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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난공불락의 시장이다. 그간 우리 상품이 진입하기 어려웠다. 선진국 시장 중에 일본만큼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 시장이 없다고 할 정도로 혀를 찬다.
그래서인지 일본 시장을 지레 포기하고 과녁을 다른 시장으로 돌리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일본 시장을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본 소비자들의 환심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여기에다 일본의 복잡한 유통 구조로 수입 상품이 현지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특히 가전이나 자동차와 같은 내구성 소비재의 경우 특히 그렇다. 과거 우리 브랜드가 과감하게 일본 시장 진출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연전연패하고 퇴각하는 수모를 당하기 일쑤였다. 일반 소비재 상품은 시황에 따라 등락을 하고 있지만 이마저 양국 국민의 정서적 반감의 골이 깊어지면 졸지에 타격을 받기도 한다. 한국에서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나는 것과는 다소 다르지만 이에 대한 반사작용이 일본 소비자들에게도 지속해서 나타난다. 피장파장인 셈이다.
일본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성향을 보면 시장 폐쇄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작년 일본 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보면 수입 브랜드는 5.4%에 불과하다. 수입차의 무덤이라는 평가가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를 단순한 애국(愛國) 소비의 형태라고 단정하기보다 소비자들의 경색된 보수적 구매 접근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일본 자동차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제조업체뿐만 아니고 소비자에게까지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이미 한국에 글로벌 1위 자리를 내주고 있는 가전이나 스마트폰 시장 구조에서도 유사하게 확대 적용된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시장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자랑하는 한국산의 점유율은 7.8%에 그치고 일본산은 무려 91.6%로 압도적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글로벌 선두주자인 삼성이 겨우 10% 점유율을 그것도 작년에 확보했다. 특이하게 소니와 샤프가 20% 대의 점유율을 갖고 있고, 애플이 무려 45%를 점령하고 있어 다소 의외이다. 이를 달리 해석해 보면 한국 브랜드에 대한 경험적 경시 풍조가 미국 브랜드인 애플 구매로 기울어졌을 가능성이 짙다.
이런 일본 시장에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장이 정체되면서 소득이 감소하고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지고 있는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콧대 높던 시장에 빗장이 풀리고 있다는 해석이다. 가성비(價性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맹목적인 자국산 구매에서 이탈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편승해 일본 수입 시장 안방에서 한국산이 아닌 중국산 진출이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휴대폰·노트북 등 전자 제품의 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 확인된다.
현지 유통업체의 상품기획·개발 수입의 기여도가 크다. 일본 전체 수입에서 중국산 비중이 23.3%로 미국의 18.1%나 독일의 8.5%를 크게 능가한다. 수입 품목 5000개 가운데 중국산 점유율이 50% 넘는 품목이 무려 1133개에 달한다. 반면 노동집약형 상품은 수입이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주력 수입처가 중국에서 동남아로 이전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산의 일본 수입 시장 점유율은 4%대에 정체되고 있어 여전히 초라하다.
일본 시장에 한국산 자동차·가전 본격 진출 절호 기회, 분위기 조성도 필요한 시점
마침내 현대차가 12년 만에 일본 시장 재공략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철옹성인 내연기관 차가 아닌 전기차와 수소차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 실패의 쓰라린 흔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반드시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다. 그러나 투지와 궐기만으로 일본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미래차에 대한 성적을 보면 한국차가 일본차보다 한 수 위다. ‘넥쏘’가 수소연료전기차(FCEV) 부문에서는 도요타의 ‘미라이’를 제치고 선두를 지키고 있다. 전기차 ‘아이오닉 5’는 일본차보다 10% 이상 저렴하고 품질에서도 뒤지지 않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많이 파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까다로운 일본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만큼은 일본이 글로벌 테스트 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환경 자동차 일본 시장에서 유의미한 점유율을 만들어낸다면 해외 시장에서 유리한 우월적 고지에 오를 수 있다. 일본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하며, 촘촘함 유통망과 A/S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자동차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전이나 스마트폰은 빠르게 시장에 침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한 자릿수에 머물던 삼성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두 자릿수로 올라오고 있어 발판이 구축되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산 가전을 판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조금씩 틈새가 열리고 있다.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LG가 두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쾌거다. 아직은 한 자릿수 점유율에 그치고 있지만 두 자릿수로 올라서기만 하면 상승 곡선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산 중저가 제품에다 기존 일본 브랜드들의 시장 저지가 워낙 억척스러워 이를 허물기 위해선 품질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TV가 아닌 시장 진출이 전무한 백색 혹은 갈색 가전 제품에서도 현지 유통망과 협력을 통해 묘수를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의 일본 시장 상륙은 일반 소비재 상품의 일본 시장 공략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한국산은 저급하고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일본 소비자들의 고정된 인식을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본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 수입 상품의 내수 시장 침투를 완벽하게 막아내는 것이 점진적으로 쉬워지지 않고 있다. 우리도 시장 다변화와 세계 최대 난도의 시장을 공략한다는 차원에서 더는 미룰 수 없다. 일본 시장을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양국 간의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 정서의 회복이 절실하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미국과 중국, 즉 G2의 구도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예전과 다르게 일본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으며, 우리도 버틴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G2의 독주를 저지하기 위해서도 한국과 일본의 전략적 결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홀로 대응하면 역부족이지만 둘이 힘을 합치면 시너지 효과 창출이 가능하다. 누가 먼저 선뜻 손을 내미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민간 레벨에서 먼저 장(場)을 열어야 한다. 양국 산업 구조의 면면을 보더라도 공감대만 형성되면 협력의 공간이 열릴 수 있다.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이에 묶여 미래를 닫는다면 실로 어리석은 짓이다. 교역과 기술 교류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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