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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지구촌 팬데믹(대유행) 3년 차, 이에 따른 후유증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예고된 경제 참사가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이른바 인플레이션 압력이 걷잡을 수 없이 도미노처럼 번진다.
오미크론 변이가 기승을 부리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회복 기미를 보이던 세계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치솟는 물가로 금리 인상이라는 출구 전략을 쓰려고 하는 갈길 바쁜 국가들의 발목을 잡는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다 보니 돈을 푸는 국가 정책 수단의 약발이 한계를 드러낸다.
여기에다 공급측 요인은 갈수록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포스트 코로나로 가기 위해 분주한 각국 경제의 시나리오 플래닝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V자형 희망은 물 건너가고 공포의 더블딥, 즉 W자형 회복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성장률에 대해 양보를 하더라도 당장 물가를 잡지 못하면 더 큰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린다. 인플레를 잡는 것이 글로벌 경제의 현안이 되면서 각국 정부의 정책 대응이 무대 위에 오르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확대로 먼저 피해를 본 경제주체가 자영업자·소상공인이다. 이들의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는 목청이 크다. 이제는 물가 급등으로 소비자들의 지갑도 점점 더 얇아지고 있다. 공급 측뿐만 아니라 수요 측에도 피해가 전이됨으로 인해 경제가 이중고(二重苦)에 직면한다.
발등에 떨어진 두 개의 불처럼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커진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 이외에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장기화가 이를 부채질한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원자재를 비롯해 완제품 가격이 오르고, 물류 대란까지 겹치면서 딜레마가 가중된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 등도 이에 불길을 지폈다. 강력한 재정·통화 정책으로 경기 회복 추세가 일시적으로 나타났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인플레이션이라는 복병에 덜미를 잡혔다. 이로 인해 대부분 국가가 경기 부양보다는 천정부지의 물가를 잡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 대세다. 기존의 위기가 줄기보다 새로운 위기에 직면함으로써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다.
특히 소비자들이 당혹하는 것은 월급은 천천히 오르지만, 물가는 더 빨리 오른다는 점이다. 한동안 억눌려 있던 물가 인상 요인들이 대선(大選)을 앞두고 마치 고삐 풀린 듯 마구잡이로 오르고 있다. 임금보다 물가가 더 빨리 올라 살림살이가 궁핍해지는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이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타격이 불가피하며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킨다.
최근의 거시경제 환경 변화도 물가 불안을 유도한다. 국제유가는 7년 만에 최고치인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고 120달러 전망도 나온다. 탄소 규제 등의 친환경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석유나 금속 원자재에 대한 공급이 줄어든 반면 수요는 늘어나면서 가격이 오르는 ‘그린플레이션(Greenfaltion)’까지 나타난다. 또한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가파르게 올라 원자재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호재로보다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만 그렇지 않고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애써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대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등생이 될 확률이 낮아 보인다.
오늘 잘 살기 위해 미래 세대에 빚더미 안기는 건 비겁하고 비도덕적, 악순환 고리 끊어야
물가가 오른 것은 우리만 아니다. 집값만 하더라도 전 세계 국가들이 한결같이 올랐다. 풀린 돈이 부동산이나 주식 혹은 암호화폐 등과 같은 투기성 투자에 몰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주택 가격 상승이 공급 부족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보다도 자산 시장에 자금이 몰리는 일종의 유동성 파티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안타깝게도 금리 인상의 시작과 동시에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소위 빚투(빚내서 투자) 족들의 시름이 깊어진다.
특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투자에 올인한 청년들의 빚이 무려 458조원이라는 엄청난 폭탄이 돼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판이다. 국가 부채에 가계 부채까지 눈덩이처럼 급증하면서 한국 경제의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위험의 징조가 계속해서 불거짐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해온 정책 실기와 도덕적 해이가 ‘회색 코뿔소’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임박하기 전까지는 외면하는 리스크)의 공포로 엄습하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닥치면서 공급자에 이어 수요자까지 주름살이 파인다. 자칫하다가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일시에 붕괴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점점 가중되고 있다.
이처럼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선 시계추는 빠르게 돌아간다.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현금성 복지와 감세 공약, 무책임한 대출 규제 완화를 마구 쏟아낸다. 누가 당선돼도 최소 200조원 이상의 추가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다.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퍼주기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경쟁국이 돈을 조이는 것과 비교하면 정확하게 역주행이다. 물가는 더 오르고, 추가 금리 인상을 피할 방도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14년 만에 3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면서 재정과 더불어 쌍둥이 적자의 적신호까지 깜박거리고 있다. 이로 인해 조만간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설 수 있어 한국 경제의 신용등급 하락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대외 여건 악화로 국내 경제 정책 혼선으로 국가·기업·가계가 다 같이 파탄이 나는 최악의 경제 위기 상황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유가·금리·환율의 신(新)3고(高)로 기업의 원가 부담마저 급격히 늘어나면서 채산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증가세는 30%에서 1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위기에 대한 절박감이 실종된 지 오래다. 내일보다는 오늘만 살자는 보신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난국을 돌파해 보자는 의지와 지혜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기 자식의 안위에 대해서는 기를 쓰고 챙기지만 정작 미래 세대가 빚의 늪에서 허덕이다가 전부 공멸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애써 귀를 닫는다. 국가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기업이 모두 해외로 떠나면 이 땅에는 알곡이 없고 쭉정이만 남는다.
혹자는 지나친 기우이고 한국 경제가 그리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가 순식간에 고꾸라진 국가들의 사례가 허다하다. 심지어 한 때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경제 대국 일본도 선진국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기막힌 소리까지 들린다. 올라가는 데에는 긴 세월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일순간이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이웃 중국이나 일본보다 우리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현명하고 진취적이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유산은 고사하고 빚만 넘기는 것은 실로 비겁하고 비도덕적이다. 다음 세대를 지키기 위해 채찍을 들고 눈 부릅뜨고 경계심을 낮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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