다. 한국이 세계무대에 처음 출전한 것은 6·25 전쟁의 상흔이 심각했던 1954년 스위스 대회다. 이를 포함하면 무려 11번째나 된다.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대진이 결정됐을 때 온통 중동 팀과 대결이라 카타르로 향하는 과정이 가시밭길로 예상됐지만 기우였다. 오히려 환상적인 꽃길이었으며, 역대 최고로 순탄한 과정을 밟았다. 중동 원정경기는 한국 입장에서는 상대팀과 전력차를 떠나 항상 껄끄러웠다. 긴 이동시간과 상대국의 홈 텃세, “침대 축구” 등 극복해야 할 변수가 많기 때문이었다.
월드컵 도전 역사는 영욕의 세월
한국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도전사는 그야말로 영욕이 교차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당시 한국은 숙명적인 일본과 2차례 경기에서 1승1무로 꺾고 세계 무대로 향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반일감정이 수그러지지 않은 데다 양국 간 국교가 수립돼 있지 않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에서 일본 선수들 꼴도 보기 싫으니 홈 경기도 일본에서 치르라고 지시했고,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대한해협에 빠져 죽어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본선에서 헝가리에 0-9, 터키에 0-7로 패해 탈락하며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물론 이때에는 경기 전날 스위스에 도착하는 등 대표팀에 대한 지원도 형편없었다.
세계 무대를 끊임없이 노크했지만 그때마다 티켓 획득 일보 직전에서 분루를 삼켜야했던 한국 축구였다. 본선 진출이 너무나 멀고도 험한 길이어서 월드컵 진출은 ‘꿈의 무대’로 여겨졌다. 당시에는 월드컵 예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스위스 대회 이후 다시 월드컵 무대를 밟기까지는 무려 32년의 세월이 걸렸다.
불가능한 업적이었기에 ‘신화’라 불러
아시아의 맹주로 월드컵에는 계속 출전했지만 1승을 거두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이라크가 일본에 2-2로 비기면서 골득실차에 의한 ‘도하의 기적’ 덕분에 나간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2무1패를 거둔 게 2002한일월드컵 이전까지 그나마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1998프랑스월드컵 당시에는 대회 도중 차범근 대표팀 감독이 경질되기도 했다. 2002한·일월드컵은 외국인 감독으로 준비했다. 4년 전 0-5 치욕의 패배를 안긴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 평가전에서 거푸 대패하면서 비난 여론이 비등했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조1위로 16강에 오른 뒤 이탈리아를 2-1로, 8강에서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누르고 4강에 올라 한국 축구는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업적을 이뤄냈기에 ‘4강 신화’라고 부르는 이유다.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원정 16강이라는 성적을 냈지만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2014브라질월드컵, 신태용 감독의 2018러시아월드컵에서는 모두 조별리그 탈락을 면치 못했다.
카타르를 향한 여정은 이미 시작
벤투호가 본선행을 확정 지은 만큼 부상 예방 등 전력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데다 본선을 일찌감치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두 경기에서는 새로운 인물을 기용하거나 다양한 전술을 부담없이 시험해 볼 수도 있다. 실전만큼 더 좋은 훈련은 없지 않은가.
다음달 29일 아랍에미리트(UAE)와 원정 10차전으로 최종예선 일정을 마무리 하지만 벤투호의 카타르월드컵을 향한 여정은 벌써 시작됐다. 4월 1일 카타르 도하에서 월드컵 본선 32개국 조 추첨이 진행될 예정이다. 조별리그 상대가 결정되면 맞춤형 전략 구축 등 대표팀의 시계는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벤투 감독은 최종예선을 치르는 동안 투쟁심이 강한 해외파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의 뼈대를 구축해 성과를 거뒀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베스트 11이 사실상 결정됐다고 볼 수 있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는 골키퍼 3명을 제외하면 20명이다. 필드 플레이어 포지션 10개를 각각 두 명씩 채울 수 있다는 얘기다.
최종 엔트리를 확정할 때 중요한 요소는 멀티 플레이 능력이다. 멀티 플레이어가 있으면 다른 포지션을 더 보강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흔히 한국축구 대표팀 사령탑 자리는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된다. 하지만 벤투 감독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역대 가장 긴 3년 5개월간 대표팀을 이끌고 있어 선수들의 장단점을 훤히 꿰고 있다는 것도 대표팀으로서 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국민에게 용기와 힘 심어줘야
5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탓에 사상 처음으로 11월에 열릴 카타르 월드컵까지 벤투호는 다양한 공격 옵션을 확보하는 시험을 통해 ‘호랑이 발톱’을 날카롭게 세워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호랑이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상징이다. 월드컵 본선이 다가오면 국민적 응원과 격려는 당연히 쏟아질 것이니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된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면 늘 작아졌다. 홈 그라운드의 잇점을 잔뜩 안은 2002년 대회 때처럼 4강 신화를 바라는 게 아니다. 이번에는 더도 말고 원정 최고인 8강 성적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축구 대표팀이 본선에서 선전을 하면 국민에게 큰 용기와 에너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20년 전의 월드컵 때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더 이상 월드컵 본선 무대에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지는 않다. 월드컵에 무려 10회 연속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에게 8강 진출은 결코 사치스런 희망사항이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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