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고 싶은 미미 <1> 그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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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아침 동화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3-07 09:16:16

미미는 일찍 잠에서 깨었다. 사각사각…. 미미는 치아갈이부터 시작했다. 햄스터한테 치아는 정말 소중한 재산이다. 사람들처럼 밥 먹을 때 사용하지만 햄스터에게는 연장으로 더 쓸모가 있다. 그래서 평소에 잘 관리해 두어야 한다고 엄마가 늘 말씀하셨다.

이솝우화에는 햄스터의 가까운 친척인 생쥐 이야기가 나오는데 세상에서 제일로 힘센 신랑감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에는 강한 치아를 가진 생쥐를 만나지 않는가? 사촌인 햄스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날카롭고 강한 이빨은 세상에 못 뚫을 게 없다. ‘그럼, 그럼, 내 몸은 내가 잘 관리해야 하는 거야. 나처럼 뾰족하고 쎈 이빨을 가진 햄스터도 없을 거야.’ 미미는 새삼 자신의 빛나는 치아가 자랑스러워졌다.

그때 바스락바스락 낙엽 소리가 났다. “우리 미미, 정말 일찍 일어났구나!” 엄마가 밖으로 나오시는 소리다. 엄마는 지난겨울에 오른 쪽 뒷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미미는 그때 일이라면 지금도 마음이 시리다. 가을이 끝날무렵 도토리를 잔뜩 모아두고 이제는 포근한 겨울잠으로 들어갈 채비를 막 마친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이제 양식이 충분하니 대문을 닫아 걸고 겨울휴가에 들어갔으면 하셨다. 그런데 남동생 미소가 어딘가에서 본 아몬드 씨앗을 구해달라고 아빠한테 졸랐다. 엄마는 그런 미소를 꾸짖었지만 미소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아몬드는 이 숲에서는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 가끔 등산객들이 아몬드를 몇 개 흘리고 갈 때가 있는데 미소는 아주 어렸을 때 우연히 먹은 그 고소한 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미소의 성화를 못이긴 아빠는 결국 아몬드를 구하러 떠났고 미소도 아빠를 따라갔다. 그것이 아빠와 동생을 본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그 날 숲은 시커먼 구름에 덮였다. 미미가 태어나서 그렇게 무서운 빗줄기는 본 적이 없었다. 비가 시작할 때만해도 미미와 엄마는 아빠가 미소를 데리고 곧 돌아오겠지 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늘었던 빗방울이 굵게 쏟아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조바심이 난 엄마는 아빠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미미야, 문 잘 닫고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나가 봐야겠어.” “엄마, 저도 같이 가요.” “미미야 비가 너무 무섭게 내린다. 너는 집에서 기다리렴.” 엄마가 이렇게 말렸지만 미미는 엄마를 따라 나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환하던 숲은 온통 어두워졌고 천둥소리인지 요란하고 무서운 소리가 귀를 때렸다. 미미는 무서웠지만 엄마의 뒤를 따라갔다. 하늘이 구름에 뒤덮여 이제는 숲이 완전히 깜깜해졌다. 미미와 엄마는 앞으로, 앞으로 빗줄기를 피해 나아갔다. 숲은 어둡고 빗소리와 천둥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무줄기를 쪼아대던 딱따구리 아저씨도 보이지 않았고 미미네 옆 집 두더지 가족도 집안에 꽁꽁 숨어버렸다. 지저귀며 하늘을 날던 새들도 보금자리 속으로 들어가서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가도 가도 아빠와 미소는 보이지 않았다. 숲은 칠흑처럼 어두워져서 이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와 미미는 큼지막한 나뭇잎을 방패삼아 힘들게 걸음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빠는 어디에 계실까?’ 처음에는 금방 아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몬드고 뭐고 다 생각하기 싫어졌다. ‘도대체 왜 미소는 아몬드 투정을 한 거지?’ 빗속에서 한걸음씩 위태한 발걸음을 옮기면서 미미는 동생이 마땅찮아졌다.

그때였다. 앞에서 휘적휘적 걸어가던 엄마의 모습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미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엄마, 엄마 아아….” 미미는 목청껏 엄마를 부르며 앞으로 달려가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발을 헛디디면서 절벽 아래로 굴러버린 것이다.

[글: 최문형 / 그림: 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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