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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앞두고 저급한 新曲으로 정치 공세
그러나 윤석열 후보 맞대응은 불필요했다
박근혜 정권 때 뼈아픈 경험 벌써 잊었나
문화 소비층의 자율비판 기능에 맡겼어야
가수 안치환이 발표한 신곡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이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논란을 부르고 있다. 대체적으로 안치환에게 비판적인 의견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유력한 대선 후보에 대한 풍자나 해학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저급했고, 여성 비하나 혐오로 비치는 요소들을 노래에 담았다는 측면에서는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사태를 어떻게든 무마해 보려고 일주일 만에 신곡(‘껍데기는 가라’)을 또 내놓는 모습도 볼썽사나웠다.
하지만 안치환의 공격 대상이었던 윤석열 대선 후보가 몸소 논란에 뛰어들어 목소리를 낸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는 “대선 후보이기 이전에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며 “표현의 자유도 상식의 선은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치 공세에 위대한 뮤지션(가수 마이클 잭슨)이 소환된 것도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안 하느니 못한 대응’이었다. 언뜻 윤 후보의 발언 자체는 틀린 구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문화적 창작물에 즉각적, 감정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접근방식에 있다. 5년 전 박근혜정부가 허망하게 무너진 배경에 대한 내부 성찰이 이들에게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박근혜정부는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을까.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문화 분야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버지 박정희정부 말기에 어머니를 잃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와 체육 분야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아마도 관련 행사에 자주 참여하면서 자연스레 친숙해지지 않았나 싶다. 벌써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멀어졌지만 대통령이 된 뒤 국정 기조에도 ‘문화 융성’이 있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지 3개월 만에 어느 태권도 관장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아들이 태권도 선수로 시합에 나갔는데 억울한 판정으로 탈락하자 분에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사건을 인지한 박 대통령은 담당 부처인 문화체육부에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다. 그렇게 해서 제출된 개선 방안이 대통령의 불신을 사면서 문화체육부와의 불편한 관계가 시작됐다. 이후 최순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미르 재단(문화콘텐츠 분야)과 K스포츠 재단(스포츠 분야) 등 이른바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 문화 체육 분야를 고리로 계속 파생돼 나갔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결정적인 갈림길은 2013년 9월 국립극단이 공연한 연극 ‘개구리’에 대한 대응이었다. 연극 내용이 최고지도자의 심기를 자극할 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연극에도 ‘그분’이 등장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을 상징한다. 반대편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카멜레온’을 대비시켰다. 당연히 연극에서는 ‘그분’이 미화되고 ‘카멜레온’은 폄하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국정원 댓글 사건이 ‘기말고사 커닝’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끝까지 참을성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박근혜정부의 패착이었다. ‘개구리’가 공연된 극장은 객석 190석짜리 작은 극장으로 10일의 공연기간 동안에 좌석이 꽉 찼다고 해도 연극을 실제로 본 인원은 몇 천 명 정도였을 것이다. 그냥 눈 딱 감고 ‘표현의 자유’에 맡겨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국민 세금으로 지원을 받고 있고, 특히 ‘국립’이라는 명패를 붙인 국가 차원의 예술단체가 정치적 선동이나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정권은 블랙리스트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어 터진 세월호 비극이 문화계 인사들의 시국선언 등으로 연결되면서 청와대는 문화 분야에 대해 더욱 촉각을 곤두세웠다. ‘문화 융성’을 외치고 누구보다 문화에 각별한 열정을 갖고 있던 정권이 정반대의 길을 걷고만 것은 최대의 아이러니다.
다시 안치환 문제로 돌아가 보면, 윤석열 후보의 입장은 본인이 직접 쓴 게 아니라 선거 캠프에서 누가 작성한 뒤 후보의 재가를 얻어 내놓은 것으로 여겨진다. 내용도 시중에 나와 있는 몇 가지 비판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번 논란에 후보가 직접 뛰어드느냐 마느냐에 대한 판단이다. 박근혜정부의 경험이 뼈아프게 남아 있다면 당연히 고민했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대응하는 과정을 보면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 시절의 학습 효과를 벌써 상실했다면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이번에는 누가 보아도 안치환 쪽 잘못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지 서로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후보가 나섰다면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문화, 특히 스타 문화인들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성역처럼 숭배 대상이 되어 있다. 문화의 위상이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커진 탓이다. 또한 문화는 이성보다는 감성의 영역에 가깝다. 여기에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거나 인위적으로 누구를 배제하려 하면 당장 반발을 부르게 된다.
문화 영역에서 좌파와 우파가 놓인 처지는 크게 다르다. 좌파들은 스스로 문화를 자신들의 우군(友軍)으로 여긴지 오래다. 단순한 그들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그렇게 볼 만한 근거들도 꽤 있다. 그래서 좌파 대통령은 해외에서 상을 받거나 명성을 떨친 문화계 스타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같이 ‘짜파구리’ 먹고 사진 찍으며 그들의 인기에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에 우파 진영은 문화의 진보성에 끊임없이 속을 끓이게 마련이다. 그러다 한 번의 판단 실수로 선을 넘어버리면 훅 가버리게 된다.
시시비비는 문화 소비층에 맡기면 된다. 이번에도 윤석열 후보가 굳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안치환이 체면 구기는 걸로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괜히 정색을 하고 부인을 감싸면서 ‘표현의 자유’ ‘국제 망신’ 등을 거론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가는 대중의 몫이라는 자세로 통 크게 대응하는 것이 포용력을 보여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게 문화 정책의 대원칙이기도 하다.
선거를 맞아 눈코 뜰 새 없는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우파 정당이 불과 얼마 전에 땅을 치고 후회했던 일들에서 뭔가 깨닫기는커녕 너무 쉽게 망각하고 있지 않은지 우려된다. 문화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보다 절박한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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