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아름다운 것은 거짓을 뽐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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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4-21 09:05:28

해질 무렵 동네 길을 걷다 보면 작은 카페에서 길가에 내놓은 화분에, 가로수 밑의 한 줌 흙밭 위에 잔꽃들이 가득하다. 봄바람에 벚꽃 잎이 날려 옷깃에, 발치에 가만히 내려앉는 해마다 이 무렵이면 어릴 적 살던 집 마당에 피던 꽃들, 봄날 밤의 외등 불빛에 투명하고 하얗게 빛나던 꽃잎들이 생각난다.

봄이 아름다운 것은 긴 겨울을 이기고 어디선가 살아나 하나씩 둘씩 차례로 피어나는 꽃들 덕분일 것이다. 담장을 따라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피고 목련이, 그 다음엔 벚꽃이, 매화가, 철쭉과 영산홍이, 명자꽃이 핀다. 벚꽃 잎이 바람에 날려 길을 온통 하얗게 덮었다가 비에 씻겨 사라질 무렵에는 라일락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어 마당에 피던 봄꽃들을 꽃집에 가야 만날 수 있지만 예전에 단독주택에 살던 사람들은 복수초며 앵두꽃, 수선화, 패랭이꽃, 물망초, 제비꽃이 피던 봄의 마당을 기억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그중에서도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유명해진 두 사람이 있다. 프랑스 파리 북서쪽 지베르니라는 작은 마을에 집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꽃을 심고 그림을 그리며 살았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 그의 ‘지베르니의 정원’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만든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다. 모네는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두 가지는 그림 그리는 일과 정원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자신의 정원을 사랑했다.

시인이자 정원디자이너였던 비타 색빌웨스트는 영국 켄트주 시싱허스트 성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시싱허스트는 엘리자베스 1세가 사촌인 색빌웨스트 가문에 하사한 성으로 비타 색빌웨스트는 이곳에 머물며 글을 쓰고 꽃을 심고 정원을 거닐었다. 시싱허스트 성의 정원은 몇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그중에서도 비타가 달빛을 머금은 흰꽃들 사이로 밤의 산책을 즐기곤 했다는 ‘백색의 정원'과 그녀가 침실로 사용했던 사우스 코티지의 영국 시골집 마당의 정취를 품은 ’코티지 가든'이 유명하다.

비타 색빌웨스트는 시싱허스트의 정원을 가꾼 사람, 시인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보다는 열 살 연상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동성 연인이자 그의 작품 ‘올랜도’의 실제 모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비타 색빌웨스트와 버지니아 울프는 각각 결혼해서 남편이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남편과는 그저 사이좋은 동반자 같은 관계였다고 한다.

꽃들이 형형색색으로 피고 지는 것처럼 인간의 삶도 누구에게나 정해진 일정한 길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시골 선비처럼 나긋나긋 조용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타 색빌웨스트나 버지니아 울프처럼 무엇엔가 홀려 잘나고도 어지러운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먹이를 찾아 겨울 산을 헤매는 짐승처럼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대다수의 삶이 있다.

그런가 하면 잘난 부모 밑에 태어나 특별한 노력 없이도 어느 정도 평온한 일생이 보장되는 운 좋은 삶도 있다. 얼마 전 온 나라를 시끌벅적하게 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들, 요즘 새롭게 ‘아빠 찬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아들딸이 바로 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런 그들은 무엇 때문에 굳이 편입을 해서까지 의사가 되는 길을 걷고자 한 것일까? 생존을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세상에 도움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숭고한 목적에서가 아니라면 아마도 그들이 바란 것은 ‘좀더 나대면서 살기 위한 스펙쌓기’였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고단한 삶을 사는 우리 대다수의 눈에 비친 그들의 행적은 그렇다. 그들의 행적이 밉고 못마땅한 것은 평온한 미래가 보장된 그들이 더 빛나고 더 잘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런 대다수의 뒤틀린 심사를 일컬어 ‘이해충돌의 문제’라 하는 건지 모른다.

새 정부를 꾸려갈 사람들은 법을 이야기하고 팩트를 논하며 청문회를 기다려 보자고 한다. 어쩌면 그러는 그들 또한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을 끌수록 공정과 정의로 우리의 상처와 울분을 씻어 줄 거라 믿었던 그들 또한 똑같은 부류였다는 실망감이 커져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법과 팩트를 논하기 전에 먼저 이 문제가 품고 있는 예리한 칼날을 감지해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국민의 마음이 돌아서기 전에 바로 이 ‘이해충돌의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꽃들은 나대지 않고 욕심 부리지 않는다. 지금은 봄꽃들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시절. 그러나 우리 주변은 소란스럽고 불안하기 그지없다. 욕심으로 다투고 남의 발목을 잡으려 눈이 벌건 사람들, 거기에 떼를 지어 맹종하는 어리석은 다수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잠시 눈길을 돌려 봄의 꽃들을 바라볼 것을 권한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거짓을 뽐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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