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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을 획득해야 하는 프로골프 투어에서 1승을 거두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생계가 걸린 남자 골프투어에서는 여자 투어와 달리 경기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아마추어 시절 제 아무리 각광을 받던 유망주라 하더라도 우승 없이 투어를 떠나는 것은 다반사다. 돌이킬 수 없는 부상으로, 때로는 지독한 불운으로 우승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게 냉혹한 프로의 세계다.
우승없이 은퇴를 하는 선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프로골프 투어에서 우승과 준우승은 천양지차다. 우승자에게는 약 두배 이상의 상금이 주어질 뿐 아니라 일정 기간 투어에 출전할 수 있는 시드권도 주어진다. 게다가 우승자에게는 ‘위너스 클럽(winners club)’이라는 영광의 타이틀이 붙는다. 그래서 누구든지 우승에 목말라 하는 게 당연하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의 ‘살아 있는 전설’ 최상호는 정규투어에서만 무려 43승을 거뒀다. 최상호가 맹활약했던 1970~80년대 만해도 대회가 1년에 고작해야 7~8개 정도 열렸으니 실로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코리안투어 역대 통산 다승 2위인 박남신이 20승을 거둔 것만 봐도 최상호의 43승은 거의 불멸에 가까운 기록이라는 찬사가 나온다. 최상호가 첫 승을 신고한 1978년부터 마지막으로 정규투어 우승을 한 2005년 사이에 무관이었던 시즌은 1988년 한 해뿐이다. 대회에 나갔다 하면 우승을 도맡았을 정도다. 많은 우승을 했지만 그냥 운좋게 얻어진 우승은 한 번도 없었고 모두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올해 만 67세인 최상호는 시니어 투어(만 50세 이상)를 거쳐 그랜드 투어(60세 이상)에서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시니어 부문에서 15승, 그랜드 시니어 부문에서는 11승을 기록했다. 자신의 나이보다 우승 횟수가 더 많다. 땀과 눈물, 그리고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다. 이제까지 단 하루도 골프채를 안 잡은 날이 없었다. 키 170㎝에 70㎏ 정도의 체중을 평생 유지하고 있는 최상호는 장타자가 아니었지만 승부근성으로 무장한 쇼트게임의 귀재로 통했다. 그의 우승 비결은 연습에 있었다. 요즘에는 체력적으로 달려서 그렇지 못하지만 30년가량 매일 1000개 이상의 공을 치고 1주일에 6번 라운딩을 했다. 타고난 천재이기보다는 연습벌레였던 셈이다.
최상호가 골프와 인연을 맺은 지는 50년이 넘었다. 경기 고양군 원당면에서 농사 짓던 집안의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16살의 소년 최상호가 골프라는 낯선 스포츠를 처음 접한 것은 1970년 무렵이었다.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그의 집 근처에 어느 날 골프장(뉴코리아CC)이 개장했다. 운동에 소질이 있었지만 처음 보는 운동이었다. 너무 재미있어 보여 용돈도 벌 요량으로 골프 연습장에서 입장 쿠폰도 받고 채도 닦아 주며 아르바이트를 한 게 그 시작이었다. 그렇지만 이게 천직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얀 공이 쭉쭉 뻗으며 멀리 날아가는 모습에 반한 소년은 뉴코리아CC 총지배인으로 KPGA 프로출신 3번 배용산씨한테는 감히 레슨을 받지 못하고 10살가량 위인 연습장의 손흥수, 손창열 프로들로부터 골프를 배웠다. 매트가 아닌 땅바닥에서 공을 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연습효과는 만점이었다. 공을 정확하게 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맨땅에서 샷 연습을 한 탓에 피칭이나 샌드웨지는 1년이면 닳아서 없어질 정도였다.
눈을 떠서 밥을 먹는 시간 외에는 골프공과 씨름하며 하루 1500개 정도의 볼을 쳤다. 열심히 골프를 배웠지만 정작 1년에 두 차례 실시된 프로 테스트에서는 낙방을 거듭하다 7전8기 끝에 합격했다. 여러 차례 떨어지다 보니 실력을 더욱 쌓을 수 있었고, 훗날 방심하지 않게 됐다.
1977년 9월 KPGA 프로가 된 그는 프로데뷔 1년 만에 여주오픈에서 첫 우승을 신고한다. KPGA투어 43승을 모두 기억하지만 여주오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보통 대회 우승 상금은 60만원이었지만 여주오픈은 우승상금이 무려 300만원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큰 대회였기 때문이다.
시즌 4승을 무려 3번이나 기록했다. 여자골프 투어와는 달리 생계형으로 벽이 높은 남자골프 투어에서는 시즌 2승을 올리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그는 대회에 출전하면 늘 우승후보로 꼽혔다. 한국의 대표 골퍼로 자리매김한 최상호는 만 50세가 넘은 2005년 5월 매경오픈에서도 정상을 차지하며 최고령 우승자(만 50세 4개월)라는 기록을 하나 더 보탰다. 이 기록도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필드에서 선망의 대상인 최상호가 두 아들에게는 오랫동안 골프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게 했다. 아버지처럼 골프 선수가 되겠다고 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기에 아예 골프에 대한 ‘싹’도 트지 못하게 했다.
골프는 유전적인 영향보다는 오로지 노력만이 성패를 좌우하고, 자연과 싸우며 죽은 공을 살려야 하는 힘든 직업이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무거운 짐을 안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더구나 대스타인 아버지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아서다. 스포츠 스타 2세로 아버지의 길을 따른다면 ‘누구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현미경 같은 주위의 시선 속에 비교되는 삶 자체가 큰 스트레스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120년 동안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우승한 부자(父子) 챔피언은 단 8건에 불과하다.
공부를 선택한 두 아들은 국내 명문대를 졸업해 각각 대기업 직원과 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6명의 손자를 둔 할아버지 최상호는 쉬는 날 두 아들과 나가는 골프 라운드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고 한다.
깔끔한 옷차림에 에너지가 넘쳐 보이는 그의 실력은 아들보다 더 어린 후배들과 당당히 맞설 정도다. 넘쳐나는 골프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는 예나 다르지 않다. 그는 대회가 없어도 늘 대회 때와 똑같이 오전 6시에 일어나 연습 볼을 치고 라운드를 하면서 평생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남에게는 너그럽고 자기 관리에는 엄격하다.
그 덕분에 50년간 투어를 뛰면서 이렇다 할 부상이 없었다. 그는 골프계에서 ‘특급 매너남’으로 불린다.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에티켓과 룰을 강조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운동인 골프를 50년 넘게 쳐온 덕에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1990년 대한골프협회(KGA) 회장이었던 허광수 남서울CC 회장의 도움으로 남서울CC에서 24년간 헤드 프로로 재직하다 2014년 스스로 정년 퇴임을 했다. 환갑을 앞뒀는데도 골프장으로부터 매달 급여를 받기가 미안했기에 회사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직한 것이다.지금은 경기 고문을 맡고 있다.
코리안 투어 25승 이상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영구 출전권을 갖고 있지만 젊은 후배들에게 대회 출전의 기회를 한 자리라도 더 주기 위해 정규 대회에 출전을 가급적 자제한다. 그는 골프 외에 골프 교습 등 다른 비즈니스를 일절 하지 않았다. 훈련량은 예전보다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골프를 대하는 열정과 노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제 골프의 계절이 왔다. 다음 주면 골프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정규투어, 그랜드 시니어부문 등 공식 대회에서 69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한 최상호는 통산 70승에 1승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70승 채우기는 시간문제로 보여진다. ‘영원한 현역’ 최상호의 선전을 기대하며,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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