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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놈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 끓는 목소리로 웅숭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약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 쓰고 혁명공약 배지 차고.”
엊그제 타계한 김지하 시인의 시 ‘오적(五賊)’의 일부다. 1970년 이 시를 게재한 잡지는 폐간됐고, 편집인과 작가는 구속됐다. 단행본도 국내 출판이 불가능해 일본에서 먼저 출간했다. 본명이 김영일(金英一)인 시인은 지하다방 간판에서 착안해 ‘지하’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시인이 지목한 ‘오적’은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이다. 물론 대통령 3선 개헌안 통과와 부실공사의 대명사 와우아파트 붕괴, 전태일 분신 등 사회가 어수선하던 1960년대 말~1970년 상황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아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인물을 을사오적에 비유해 풍자 비판한 것이다.
‘오적’에는 다섯 도둑 이외에도 경찰과 사법당국을 상징하는 포도대장이 등장한다.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에도 외려 오적에 매수돼 죄 없는 국민을 투옥하는 등 권력의 앞잡이로 행사하는 포도대장의 추악함을 꼬집었다.
시인은 5년 후인 1975년에는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불후의 명시를 쏟아낸다. 군사 정부가 서슬 퍼렇던 1980년대 그의 시는 노래로 만들어져 사그라지는 ‘민주주의’를 다시 살려냈다. 시인은 국내외 지식인들의 구명운동 덕분에 풀려나긴 했지만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기까지 했다.
199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분신자살이 이어지자 시인은 한 신문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운동 진영에 대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며 죽음을 미화하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한창 생명사상에 빠져있던 시인이었다. 그를 영웅시 하던 좌파 진영에선 변절했다고 비판했지만, 시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진심은 옥중에서 발표한 양심선언을 보면 안다. “나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다. 내가 특권, 부패, 독재 권력을 철저히 증오하는 한 젊은이라는 사실 이외에 나 자신을 굳이 무슨 주의자로 규정하려고 한다면, 나는 이 대답밖에 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백성을 사랑하는 위정자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피와 시민의 칼을 두려워하는 권력을 바란다.” 시인의 명복을 빈다. 조정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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