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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동차 회사 광고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손뼉을 쳐서 전등을 끄려고 하는 아이와 스위치를 누르는 할아버지, TV 모니터를 손으로 넘기는 아이와 리모컨을 든 할아버지의 흥미로운 대조가 눈에 띈다. 마지막은 자동차 장난감을 소리 없이 가지고 노는 아이가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장난감을 다루는 할아버지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마무리된다. 스마트 기기와 전기 자동차가 함께하는 세상이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킨 재미있는 장면들이다.
기술의 발전은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로 우리의 공간을 재편하고 있다. 전화뱅킹에서 나아가 스마트폰 하나로 은행 업무가 쉬워질수록 은행 창구가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패스트푸드점, 카페 등 일부 매장은 점원이 주문을 받지 않는다. 주문은 키오스크를 통해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일하는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고 내어줄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가 영향으로 활발해진 배달 앱은 새로운 유형의 식당을 만들었다. 그들은 포장, 배달 전문으로 더이상 부엌과 손님들의 식사 공간이라는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스마트폰과 웹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이 다양해질수록 실제 공간의 변화도 다양해지고 있다.
2012년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컴퓨터라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함께 3차 산업혁명을 최초로 정의했다. 그러나 그는 기술에 주목하기보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식과 변화한 커뮤니케이션 양상에 집중했다. 물리적 공간을 벗어난 가상 공간을 출현했고, 가상 세계는 사람과 사람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사회망으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그 공간 안에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한다. 중고 거래 앱에는 단순히 물건에 관한 정보 이외에도 거래자와의 신뢰 관계 구축을 위한 장치가 마련된다. 사람의 매너를 측정하는 온도를 두고, 가상 거래를 안전하게 만들며 더욱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나간다.
독일의 사회학자 마르쿠스 슈뢰어는 실제로 사람들이 인터넷을 공간으로 이해하고, 공간으로 꾸미려고 시도한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보았다. 그는 가상 세계에서 수행된 행위가 실제 세계 속으로 연장되며 영향력을 갖는 점에 주목했다. 가상과 실제의 경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져 ‘유랑하는 경계’ 라 일컬었다.
그가 관찰한 것처럼 인터넷 서핑을 하고 홈페이지에 들어가고 나온다는 표현 안에서 우리가 가상 세계를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할 수 없는 인터넷 세상에 ‘공간’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이 흥미롭다. 실제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유행했던 싸이월드를 예를 들어보면 미니홈피에 있는 캐릭터 미니미와 미니룸을 꾸미는 노력이 실제 집을 꾸미는 것만큼의 인기와 열정이 있었다. 지금은 소셜 네트워크의 개인 피드가 나만의 공간을 의미하고 댓글을 남기는 담벼락은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우리집 울타리의 게시판처럼 사용된다. 이처럼 우리는 실제 거주하는 공간만큼 개인이 가상에서 활동하는 공간 또한 삶의 터전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가상 공간에서 우리의 활동은 다시 오프라인으로 이어진다. 대표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은 2015년 미국 시애틀을 시작으로 오프라인 서점인 아마존 북스(Amazon Books)를 선보여왔다. 아마존 북스는 오프라인 서점을 기반으로 성장한 매장과 달리 온라인 서점의 장점을 활용하여 차별화를 도모한다. 온라인 서점의 장점은 책에 관한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듣고 참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마존 북스는 온라인에서 수집된 리뷰와 평점을 기반으로 오프라인 서점에서 정보를 공간화하여 제공한다. 아마존 북스는 검색해야만 찾기 쉬운 온라인 서점의 한계를 오프라인에서 극복한다. 낯선 도서와 마주칠 수 있는 우연과 동시에 여러 사람의 의견을 기반으로 한 정보를 제공하여 실제 공간의 이점을 극대화한다.
가상 세계의 한계를 실제 공간에서 해소하고, 다시 실제 공간의 한계를 가상에서 해결하는 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성수에 위치한 공간 와디즈는 펀딩 진행 중인 제품을 체험하고 펀딩과 관련한 스토리를 제시하며 사람들의 교류를 이끌어내는 오프라인 공간을 가지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사람을 모으고 모금 활동을 진행했던 서비스가 오프라인 공간을 필요로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며 교류하기 위한 실제 공간에서의 플랫폼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구성될 때 시너지 효과를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가상 세계로 넘어가 실제 세계의 삶이 무료해진다. 컴퓨터 게임 중독처럼 가상 세계에 몰두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미래 도시를 그린 공상 과학 영화의 설정도 낯설지 않다. 우리는 그간 이분법적인 질문의 갈림길에 있었다. 가상 공간의 발달은 물리적 공간의 소멸만 가져올 것인가, 혹은 가상 공간과 물리적 공간의 새로운 관계가 설정될 것인가.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갈 것 같은 지금, 질문의 답은 경계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오프라인으로 온라인 세상이 연결된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가상과 실제 공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의 공간 감각을 다채롭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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