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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이 부진을 겪자 무상증자 카드를 꺼내는 상장사가 늘어나고 있다. 무상증자는 주주에게 주식을 공짜로 나눠주는 주주환원책으로 시장에선 호재로 해석한다. 실제로 올해 무상증자를 발표한 대부분 기업의 주가는 공시 후 치솟았다. 다만 아쉽게도 상승 흐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들의 주가는 잠시 오르다 고꾸라지고 말았다.
기업가치 그대로지만 ‘권리락 착시효과’로 매수세 ↑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무상증자 결정’을 공시한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소속 상장사는 총 28곳으로 집계됐다. 유가증권 4곳에 코스닥 24곳에 이른다. 증시 호황기였던 지난해 1~4월(58개사)보다는 크게 줄었지만 같은 기간 2020년(13개사), 2019년(16개사)보다는 10여개 늘어난 수치다. 올해 무상증자를 공시한 28개사의 신주 발행 수는 3억3300만주에 달했다. 이 가운데 권리락(신주의 배정권리와 배당권리가 없어진 상태) 기준가를 공시한 23개사의 무상증자 발행 규모는 총 3조9956억원에 달했다.
무상증자는 말그대로 주식대금을 받지 않고 주주들에게 보유주식 비율대로 주식을 나눠주는 것을 말한다. 잉여금(순이익)에 담긴 돈을 자본금(주식발행금)으로 옮겨 신주를 발행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잉여금은 줄어들고 자본금은 늘어나지만 당연히 자기자본의 총액은 아무 변함이 없다. 외부에서 돈을 끌어와 자본금을 불리는 유상증자와도 조금 다르다.
이렇다보니 무상증자를 실시한다고 기업가치가 올라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상증자로 주식 수가 늘어난 만큼 주가도 하락하기 마련이다. 다만 권리락이 발생하면 가격이 저렴해 보이는 ‘착시효과’가 나타나 매수세가 몰릴 수 있다. 또한 무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그만큼 재무구조가 탄탄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고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주가에 호재로 작용한다.
실제 상황도 이론과 다르지 않았다. 올해 무상증자를 발표한 28곳 중 20개사의 주가가 공시 전후 큰 폭으로 뛰었다. 지난달 4일 무상증자를 결정한 라온테크의 주가는 공시 후 4만2500원에서 4만3400원으로 2.12% 올랐다. 이후 5거래일동안 상승흐름을 이어갔다. 같은 달 6일 무상증자를 발표한 에코프로비엠도 공시 후 이틀 연속 상승하며 10.55% 치솟았다. 브레인즈컴퍼니 역시 지난달 19일 장중 무상증자를 공시한 뒤 전날 대비 6.40%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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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오동훈 기자] ⓒ스카이데일리 |
이 와중에 상한가를 기록한 종목도 있었다. 3월17일 무상증자를 발표한 플랜티넷은 전날 대비 29.94% 오른 8680원에 거래를 마쳤다. 엠브레인과 선진뷰티사이언스도 2월 중순에 무상증자를 결정한 뒤 공시 전과 비교해 각각 29.63%, 29.93% 올랐다. 대형주도 호재를 봤다. 코스피200 기업인 DL이앤씨는 3월24일 무상증자를 공시하고 다음날 2.68% 상승했다.
소액주주들이 무상증자를 요구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2월 말 랩지노믹스 주주연합위원회는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200% 무상증자’ 등을 포함한 주주 입장문을 회사에 발송했다. 지난해 역대 최고치 1049억원 영업이익을 거뒀음에도 주주가치를 환원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회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3월16일 장중 보통주 1주당 신주 2주를 배정하는 200% 무상증자를 결정했다. 그날 랩지노믹스 주가는 29.9% 급등하며 3만1700원을 기록했다.
무상증자 2주일 뒤 26곳 중 13곳 주가 하락
하지만 무상증자 효과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올해 무상증자를 발표한 상장사(브레인즈컴퍼니·신도기연 제외) 26곳 가운데 13곳은 공시 후 10거래일 만에 주가가 떨어졌다. 일례로 이즈미디어는 무상증자를 공시한 2월14일 14.2% 상승했지만 이후 내리막을 타며 10거래일 만에 18.10%나 빠졌다. 현재 부실한 재무상태로 ‘감사의견 거절’를 받으며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에이프로도 1월24일 무상증자를 결정한 후 다음날 4.1% 오르며 기대를 모았지만 10거래일 뒤 12.48% 하락했다. 무상증자 이슈가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그밖에 황금에스티(-0.35%)와 대원제약(-9.72%), 이상네트웍스(-3.05%), DL이앤씨(-1.15%) 등도 발표 직후 급등했지만 얼마 못 가 다시 하향곡선을 그렸다.
권리락 이후에도 주가 변동성은 컸다. 권리락 기준가를 공개한 23개사 중 8개사만 주가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5개사는 권리락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랩지노믹스는 3월31일 권리락 이후 바닥을 기며 4월29일까지 36.98%나 급락했다. 플랜티넷도 권리락 발생일(3월30일)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며 지난달 29일까지 21.10%가 주저앉았다. 엠브레인 역시 권리락 발생(2월24일) 이후 하락하며 20.26%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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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오동훈 기자] ⓒ스카이데일리 |
그렇다면 무상증자를 한 기업의 가치는 과연 높아졌을까. 공시일부터 4월29일까지 시총이 오른 곳은 9개사에 불과했다. 나머지 19개사는 무상증가를 단행했지만 시총은 되레 감소했다. 무상증자가 주가를 결정하는 독립변수는 아니었던 셈이다. 실제로 시총이 가장 많이 오른 황금에스티의 실적은 우수했다. 황금에스티의 작년 영업이익은 412억원으로 전년(237억원) 대비 73.3% 올랐다. 반면 무상증자 효과를 보지 못한 이들의 실적은 저조했다.
전문가들은 무상증자가 주가에 단기적으로 긍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부정적이라는 입장이다. 박영규 가톨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주식배당과 무상증자의 주가와 유동성효과’라는 논문에서 “주식배당과 무상증자에 대한 반응은 모두 긍정적이며 무상주발행비율이 높을수록 더욱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며 “무상증자의 공시반응이 주식배당보다 높지만 관측기간을 확대할수록 차이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반응 또한 사라진다”고 분석했다.
박교수는 특히 “두 무상주의 장기주식성과는 모두 음(-)의 보유초과수익률을 보이며 두 집단 간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주식배당과 무상증자가 단기적 주가에도 긍정적이지만 장기주가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만큼 무상주 발행만으로 기업가치가 제고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정원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도 ‘무상증자, 액면분할, 주식배당: 주가와 거래량 효과’라는 책자를 통해 “주식수 증가배율이 높다고 해서 장기 주가성과가 더 우월하지 않았다”며 “주가조정이 일어나는 권리락일, 배당락일, 신주상장일 전후 기간 시장 참가자들의 착시효과로 인해 주가가 상승한다는 이른바 가격 착시효과에 대한 증거는 거의 없었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이어 “결론적으로 무상주 발행의 수단은 서로 간 대체성이 없으며 일시적으로 긍정적 주가 반응을 이끌어낼지는 모르나 장기 주가부양 효과는 없어 보인다”며 “액면분할의 경우만 거래유동성이 증가하지만 이 또한 장기기업가치 상승을 이끌어내지는 못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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