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주 
14년 전의 립싱크 소녀 사건 대신
허베이 산골 소년소녀 내세운 중국
하계서 동계 올림픽으로 바뀌었지만
중국최고 외치는 ‘중화심성’은 여전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 어린이들이 올림픽 찬가를 불렀다. 중국 언론들은 ‘그리스어로 노래한 아이들 목소리는 맑았고 희망에 넘쳐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5~11세 허베이성(河北省) 산골마을 출신 어린이 44명이며 마란화(馬蘭花) 합창단 소속이다. 영화감독인 장이머우(張芸謀) 개회식 총감독은 부러 산골마을 아이들을 골랐다고 한다. 아이들 마을은 전에는 빈곤의 상징 같은 곳이었다. 중국의 빈곤탈출 운동이 여기서 시작됐을 정도다. 과거 베이징 교사들을 지방으로 보내는 운동이 있었는데, 이곳에 내려온 베이징 출신 교장이 마침 음악교사 출신이라 합창단 문화가 뿌리 내렸다고 한다.
이 아이들을 보고 반성했다. 중국에 대해 지나친 선입견이 있었다고 반성했다. 사실 개막식을 보기 전 머리에 있던 건 14년 전인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이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계 올림픽 하면 수영의 박태환, 금메달을 딴 야구 정도가 기억난다. 기억력 좋은 사람이라면 개막식 ‘립싱크’ 사건이 떠오를 지도 모른다. 립싱크 사건은 올림픽 열기에 밀려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었다. 간단히 소개한다.
14년 전의 립싱크 사건
2008년 중국 국기 오성홍기가 입장할 때 나왔던 제2의 국가 가창조국(歌唱祖国)은 ‘오성홍기가 바람을 맞아 휘날리고, 승리의 노래 소리 울려 퍼진다’로 시작한다. 그 노래를 꾀꼬리 같이 불렀던 9세 소녀 린먀오커(林妙可)는 일약 스타가 됐다. ‘천사의 목소리’란 극찬을 들었다. 하지만 3일 후 린먀오커는 일약 짝퉁이 된다. ‘립싱크’한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노래는 사전에 녹음된 것이었고, 더구나 자신이 아닌 두 살 어린 양페이(楊沛宜)가 불렀던 것이었다. 이게 베이징 올림픽 립싱크 사건이다.
양페이는 노래 실력은 빼어났지만 마침 젖니를 가는 시기여서 이빨이 몇 개 없었다. 개회식을 총괄한 장이머우는 이빨 빠진 양페이 대신 얼굴 예쁜 린먀오커를 뽑아 립싱크 시켰다. 양페이와 부모는 개막식 며칠 전까지 그런 사실을 몰랐다. 양페이는 너무 분해서 팔을 물어뜯었고, 앞으로 절대 노래 안 할 거라며 울었다. 미국 타임스는 이 사건을 ‘2008년 세계 10대 스캔들’로 선정했다.
그런데 진짜 충격은 립싱크 다음에 이어졌다. 스캔들 터지면 자살하는 일본이나, “기억 안 난다”는 우리와는 다른 중국식 수습방안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기대대로 나왔다.
“우리는 올바른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었다. 국익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했다.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낼 어린이는 이미지, 내면, 표현에 흠이 없어야 했다”(개막식 음악총감독).
“보다 훌륭한 개막식을 위해 감독과 방송사가 합의해 결정했다. 최고의 선택이었다”(베이징 올림픽 조직위).
당시 불꽃을 쏘는 장면도 CG를 이용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개막식 비주얼 담당자는 이렇게 자백했다. “28개의 불꽃을 헬리콥터에서 촬영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CG를 사용했다. 대부분 관객이 이 영상을 진짜라고 생각했기에 우리의 임무는 완수됐다.”
‘완벽한 동화’같은 나라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은 완벽한 조작에 만족했는지 모르지만 립싱크, CG가 밝혀진 뒤 ‘중국제 금메달 금박을 까면 초콜릿이 나온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중국 전체주의’ 풍모가 엿보였다.
2022년 2월4일에 본 베이징 모습은 14년 전과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완벽’ 대신 산골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세계에 내세웠다. 조금 세련되어 졌구나 했다. 하지만 역시나 였다. 면면히 흐르는 중국 전통이 있었다.
우선 그토록 오래 입어온 한복을 우리 것이라고 새삼 주장해야 하나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네덜란드 공영 방송사 기자는 올림픽 중계하다 붉은 완장 찬 의문의 남성에 끌려 나갔다. 중국-일본 여자아이스하키 시합을 앞두고 “고함치며 응원하면 안 된다”고 중국측이 정했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그런데 엄선된 중국 관중은 파이팅(=加油)을 외쳐댔고, BGM으로 ‘보위황하’(保衛黄河)를 틀었다. 우리의 ‘때려잡자 김일성’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 노래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에서 편파는 명명백백했고, 독일 스키점프팀 감독은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했다. 네티즌들은 “이럴 거면 니들끼리 올림픽 하라”고 분노했다. 공영방송 KBS 해설위원 이정수는 “빨리 귀국해서 다음 올림픽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콩쥐팥쥐 같은 삶을 산 립싱크 주인공들
이렇게 무협지 같은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중국이란 나라. 하계올림픽 립싱크 소녀들은 14년 동안 그 거친 중원에서 잘 살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 콩쥐팥쥐 같이, 무협지 주인공처럼 살았다.
립싱크 주인공 린먀오커. 사실은 2008년 올림픽 이전부터 광고나 드라마에 얼굴을 비치던 소녀였다. 립싱크 사건 후 연예계를 떠나라는 말도 들었지만 굳건히 연예활동을 이어갔고 립싱크를 계기로 오히려 지명도는 올라갔다고 한다. 드라마 광고에서, 예능 영화로까지 활동무대를 넓혔고 출연료도 올라갔다. 하지만 18세가 된 2017년 중국의 3대 예술대학에 모두 낙방했다.
진짜로 노래를 불렀던 양페이는 언론취재가 쇄도했지만 아버지가 모조리 거절했다. 몇 개 레코드사와 계약했지만 빛은 못 봤고 공부의 길로 간다. 베이징의 명문 중국인민대학 부속 중고교에 합격했다. 수학을 잘 했다고 한다. 고교시절 NEC(전미 경제학 챌린지) 콩쿨, USAD(미국 학업 10종경기)에서 수상했다. 수상 사실이 중국에 알려져 성적이 우수하다는 뜻인 학패(学覇)로 칭송받는다.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작사 작곡과 라이브 공연도 한다.
험난한 세상에서는 때로 동화 무협지 읽는 것이 위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는 말자. 아무리 경제적으로 중요한 나라라고는 해도 중국에는 이렇게 진실 대신 ‘동화같이 아름다운 것’을 내세우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는 살자.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