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최초 중원왕조 사신 파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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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전진 망명객 부량의 송환 사건이 본질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4-18 12:40:05

신라는 내물왕 시기인 서기 381년 건국 이래 처음으로 중원왕조에 사신을 파견했다. 대상은 전진(前秦)이다. 전진은 저족(氐族) 출신 부건(苻建)이 351년 장안에 도읍을 정하고 세운 나라로 5호16국 시대를 대표하는 왕조이다. 370년 동쪽의 전연(前燕)을 멸하고 이어 376년 서쪽의 전량(前涼)을 병합하며 북방의 패권을 장악한 전진은 이후 여세를 몰아 양쯔강 이북의 화북(華北)지역 전체를 평정하며 거대 국가로 발돋움한다. 신라가 사신을 파견한 381년 당시의 전진 왕은 3대 부견(苻堅)이다.

「삼국사기」의 사신 파견 기록

「삼국사기」 내물왕 기록이다. ‘26년(381년) 위두를 부진(전진)에 파견해 방물을 바쳤다. 부견(苻堅)이 위두에게 묻길 “경이 말하는 해동의 사정이 옛날과 같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했다. 위두가 답하길 “또한 중국과 같은 경우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명호(국호/왕호)가 바뀌었으니 어찌 예전과 같다 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二十六年遣衛頭入苻秦貢方物苻堅問衛頭曰卿言海東之事與古不同何耶答曰亦猶中國時代變革名號改易今焉得同).’ 이는 「통전」, 「태평어람」 등 중국 문헌에도 수록된 내용으로 「삼국사기」가 차용한 기록이다. 기록에는 내물왕이 전진에 사신을 파견한 사실과 전진왕 부견이 사신 위두와 주고받은 단편적인 대화가 전부다. 내용자체가 다소 부실함에도 ‘해동(신라)의 사정’이 변해 신라의 명호(名號)가 바뀐 사실을 전하고 있다.

「신라사초」의 사신 파견 기록

「신라사초」 <내물대성신제기>이다. ‘5년(381년) 금사 7월, 위두 등이 진에서 돌아와 금인과 옥마 등 보물을 바쳤다. 처음에 제(내물왕)가 위두 7인에게 명해 부량(苻良) 등 7인을 진에 보내도록 하였다. 진왕 부견이 묻길 “계림(鷄林)을 어찌하여 신라(新羅)라 하는가” 했다. 답하길 “계(鷄)의 상서로움이 있기에 계림이라 합니다. 라(蘿)를 새롭게 하기에 신라라 합니다”고 했다. 부견이 묻길 “듣자하니 너희 나라 왕의 성씨가 변했다는데 어찌 된 일이냐”했다. 답하길 “우리나라에서는 어진사람을 택하여 서로 (보위를) 전하는 것은 예전부터 있어온 일이니 결코 변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계림과 신라는 비록 글자는 다르지만 실상 말은 서로 같습니다”고 했다(五年金蛇七月衛頭等自奏回獻金人玉馬等宝器初帝命衛頭七人送苻良等七人于秦秦主苻堅問鷄林何爲新羅答曰有鷄之瑞故曰鷄林有蘿之新故曰新羅苻堅曰聞爾國君變何如答曰我國擇賢相傳自古然也非變也故鷄林新羅字雖不同而語實相同).’

「신라사초」 기록은 「삼국사기」보다 상세하다. 또한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첫째는 부량을 전진으로 송환한 점이다. 둘째는 신라의 국호가 계림에서 신라로 바뀐 점이다. 셋째는 신라 왕조의 성씨가 바뀐 사실을 말하고 있다. 특히 신라의 국호 변경을 설명한 부분이다. ‘계림(鷄林)’은 ‘닭(鷄)의 상서로움(鷄之瑞)’으로 김씨왕조 미추왕(13대)이 즉위하면서 정한 국호이며, ‘신라(新羅)’는 ‘라(蘿)를 새롭게 함(蘿之新)’으로 시조 박혁거세의 탄강지인 나정(蘿井)을 새롭게 하면서 귀복(歸復)한 국호이다. 계림에서 신라로 국호를 귀복한 왕은 기림왕(15대)이다.

사신 파견은 부량을 송환한 사건

내물왕이 전진에 송환한 부량(苻良)은 누구일까. 부량은 전진 왕족출신의 망명객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서기 367년 10월 전진 부견의 종제 부류(苻柳)가 부견에 대항해 포판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반란은 실패하고 이듬해인 368년 9월 부류 등은 처자와 함께 참수당했다. 이때 살아남은 사람이 부류의 아들 부량이다. 부량은 전진을 탈출해 동진(東晋)에 머무르다 379년 신라로 표류해왔다. 내물왕은 381년 부견에 대항한 역적의 자식 부량 등 7인을 위두(왕실 경호원)의 호위 하에 전진으로 송환했다.

그렇다면 내물왕은 부량 등의 망명을 왜 받아들이지 않고 전진으로 송환했을까.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특히 「신라사초」를 비롯한 중국 문헌 어디에도 전진 부견이 신라 내물왕에게 부량의 송환을 요구한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부량의 송환은 내물왕의 자발적인 행위로 이해된다.

내물왕은 망명객 부량을 부견에게 송환함으로써 전진과의 외교적 유대강화를 모색했을 것이다. 특히 「신라사초」는 부량 송환 사건을 이렇게 마무리 했다. ‘부견이 그 대답을 선하다 여겨 예우하고 위두를 보내며 신후(광명여왕)와 제(내물왕)에게 보물을 헌상했다. 신후가 부견의 상(象)을 조각하라고 명했다(堅善其對優禮而送之獻宝于神后及帝后命刻符堅象).’

하지만 내물왕의 기대와는 달리 전진 부견은 383년 중원 통일을 꿈꾸며 강남의 동진(東晋)으로 쳐들어갔다가 비수(淝水)전투에서 크게 패하며 그 후유증으로 385년 사망한다. 이후 전진은 급격히 쇠락하며 394년 걸복(乞伏)씨의 서진(西秦)에게 멸망당한다. 전진은 45년(351년~394년)간 존속한 단명한 왕조이다.

신라 최초의 중원왕조 사신 파견은 전진의 망명객 부량을 송환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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