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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중고 자동차 시장에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면서 완성차 업체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동안 소비자들이 허위 매물 등 중고차 업체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만큼 이번 결정을 통해 중고차 업계 전체의 품질 및 신뢰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기존 중고차 업계 종사자들은 이번 결정에 대해 생존권을 침해하고 시장 양극화를 불러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중기부 미지정 결정에 완성차 업계 “환영”… 중고차 업계 “생존권 위협”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17일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열고 중고자동차판매업에 대해 미지정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2013년 중고차 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후 9년 만에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중기부는 중고자동차판매업이 서비스업 전체에 비해 소상공인 비중이 낮고 연평균 매출액이 크며 무급가족종사자 비중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 규모의 영세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소상공인의 피해가 예상되지만 중고차 시장이 지속 성장하는 시장이며 완성차업계의 진출로 제품의 신뢰성 확보·선택의 폭 확대 등 소비자 경제생활 증진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것이 중기부의 설명이다.
다만 대기업의 중고자동차 시장 진출 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피해가 충분히 예상되므로 향후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에서 이러한 점 등을 고려해 적정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완성차 업계는 중기부의 결정을 쌍수로 반기는 분위기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중기부가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미지정한 것은 그동안의 비정상 상황을 정상적으로 전환한 것”이라며 “향후 중고차 산업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협회측은 이어 “완성차 업체들은 기존 중고차 매매상들과 긴밀한 소통을 지속해 선택 폭 확대를 통한 소비자 권익 증대 등 중고차 시장 선진화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중고차 시장 진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업체는 현대자동차다. 현대차는 7일 중고차 사업 비전과 사업 방향을 최초로 공개하며 중고차시장에 대한 강한 의욕을 과시했다. 소비자 선택권 확대·신뢰 제고, 중고차 매매업계와 상생을 목표로 국내 완성차 브랜드 최초로 고품질 인증 중고차를 선보인다는 구상도 밝혔다.
현대차는 중고차 업계와 상생안으로 △5년·10만km 이내 자사 브랜드 중고차만 판매 △인증중고차 이외 매입 물량은 경매 등 통해 기존 매매업체에 공급 △연도별 시장점유율 제한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 공개 △중고차 산업 종사자 교육 지원 등을 제시했다. 또한 2024년까지 시장 점유율을 5.1%로 자체적으로 제한할 계획이다.
기아자동차 역시 1월 사업자 등록을 신청한 후 사업 방향에 대한 공개를 앞두고 있으며 한국지엠, 르노코리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3개사도 향후 6개월 이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국내 1위 렌트업체인 롯데렌탈도 올해 하반기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는 등 기업들은 앞다퉈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기업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 소식에 기존 중고차 업계 종사자들의 반발도 불거지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기부 결정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서비스일반노조는 “중기부는 중고차업을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에서 철회하면서 6만5000명의 현장 노동자와 관련 업종 종사자 30만명의 생존권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면서 “종사자들에게는 사실상의 파산선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측은 또한 “대기업으로 시장이 독점돼 필연적으로 비용과 가격이 상승해 노동자와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이 급격히 가중될 것”이라며 “5년·10만km 내 중고차를 대기업이 독점하면서 시장의 양극화로 인한 문제점도 심화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허위·매물 등 소비자 불신 심각… 중고차 플랫폼 “시장 인식 개선할 기회”
예전부터 소비자들의 중고차 산업 시장 개편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고차 가격을 시세보다 높게 책정하거나 문제가 있는 상품을 속여 판매하는 등 악질 중고차 딜러의 사례가 광범위하게 속출하면서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신을 자초한 점도 컸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에 따르면 한길리서치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중고차 시장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9.9%가 중고차 시장이 혼탁하고 낙후돼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그 이유(복수응답 가능)는 54.4%가 ‘허위·미끼 매물’을 꼽았다. 다음으로 ‘가격 산정 불신’이 47.3%, ‘주행거리 조작·사고 이력 조작·비정품 사용 등에 대한 피해(41.3%)’ 등이 뒤를 이었다.
또한 응답자의 56.1%가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으며 이유로는 ‘혼탁하고 낙후된 중고차 시장을 투명하고 선진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기대감을 담은 답변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중고차 업계는 응답자 인식이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흔히 알려진 허위 매물 사례는 일부 불법 사업자에 의한 것이며, 대기업이 시장 진출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미지정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번 결정은 중고차의 특성을 무시한 대기업의 여론몰이에 따른 잘못된 결정이며 업계의 모든 자원을 활용해 강력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연합회측은 이어 “중고차의 주된 문제로 제기되는 허위매물 등 소비자 불만은 대부분 중고차 판매업자로 인한 문제가 아닌 불법·무등록 사업자의 범죄행위라는 것이 법원의 판결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며 “업계 내 자정 노력을 통해 점차 개선되고 있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라고 강력한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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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고차 플랫폼 업계에서는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두고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중고차 플랫폼 산업이 온라인·모바일 시대에 걸맞은 유망 비즈니스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중고차 시장의 소비자 불신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시장 진입이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해 플랫폼을 이용해 중고차를 구입 또는 처분한 소비자 2283명을 대상으로 이용 경험과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업계 평균 만족률은 구입 때 36.6%, 처분 때 34.9%로 신차의 3분의 2 수준에 그쳤다. 불만족 이유로는 △제시된 시세를 믿을 수 없어서 △허위매물이 많아서 △입찰된 시세를 믿을 수 없어서 △딜러를 신뢰할 수 없어서 등 ‘신뢰’와 관련된 항목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 중고차 플랫폼 홍보 담당자는 “이미 플랫폼에서 다양한 제조사들이 등록돼있고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심각한 타격이 올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주 고객층인 2030세대 소비자에게 판로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중고차 시장 자체가 워낙 소비자의 신뢰감이 떨어져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가 높은 대기업이 진출하면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고 거래가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편의가 우선이 돼야 하는 만큼 대기업의 진출로 품질 및 서비스 향상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예전에도 장류나 김치, 두부 등에 대해 대기업 진출을 막았지만 대기업이 시장에 진입한 후 가격과 품질 등이 향상됐다”며 “중고차 시장 역시 대기업 진출로 혁신과 산업 발전이 이뤄지고 시장 규모가 커져서 결과적으로는 업계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 명예교수는 이어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행위를 한다면 처벌해야겠지만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시장 진입 자체를 무조건 막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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