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 적극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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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퍼펙트 스톰’ 앞둔 세계경제

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5-11 00:02:40

‘퍼펙트 스톰’은 둘 이상의 태풍이 충돌하거나 태풍이 다른 기상 상황과 겹쳐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다. 2000년 개봉한 같은 이름의 영화에서는 폭풍과 허리케인, 한랭전선이 겹쳐 수십만톤급 컨테이너선의 컨테이너가 우수수 떨어질 정도의 위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기상용어보다 경제 상황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인다. 어쩌다 발생하는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상호작용을 일으켜 대형 경제위기가 초래되는 상황을 말한다. 앞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가 ‘퍼펙트 스톰’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지금 세계경제는 ‘퍼펙트 스톰’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데 주력했다. 이렇게 풀린 유동성은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시장을 부양했다.

하지만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이 가라앉기 전에 또 다른 충격파가 세계경제를 덮쳤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악몽의 터널이 끝을 보일 때쯤 일어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며 복병으로 떠올랐다. 식량 가격도 요동치고 있다. 2020·2021년(추정) 기준 러시아의 밀 수출량은 세계 1위, 우크라이나는 4위로 전 세계 밀 수출량의 27.4%를 차지하는 두 나라가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세계 식량시장에 경고등이 켜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공급망 차질과 수요 회복에 상하이 등 대도시 봉쇄로 인한 중국의 부진까지 겹쳐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4.9%였던 세계 경제성장률을 올해 1월에는 4.4%로, 지난달에는 3.6%로 갈수록 낮추고 있다.

이런 와중에 물가는 무섭게 치솟고 있다.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CPI)는 1년 전보다 8.5% 급등하며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미 연준은 4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75~1.00%로 0.5%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는 2000년 5월 이후 22년만의 최대 인상폭이다. 파월 연준 의장은 비록 0.75% 인상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지만 ‘빅스텝’ 기조는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도 현실화될 공산이 커 보인다. 연준이 잇달아 0.5%씩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7월이면 미국 기준금리 상단이 2.0%로 오르게 된다. 현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인 1.5%보다 0.5% 높은 수치로, 5월과 7월 기준금리 연속 인상에 나서야 동률을 맞출 수 있다. 우리가 미국금리를 추격해야 하는 새로운 상황이 목전에 다가온 셈이다.

기준금리가 역전될 경우 국내에 투자된 외국인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를 우려한 신흥국들은 벌써부터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이달 들어 칠레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7%에서 8.25%로 1.25%p 전격 인상했다. 이어 브라질은 11.75%에서 12.75%로 1%p, 체코와 폴란드가 각각 0.75%p,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홍콩 등은 각각 0.5%p씩 기준 금리를 올렸다.

과거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된 경우는 두 차례 있었다. 먼저 2005년 8월부터 2007년 8월까지 25개월 동안은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던 상황이어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크지 않고 오히려 코스피 지수는 70% 가량 크게 상승했다. 반면 2018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24개월 동안은 트럼프 행정부의 견제로 촉발된 미중 무역갈등이 우리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 기간 동안 코스피 지수는 20% 이상 폭락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한국 경제 기초가 튼튼해, 대규모 자금 이탈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금리 역전 시 생기는 부작용은 걱정스럽지만 감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미 금리 역전으로 급격한 자본 유출이 생기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은 수그러들기는 커녕 오히래 확산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올해 말 미국의 기준금리가 2.50~2.75%까지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전망이 현실화된다면 한은은 올해 5차례 남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매번 기준금리를 인상해야만 미국과 보조를 맞출 수 있게 된다.

금리가 역전되면 외국인 자본의 이탈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세계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는 때에 위기의 규모를 키우는 대응은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 이달 26일 이창용 총재 주재로 처음 열리는 금통위 회의에서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기대한다.

한원석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