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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여성 배우자를 영부인(令夫人), 영어로는 퍼스트레이디라고 부른다. 국가수반의 부인으로서 의전과 예우 규정은 있지만, 법적 책임과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는 선출직도 임명직도 아니지만,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다. 왕 중심의 군주제에서 대통령 중심의 근대 정치체제로 전환하면서 대통령 영부인은 한 남자의 반려자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영부인은 대통령 아내의 역할뿐만 아니라 대통령 동반자의 역할까지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통령이 등장하는 곳마다 정치 현실에서 영부인은 무엇보다 대통령에 대한 사적(私的) 영향력이 워낙 큰 데다, 실제로 최고 권력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으로서 관행화한 정치·사회적 역할이 존재해왔다. 대통령의 배우자는 해당 국가의 여성들을 대표하는 유일한 지위와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당대 여성 이미지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영부인들은 사회지도층의 여성으로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아 온 것이다. 대내·대외적인 활동 외에는 차림새만으로도 대중에게 이미지가 각인되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김건희 여사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대통령 배우자의 최우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여건이 허락한다면 정부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한 소외계층이나 성장의 그늘에 계신 분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 나갈 것”이라며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국가수반 부인의 역할을 다 할 것임을 밝혔다.
다만, 윤 당선인은 그동안 김 여사를 정치와 분리하면서 당선되면 대통령의 배우자를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을 없애겠다는 공약과 ‘영부인’ 호칭 사용 폐지 의사를 강조했다. 김 여사가 역대 영부인들처럼 내조형 퍼스트레이디의 길을 가진 않을 거라는 예측이 이어지는 이유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겸손과 우아함’으로 대중의 기억에 남아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사실상 대통령의 외교담당 비서 역할까지 했다. 속기와 타자 능력, 그리고 국제자격증을 보유한 영어 통역 능력 등으로 당시 비서실 체제가 약했던 경무대에서 실질적인 비서실장 역할을 수행했다.
지적·정치적 전문성을 가진 프란체스카 여사가 정치적 상황에서 동반자적 참여형 역할과 책무를 수행하는 상항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검소한 모습의 안주인의 꼼꼼한 내조 모습은 그가 입었던 수수한 디자인의 양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회색의 모직 슈트는 둥근 어깨선, 브이네크라인 컬러로 허리라인이 짧았고, 길고 좁은 사각형 모양이었다. 단정한 스타일로 정평이 났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 의상을 수차례에 걸쳐 수선하여 수십 번 넘게 입었다는 말이 전한다.
겸손과 절제의 미덕 갖추며 사회봉사와 남편 내조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는 대통령 몇 발자국 뒤에 서 있는 조신한 현모양처형 영부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육 여사는 온화한 이미지의 가정적인 영부인 이미지로 대표된다. 그럼에도 영부인 자체가 ‘힘’을 갖고 있었고, 국민은 이러한 국모형 영부인을 사랑했다.
육 여사는 ‘청와대 안의 야당’을 자임하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마다치 않았다. 또한, 다양한 단체와 조직을 꾸려 앞장서서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노인들을 찾아서 직접 음식을 떠먹여 주고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함께 눈물을 흘리며 들어주던 모습이 국민을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영부인의 전형을 그려냈다.
육 여사는 많은 국민에게 ‘영부인’의 전형으로 각인되어 ‘존경하는 영부인’ 부동의 1위 자리라는 명예를 누리고 있다.
육 여사는 생전 대외 활동에 한복을 즐겨 착용했다. ‘한복 컬러’를 통해 행사에 보내는 메시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후 대통령이 된 딸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한복을 착용할 때마다 이 같은 육영수 여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한복 패션과 비교 분석이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대통령 내외가 국가의 중요한 행사에 부부동반으로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관례가 정착되었으며, 퍼스트레이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했다.
이 여사는 매사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실제로 사회단체를 조직해 직접 운영의 전면에 나섰다. 특히 1980년대에는 컬러TV가 보급되고 국민소득이 상승하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적이면서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가 부각 됐다.
이 여사는 전두환 대통령 재임 당시 적극적 대외활동을 수행해 ‘외유를 즐긴다’는 구설에 자주 오르기도 했다. 소위 '땡전' 뉴스 시절에는 전 대통령과 함께 이 여사의 일상도 언론에 보도될 정도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온화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의도적으로 ‘그림자 내조’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일하게 어록이 없는 영부인으로 기억될 만큼, 취임 초기부터 잠행 스타일을 고수했다.
적극적인 성격임에도 이 같은 태도를 유지한 이유가 전임 이순자 여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의식했다는 평가가 있다. 영부인으로 있었던 5년간 공개석상에서는 노태우 대통령 옆에서 미소를 띤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으며 언론 인터뷰도 거의 한 적이 없다. 복지기관 방문 등의 단독 일정도 비공개였다. 현재에도 영부인 중에서 가장 겸손하고 행동이 조심스러웠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영부인 타이틀, 정치적 영향력 여부는 각자의 몫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조용하고 온유한 내조를 펼친 영부인으로, 별도의 정치적 전문성을 갖지 않고 공식적 업무만 수행하는 내조 역할을 했다. 측근 증언에 따르면 국회의원이나 공직자 부인을 거의 만나지 않았으며 그들이 보낸 선물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 흔한 식사 오찬 한번 하지 않을 정도로 행동과 몸가짐에 신중했다는 평가다.
남편인 김영삼 대통령을 ‘총재님’ ‘대통령 각하’ 등 존칭으로 높여 부르는 것으로 유명했다. 남편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야 말을 놓았다고 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우아하고 세련된 양장을 즐겨 입었는데, 손 여사는 발목까지 오는 긴 랩스커트와 옷깃이 없는 재킷을 매치한 갈색체크 수트 등의 의상을 착용해 고상하면서도 기품있는 이미지를 나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 여사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신여성이자 여성민주화운동가 출신답게 영부인의 공식적·정치적 역할 수행에 집중했다. 공식적 정책통로 역할까지 담당했다. 의상은 여성스럽고 우아한 스타일보다는 실용적이고 활동적인 스타일을 추구했다. 이 여사는 마른 체형과 연령을 고려해 밝은 색 계열의 색상을 선호했고, 박스형 실루엣 재킷 정장을 즐겨 입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동교동 사택’에 ‘연금’되며 민주화 및 사회운동을 한 인사들의 연결망 역할을 했던 전력 덕분에 영부인이 되어서도 ‘동교동 사모님’으로 불렸다. 그는 내조 중심이었던 제2부속실의 역할을 아동과 여성을 위하는 일로 확대했다. 4명의 여성 장관 및 4대국 여성 대사 배출, 국가인권위원회 발족 등은 이 여사의 성과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여사는 2002년 5월 유엔 총회 의장국 대표로 임시의장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고 기조연설을 한 첫 여성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소박한 이미지로 공식활동을 통해 남편 내조에 힘쓴 이로 평가받는다. 특히 한과부터 사찰음식 등 한국전통음식을 활용한 오찬 메뉴를 직접 구성할 정도로 여성적 이미지가 남아 있다. 공식석상에서는 과감하고 화려한 패션을 소화했다. 가정주부의 수수한 이미지가 아닌 깨끗한 인상의 신여성 이미지를 강조한 의상스타일, 차분한 색상, 심플한 소재 등을 활용해 화려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패션을 추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대학 재학 시절 ‘메이퀸’ 자리에 오를 만큼 뛰어난 미모를 보유한 이로 정평이 났다. 김 여사는 해외 순방 땐 우아하고 세련된 옷차림을 고려했고, 당선인 시절엔 ‘한복 스타일’을 고수하며 장소에 맞는 옷을 입은 것으로 유명했다.
‘한식 세계화 사업’에 직접 참여할 정도로 이른바 ‘영부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정계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언니게이트’로 불리는 가족비리 사건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최근 고액의 옷값 논란에 휘말리며 대중의 주목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 또한 문 대통령의 일정에 거의 ‘부부 동반’으로 함께해왔다. 다만, 김 여사는 해외 방문 중 단독으로 일정을 잡고 유명관광지를 여러 번 방문해 구설에 올랐다. 일각에선 김 여사의 버킷리스트(소원 리스트)를 채워주는 수단으로 해외 방문이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대외행사 때마다 화려한 옷과 액세서리를 착용한 채 등장해 ‘사치설’의 중심에 섰다. 다만 임기 초에 말린 곶감을 청와대 참모들에게 직접 보내거나 불경기에 직격탄을 맞은 전통시장 등을 방문해 상인을 위로하는 등의 영부인으로서 내조 역할은 성실히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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