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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흑치상지 배반으로 끝난 백제부흥의 꿈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4-20 08:52:03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흔히들 흑치상지가 배반하는 바람에 될 수도 있었던 백제복국이 완전 와해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당시 복국은 사실상 거의 물 건너간 상태였다. 흑치상지가 부흥군의 마지막 보루였던 임존성을 함락시키도록 뒤에서 사주한 자가 바로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이다.
 
백제 내부에서는 부흥군의 왕으로 추대된 부여풍이 실권자 복신을 죽이는 등 분열과 반목이 심해진데다, 지원 온 왜선 400척이 백강전투에서 모두 불타버리자 부여풍은 보검까지 버리고 달아났으며 다른 두 왕자는 항복하는 등 거의 그 기세가 꺾여가고 있었다.
 
한편 흑치상지는 분산된 군중 3만을 열흘 만에 모아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싸워 이겨 200여성을 탈환했고 지수신이 계속 임존성을 지키며 백제복국의 꿈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복신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심란해하던 중, 당나라의 주구(走狗)가 된 부여융이 보낸 편지를 받은 흑치상지는 임존성을 홀로 지키고 있던 지수신에게 서신을 보내 “부여풍은 잔인해 백제를 중흥시킬 영웅이 아니다”고 언급하면서 함께 항복하자고 권유했다.
 
이에 지수신은 “우리가 상좌평 복신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백제를 부흥하려 했지만, 중도에 불행히도 간신들 때문에 잘못됐습니다. 이것이 어찌 우리의 고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상좌평이 의병을 제창한 것은 당나라를 쫓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라고 했다.
  
▲ 부여풍의 30년만의 귀국은 부흥군에겐 독이 되었다.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화면 갈무리]
 
이어 “그런데 상좌평의 죽음이 애통하다고 해서 그것을 복수하고자 당나라에 투항한다면, 이것은 상좌평만 배신하는 게 아니라 백제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만약 상좌평의 혼령이 계신다면, 이로 인한 마음의 고통은 손바닥을 꿰이거나 독약을 마시는 것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나는 공이 마음을 바꾸고 제자리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답변했다.
 
이에 흑치상지는 아무런 반응도 않고 나당연합군의 선두에 서서 5만 병력을 거느리고 임존성을 포위해 함락시키니 성을 지키던 지수신이 얼마나 다급했던지 처자를 버려두고 고구려로 달아나버렸다. 이로써 백제의 복국(復國)투쟁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게 됐다.
 
이렇듯 부여융은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에게 빌붙어 조국의 복국을 저지시키는데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다. 백강전투에서 당나라가 대승을 거두는데 공을 세우고, 백제 복국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흑치상지를 회유해 전향시킴으로써 백제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든 만고의 반역자였다.
 
서기 664년 부여융이 당나라의 웅진도독에 봉해져 옛 백제 땅을 다스리게 되자, 흑치상지도 돌아와 도독부의 군장으로 활동하다가 당이 신라에게 패해 도독부가 해체되자 당나라로 들어가 서역정벌에 큰 공을 세워 벼슬이 종3품에까지 이르렀다.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무고로 투옥되자 689년에 자결했다. 9년 후 신원이 회복됐다. 
       
▲ 중국이 그린 흑치상지 초상화. [사진=중국 바이두백과]
 
웅진도독 부여융은 660년 사비성에서 항복할 때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은 신라 문무왕(김법민)과 당나라 장수 유인원과 함께 665년 흰 말을 잡아 그 피를 입술에 발라 맹서하는 의식을 취리산(就利山)에서 치른 후 제단의 북쪽 땅에 제물을 묻고 신라의 종묘에 그 맹세문을 보관했다.
 
참고로 그 역겨운 맹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날 백제의 전 임금은 거스를 것과 따를 것을 분간하지 못해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고 인척 간에도 화목하지 못했으며, 고구려와 결탁하고 왜국과 서로 통해 함께 잔인하고 포악한 행동을 일삼아 신라를 침략해 고을을 약탈하고 성을 도륙해 거의 편안한 날이 없었다.
 
천자께서는 물건 하나라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시고 죄 없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자주 사신을 보내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셨다. 백제는 지리의 험준함과 길이 먼 것을 믿고서 천자의 가르침을 업신여겼으므로, 황제께서 크게 노하셔서 삼가 죄를 묻고 정벌을 단행했으니 군사들의 깃발이 나가는 곳마다 한 번의 싸움으로 평정됐다.
 
그러한즉 마땅히 궁전을 늪으로 만들고 집터를 연못으로 만들어 후세의 경계로 삼고, 근원을 막고 뿌리를 뽑아 후손들에게 교훈을 보였어야 했다. 하지만 유순한 자는 받아들이고 배반하는 자를 정벌하는 것은 선왕의 아름다운 법도이고, 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 끊어진 대를 이어주는 것은 옛 성현들의 공통된 가르침이다.”
    
▲ 취리산 회맹 [사진=KBS드라마 ‘문무왕의 꿈’ 화면 갈무리]
 
‘일은 반드시 옛 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역사책에도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삼아 조상의 제사를 모실 수 있게 하고 옛 땅을 보전하도록 하니, 신라에 의지하고 기대어 영원히 우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 맹세문을 작성하게 된 취지가 들어있는 문장으로, 지금의 새로운 백제를 위해 당나라가 선심을 베풀어주었으니 서로 우방이 되어야 한다는 아주 그럴듯한 내용이 들어있다. 그 다음 문장부터 당나라는 이 맹세의식을 하는 목적 즉 마각(馬脚)을 드러내게 된다. 과연 어떤 내용일까?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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