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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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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라는 일본 영화감독이 있다. 감독이면서 배우이자 작가·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가족이란 남들이 안 볼 때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등의 불량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러 언행이 상식에 어긋나고, 혐한(嫌韓) 발언 등으로 우리 정서에는 맞지 않지만 다재다능한 인물인 건 틀림없다.
그는 베니스 영화제의 그랑프리 수상작 ‘하나비’를 비롯하여 칸 영화제 출품작 ‘소나티네’ ‘기쿠지로의 여름’ 등으로 일찌감치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이 되었다. 몇몇 작품이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그의 영화는 대체로 폭력적 요소와 서정성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난해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그 속에 신랄한 유머가 곁들여져 재미도 있다. 호불호를 떠나 한마디로 상당히 괜찮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 그는 코미디언이었다. 코미디언 시절 그는 비트 다케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1980년대의 일본 대중문화계를 주름잡았다. 다른 코미디언들과 달리 독설과 야유, 풍자가 뒤섞인 토크를 쏟아내는 그의 이미지는 ‘대학물(메이지대학교 공학부 중퇴)을 먹은 엘리트 코미디언’이었고, 이 이미지로 대중의 주목과 인기를 끌었다.
‘다케시사단’이라는 코미디언 그룹까지 만드는 등 한창 인기를 누리던 그는 불륜과 폭력 사건을 일으켜 연예계를 떠나야 했다. 그러고는 잠시 사라지는가 싶더니 얼마 후 영화감독으로 재기하여 제2의 전성기를 누린 것은 물론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었다.
“빨간 신호, 다 같이 건너면 겁날 것 없다.”
이 말은 1980년대 코미디언 시절 그가 만든 것이다.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도 여럿이 함께 무시해 버리기로 하면 겁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이 말은 무슨 일이든 다수가 무리를 이루어 저질러 버리면 통한다는 뜻으로, 맹목적 집단주의로 인해 상식이 전도된 상황을 풍자한 것이다. 일본인들의 집단적 사고와 행동을 비웃은 이 독설 콩트는 당시 일본의 대중을 열광시켰다.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중구삭금(衆口鑠金)과 다름 아니다.
이 말은 요즘 우리의 상황에도 딱 들어맞는다. 집단의 사고가 상식을 벗어나 편향되고 과격해져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이른바 ‘리스키 시프트(risky shift·집단 편향성)’의 상황이 202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것을 아마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난관을 이겨내고 경제 규모 세계 10위 안에 드는 나라를 만든 대단한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참으로 어이없고 참담한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수의 힘으로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서 이번에는 한국형 FBI라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를 위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를 자신들 입맛대로 꾸리려 하고 있다. 혹시라도 중수청이 새 정부의 지휘를 받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그들은 이번에도 다수의 힘으로 자신들끼리 사개특위를 구성해 중수청 설치를 위한 입법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1대 국회 후반기엔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맡기로 한 지난 해 7월의 여야 합의도 백지화시키려 하고 있다. 정권을 내주었어도 국회에선 다수당이니 야당노릇은 못 하겠다는 뜻이다.
그들이 이처럼 무모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 것은 ‘대가리가 깨져도 나는 네 편’이라 외치는, 전 국민의 30%에 이르는 맹목적 지지자가 있기 때문이다. 열성 지지자들은 아직 법원의 판결이 나진 않았어도 사실은 범죄자라는 사실을 대다수 국민이 알고 있는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 같은 사람에 대해서도 열광한다. 내 편이니 믿어야 하고 내 편이니 함께 우겨 주겠다는 것이다. 대선 당시 그의 구호였던 ‘나를 위해 이재명’을 그들은 정말 믿는 것 같다.
이것이 2022년 우리 앞에 닥친 실제 상황, 망신스러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일단 멈춰 서야 한다. 그게 약속이고 질서다. 상식적인 사람은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멈춰 서서 파란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려는 그들…. 더 큰 다수가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다수의 힘을 믿고 벌인 일들이 우리 모두에게 어떤 결과가 되어 돌아올지 그들은 아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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