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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30년 동안 인구 2.05배 증가… 전국 1위
/부동산정책에서 비롯된 경제도 승승장구
/이재명 대선후보 만든 건 ‘본인 능력’ 아니다
/차라리 북부 지자체 맡아 업적 올렸더라면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구 감소와 경제 부진 등으로 형편이 어렵다고 저마다 아우성이지만 그 속에도 예외는 있다. 경기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지역 활성화의 첫 번째 지표는 인구 증가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경기도의 인구는 1356만명으로 집계됐다(통계청 행정구역별 주민등록인구 현황).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에서 압도적 1위다. ‘경기도의 힘’은 규모보다는 해마다 늘어나는 스피드에 있다. 30년 전인 1992년에 경기도 인구는 661만명이었다. 2.05배의 증가다. 같은 기간에 한국의 전체 인구는 16%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하다.
또 다른 지표가 ‘지역내 총생산’, 즉 GRDP다. 이른바 GDP로 알려진 ‘국내 총생산’의 시도(市道)별 버전으로 보면 된다. 1990년 기준으로 경기도의 GRDP가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4%였으나 2019년에는 24.9%로 상승한다. 같은 기간 서울은 25.9%에서 22.5%로 하락하면서 1위 자리를 경기도에 내줬다. 같은 수도권인 인천도 5%에서 4.7%로 떨어졌다(현대경제연구원 ‘지역경제의 현황과 시사점’).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도 경기도만 인구와 경제 양쪽 측면에서 몸집을 크게 키워온 것이다.
자주 입방아에 오르는 수도권 집중은 실은 ‘경기도 집중’으로 보아야 정확하다. 수도권 규제의 표적이 되어온 서울은 1992년 인구 1093만명으로 최고치를 찍은 뒤 30년째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에도 15만9000명이 감소해 950만명을 기록했다.
경기도가 팽창한 이유는 서울의 주택값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 경기도 지역을 집중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이미 주택이 꽉 들어차 있는 서울 지역은 재개발·재건축을 하는 방법 이외에는 집 지을 새로운 땅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울의 재개발·재건축은 제한적이었고 그 결과 강북 같은 곳에는 1960, 70년대의 허름하고 낡은 도시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강남의 비싼 아파트값에 가려져 있어 그렇지 서울은 전국에서 양극화가 가장 심한 지역이다.
반면에 경기도의 잘 나가는 도시들은 넉넉한 살림살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반도체와 자동차 사업장 등이 몰려 있는 화성시의 경우 1인당 GRDP가 1억266만원에 이른다. 한국의 국민소득이 3만달러라지만 이 지역은 훨씬 높은 8만달러가 넘는다는 얘기다. 물론 경기도 북쪽으로 가면 재정자립도 10%대의 가난한 시군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경기도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좋은 신호들만 켜지는 게 아니다. 서민들을 분노케 하는 스캔들도 이 지역에서 유독 많이 터진다. 대장동 사건, 백현동 옹벽아파트 의혹, 두산 그룹의 분당 토지와 성남 FC 사이의 주고받기 거래 의혹 등이 그것이다.
이재명 대선후보 아들의 ‘특혜 입원’도 비슷한 시기에 성남 국군수도병원의 토지 용도변경과 맞물려 있었고, 오리역에 위치한 LH와 하나로 부지는 대장동 사건으로 재판 받고 있는 김만배 씨가 “성남은 우리 땅”이라며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해마다 쑥쑥 키가 자라는 경기도의 발전상과, 썩은 냄새로 진동하는 다른 한편의 ‘검은 거래’ 의혹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자치단체장의 도장 한 번에 보통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확천금이 발생하는 것은 급속도로 성장하는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부패와 비리도 그만큼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노른자위인 경기도의 도지사와, 그중에서도 또 노른자위인 성남시의 시장 자리를 발판으로 대선 도전에 나선 이재명 후보가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었다. ‘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대통령’이 그것이다. 이전에는 ‘이재명은 합니다’ ‘앞으로 제대로, 나를 위해 이재명’을 사용한 바 있다. 이 문구들에서 드러나듯이 이 후보가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며 스스로 주장하는 자신의 강점은 ‘유능’과 ‘추진력’이다. 이걸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전략이다. 과연 이재명이 경기도에서 일을 잘했는지 여부에 대한 검증이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걸림돌이 되는 게 경기도 행정에 대한 중앙 정치무대의 무관심 혹은 무지다. 서울 바로 옆의 지자체 일을 어찌 모르겠느냐는 반론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대장동 사건이 이름조차 생소한 경기도 지역신문에서 처음 제기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대선에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냥 묻혀 지나갔을 수도 있었다.
‘가짜 민주주의’ 연구로 알려진 티머시 스나이더 미국 예일대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지역에 대한 무관심이 SNS의 부작용이라고 분석한다. SNS를 통한 정치적 담론이 중앙 무대의 이슈들로 주로 채워지는 바람에 지역 언론들은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재명 관련 여러 스캔들도 대장동 사건이 터지면서 성남시나 경기도 쪽을 통해 뒤늦게 고구마 넝쿨 이어지듯 나온 것이다. 더구나 한국 지역정치는 특정 정당이 거의 독재나 다름없이 장악한 상태라 끼리끼리 입을 맞추면 밖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넘어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재명의 ‘추진력’이라는 것은 여러 다리 건너 전해진 간접적인 이미지로부터 비롯된 것이거나, 말솜씨에 포퓰리즘을 혼합한 ‘사이다’ 발언을 통해 이뤄진 허상(虛像)이 대부분이다. 이 후보가 스스로 잘했다고 주장한 일들로 무상 교복, 청년 배당, 계곡 정비 등이 거론되지만 부자 지자체에서 돈 나눠준 일을 국가경영 능력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한국 정치의 천박한 수준을 드러낸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읊은 어느 시인처럼 이재명 후보를 키운 건 본인이 아니라 경기도였다. 차라리 경기도 내 재정자립도 1위인 성남시(58.5%)의 시장이 아니라, 최하위 동두천시(14.4%) 같은 열악한 지역의 시장을 맡아 실적을 올린 뒤 ‘경제대통령’을 주장했다면 본인이 가만히 있어도 누구나 수긍했을 것이다. 경기도로 일어선 그가 최근 경기도의 일로 무너지고 있는 걸 보면 그의 실체는 더 분명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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