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부흥운동을 와해시킨 민족반역자 부여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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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4-13 09:30:13

연남생·예식진에 이어 우리 역사상 셋 째 가는 민족반역자를 꼽으라면 과연 누구일까? 연남생은 당나라 군대의 선봉에 서서 조국 고구리를 공격해 멸망시켰고, 예식진은 의자왕을 체포해 당나라로 넘김으로써 조국 백제를 망하게 한 만고의 역적들이다. 이에 버금가는 역적이 있었다면 누구였을까?

필자는 의자왕의 아들, 즉 왕자의 신분으로 조국 백제의 부흥운동을 와해시킨 부여융(夫餘隆)을 그 반열에 올리고 싶다. 부여융이 역사에서 첫 등장은 나당연합군이 계백의 오천결사대를 격파하고 백제의 도성 사비성을 포위했을 때다.

의자왕이 태자 효와 함께 도성을 버리고 웅진성으로 피신하자 부여융은 대좌평 등과 함께 사비성에서 나와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했다. 신라의 김법민(金法敏)이 부여융을 말 앞에 꿇어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다음과 같이 꾸짖었으나 융은 땅에 엎드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예전에 너의 아비(의자왕)가 억울하게 나의 누이를 죽여 옥중에 파묻었던 일이 나로 하여금 20년 동안 마음이 고통스럽고 머리를 아프도록 했더니, 오늘에야 너의 목숨이 내 손 안에 있게 되었구나!”

훗날 문무왕이 되는 김법민의 누이는 642년 백제의 윤충 장군에게 대야성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성주 김품석(金品釋)의 아내 고타소(古陁炤)이다. 김춘추는 신라의 군사력만으로는 비명에 죽은 딸의 원수를 갚을 길이 없자 당나라로 건너가 엎드려 칭신(稱臣)하고는 나당연합군을 이끌어냈다.

예식진이 의자왕을 체포해 당나라에 넘김으로써 백제국의 간판이 내려졌다. 신라왕 김춘추가 베푼 승전축하연에서 부여융은 의자왕과 함께 대청마루 아래에 꿇어앉아 온갖 수모를 당한 이후 당나라로 압송되었다가 사면되어 3품 벼슬의 사가경(司稼卿)을 제수 받았다.

백제의 복국저항(부흥운동)이 강력해져 웅진도독부가 고립되자 663년 당 조정은 증원군을 보내는데 이때 부여융이 그 수군에 참전했다. 백제군은 지도자 복신이 부여풍에게 처형당하는 등 내분에 휩싸였고, 당나라 수군은 백촌강에서 왜선 400척을 불사르는 대승을 거두고는 육군과 합류해 함께 주류성을 공격했다.

▲ 부흥군의 희망 왜선 400척이 불타고 왜군은 전멸됐다. [KBS드라마 ‘대왕의 꿈’]

이후 당나라 황제로부터 백제왕으로 책봉된 부여융은 부흥군 장수들에게 은밀히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부여풍은 잔인하고 의심이 많아 자신을 옹립해준 복신을 죽였다. 다른 장수인들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당나라는 처음부터 백제의 영토를 가지려 하지 않았다. 그저 백제가 고구려와 손잡은 게 미워서 신라와 더불어 쳤을 뿐이다.

“지금 부여융은 선왕의 사랑을 받은 아들로서 대세를 잘 아는데다가 당나라 황제의 신임을 얻고 있다. 당나라가 그에게 백제왕의 작위를 주고 대군을 동원해 그를 호위하고 귀국하도록 하노니, 백제의 총명한 군사들이여! 짐의 말을 믿고 부여융을 왕으로 받든다면 전쟁의 고통 없이 옛 나라를 회복하고 부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군에 저항한다면 짐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너희들은 잔인한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한 탓에 패배하면 대군에게 살육을 당할 것이고, 승리하면 부여풍에게 의심을 사서 복신처럼 비참하게 죽을 것이다. 이 어찌 지혜로운 자의 선택이 될 수 있으랴!”

이런 부여융의 서신을 받은 흑치상지는 부여풍이 복신을 죽인 일을 무척 원망하고 있었기에 결국 부여융에게 투항 의사를 전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나당연합군의 선두에서 5만 병력으로 주류성을 포위해 함락시켰다.

▲KBS 역사스페셜 - 흑치상지의 행동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배신자인가?

세간에서는 이러한 흑치상지의 역적행위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에,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다음과 같이 혹평했다.

“아! 백제 중흥의 대업을 창피하게 만든 자는 상좌평 부여복신을 죽인 부여풍이다. 그는 중흥하는 백제를 멸한 제1의 죄인이었다. 비록 부여풍이 죄인이기는 하지만, 흑치상지는 부여풍이 악하다는 이유로 조국을 배반하고 당나라의 노예가 되었으니 백제를 망친 제2의 죄인이다. 기존 역사서에서는 그저 ‘당서’의 평가에 따라 흑치상지를 찬미했으니, 이 어찌 미친 자들의 붓장난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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