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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년 전의 일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가 개교 72년 만에 처음으로 여교수를 채용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세상이 숱하게 변했는데도 여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깨지 못한 분야가 있었다는 얘기다.
여성 장군, 여성 총리,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지가 벌써 꽤 오래되었음에도 국립 서울대가 너무 보수적이고 여성 차별이 심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 경제학부 여성 1호 교수는 박예나 미국 로체스터대 경제학부 교수였다. 서울대 경제학부 학부생 중 여학생 비중이 크게 늘어나자 학교 측에서는 여성 경제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의 롤모델을 삼기 위해 박 교수를 영입했다고 전해진다.
스포츠계 여성 진입 장벽 높아
교육계 못지않게 여성 진입 장벽이 심한 곳이 스포츠계다. 특히 성적에 울고 웃는 프로 스프츠계에서 감독 자리는 으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다. 이러한 현상은 여자 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에서 준프로팀인 여자 실업 농구팀의 첫 지도자는 여자 농구의 레전드로 꼽히는 신용보증기금 사령탑을 맡은 박신자 씨였다. 지금부터 40년 전의 일이다.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빛나는 박 씨는 2020년 아시아 국적 최초로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 명예의전당 선수부문에 헌액됐지만 지도자로서는 빛을 크게 보지 못했다. 박 씨 이후 국내 주요 종목의 감독을 맡은 여성은 7명에 불과하다. 국내 스포츠 여성 감독 1호인 박 씨에 이어 프로농구 구리 KDB생명 위너스의 사령탑을 맡은 이옥자 씨 역시 성적 부진으로 1년 만에 하차했다. 이후 이옥자 씨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여자프로농구 W-리그 샹송 V매직을 이끌며 맹활약 중이다.
여자 프로농구에서는 여성 지도자가 더 있었다. 여자 프로농구 부산 BNK 썸이 창단 감독으로 유영주 씨를 영입한데 이어 지난해 3월에는 그 후임으로 박신자 씨의 조카인 박정은 씨를 임명했다.
여자 프로배구에서도 여성 지도자가 더러 활약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날으는 작은 새’ 조혜정 씨는 2010년 4월 여자프로 배구 서울 GS칼텍스 감독을 맡았으나 4승20패를 기록하고 한 시즌 만에 물러났다. 선수 시절 ‘컴퓨터 세터’라는 별명이 붙은 이도희 씨 역시 수원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아 2019~20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으나 4년 만에 물러났다.
역대 여성 지도자로서 가장 화려하게 활약을 했던 여자 프로배구 인천 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이 얼마 전 팀을 떠났다. 계약이 만료된 탓이다. 선수 시절에 못지않은 영광을 누린 박미희 씨는 그나마 지도자로서 8년간 팀을 이끌었다.
흥국생명 여자 감독에 남성 거론
좌우 공격수는 물론 센터와 세터까지 병행하며 ‘만능 선수’로 통했던 박미희 씨는 실업 배구 미도파에 입단해서는 데뷔 첫해 신인상(1983년)을 시작으로 최우수선수(MVP) 6회, 인기선수상 4회, 베스트 6에 다섯 차례 이름을 올린 전형적인 스타 감독이었다. 2014~15시즌 흥국생명 사령탑에 오른 박 씨는 2016~17시즌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처음 우승 트로피를 들었고, 2018~19시즌엔 국내 4대 프로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통합 우승을 이끈 여성 지도자가 됐다. 체육학 석사학위까지 취득해 서울시립대와 성신여대 등에서 실기를 가르치는 등 이론과 실기를 겸비했던 그는 2003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2년 동안 옌볜과학기술대 체육학 부교수로 일했다. 감독 부임 기간 흥국생명을 5차례 봄 배구에 진출시키며 ‘어후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지휘력을 떨쳤지만 2020~21시즌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의 학교 폭력 논란 이후로 시련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방송 해설위원으로도 오랫동안 활약했던 박미희 감독은 V리그 정규리그에서만 240경기를 치러 125승 115패로 승률 52.08%를 기록하며 큰 업적을 남겼다. 승수로만 따지면 여자부 지도자 중에서는 이정철(157승)과 고 황현주(151승) 감독에 이어 3번째다. 흥국생명 후임에는 또 남자부 지도자를 역임한 배구계 인사 등이 거론된다고 한다.
경기인 출신 ‘언니 리더십’ 쉽지 않아
여성 지도자가 현장에서 고전하는 원인은 동성(同姓) 문화 때문인 듯하다. 스포츠에서 남성 지도자와 선수들의 관계는 자연스럽고 원만하지만 여자 선수들은 여성 감독을 접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만큼 신뢰감이 부족하고 부담스럽게 느껴 거리감을 좁히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보다 더 큰 장벽은 스타 선수 출신이나 여성 지도자는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임면권자의 편견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적잖이 든다.
주위에서는 여성 지도자들에게 끊임없는 소통을 통한 언니 리더십이나 이모 리더십 같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경기인 출신의 감독들이 이를 실행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스포츠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뛰어난 기량의 선수들은 물론이고 감독, 코치 등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성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올해 초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산하 싱글A 팀인 탬파 타폰즈가 여자 소프트볼 선수 출신인 레이철 볼코벡을 감독으로 선임했고, 류현진의 소속팀인 토론토 블루제이스도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 타격 코치에 여성 지도자를 선임했다. 토론토가 여성 코치를 선임한 건 팀 창단 이후 처음이었다.
미국엔 남녀 스포츠 차별금지 제도화
한국 프로 스포츠를 접하면 ‘여자 종목에 남자 감독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미국에선 ‘누구도 성별에 근거해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혜택을 거부당하거나 차별을 받을 수 없다’는 ‘타이틀 IX’ 법안이 제정된 지 무려 50년이나 됐다. 미국의 남녀 스포츠가 차별 없이 동등한 위치를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 여자 대학농구 역사상 처음으로 100연승을 달린 농구명문 코네티컷 대학의 지노 오리에마 감독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 내 농구·배구 등에서 여성 단체 종목의 감독은 대부분 여성이다. 감독을 선임하는 위치에 있는 남성들의 고착화된 인식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여성 선수와 지도자의 노력도 필요하다. 앞으론 국내 여성 종목에도 그 위상에 맞게 훌륭한 여성 지도자가 더 많이 탄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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