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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을 획득해야 하는 프로 골프 투어에서 캐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선수 개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캐디는 선수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단순히 20kg이 넘는 클럽을 담은 백을 어깨에 메고 오르막 내리막 길을 8km가량 걸어야 할 뿐만 아니라 홀까지 남은 거리나 퍼트 라인까지를 일일이 살펴 선수에게 조언을 해 줘야 한다. 최상의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전략을 제시해야 하는 것 또한 캐디의 임무다.
코스정보뿐 아니라 심리 안정에 도움
캐디는 보통 5시간가량 경기를 벌이는 동안 코스 내에서 선수가 믿고 의지하는 유일한 동반자다. 그들은 ‘보스’에게 코스에 대한 각종 세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승부의 결정적인 순간 선수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경기에 집중시키는 상담사 역할까지 해야 함은 물론이다. '어떤 캐디와 함께 코스를 걷느냐'는 선수의 성적과 직결된다는 게 정설이다. 경기 중에 직면하는 모든 선택의 순간에 캐디가 얼마나 큰 믿음을 주는지에 따라서 경기력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전문 캐디가 등장하게 된 이유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경우에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전폭적인 믿음을 갖고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뉴질랜드 출신의 카 레이스 광인 스티브 윌리엄스에게 캐디 백을 맡겼고, 결국 메이저 15승 중 13승을 합작했다. 또 ‘8자 스윙’으로 유명한 짐 퓨릭(미국)은 올해 74세의 노장 캐디인 마이크 플러프 코완과 22년째 동고동락을 하고 있다.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서로 통하는 사이가 된 셈이다.
캐디라는 말은 16세기 스코틀랜드 여왕이자 프랑스 왕비였던 메리 스튜어트가 골프 라운딩을 할 때 사관학교 생도들을 경호원겸 캐디로 동반한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사관생도들을 프랑스 말로 카데(Cadet)라고 불렀는데, 이 말이 훗날 캐디(Caddie)가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미술학도 언니는 생애 첫 캐디 맡아
얼마 전 경기도 포천의 일동레이크 GC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즌 첫 번째 메이저 대회인 크리스 F&C 제44회 KLPGA 챔피언십에 출전한 ‘월드 스타’ 김효주가 자신의 친언니인 주연 씨를 캐디로 대동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 대회는 국내 여자골프에서 최고 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약중인 김효주가 이 대회에 출전한 것 자체가 관심을 모았다. 더구나 김효주는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지난 달 하와이에서 열린 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에서도 우승, LPGA 투어 통산 5승 고지에 오른 세계랭킹 7위 김효주는 자신의 전담 캐디가 개인 일정상 한국에 올 수 없게 되자 두 살 위의 언니에게 무거운 백을 들게 했다. “언니에게 좋은 추억을 선사하고 싶다”는 게 언니를 캐디로 대동한 이유였다. 친 언니가 캐디를 맡는다고 해서 기대도 있었지만 물론 걱정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주연 씨에게는 이번의 캐디 일이 평생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김효주는 언니를 가장 믿고 따르며, 평소 각별한 우애를 과시하고 있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두 살위의 주연 씨는 2020년에 골프를 배우기 시작해 현재 골프의 맛에 흠뻑 빠져 있다고 한다.
김효주에 걸맞지 않는 최종일 79타
아름답고 군더더기 없는 스윙을 지녀 모든 사람이 탐내고 부러워하는 김효주다. ‘골프 천재’라고 불리며 1995년생 동갑내기들인 고진영·김민선·김아림 등 보다 앞서서 2012년 10월 프로가 된 김효주는 KLPGA 투어에서만 무려 13승을 올렸다.
서울 대원외고 학생 신분이던 김효주는 아마추어 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한국·일본·대만 등 3개국의 정규 프로 대회에서 연거푸 우승을 차지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프로 잡는 아마’ ‘골프 천재’ 등의 별칭이 붙여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아마추어 주요 대회에서도 무려 14번이나 우승컵을 들어올린 화려한 커리어를 갖고 있으며, 팬층도 두터운 편이다. 2014년 9월 초청 선수로 출전한 LPGA투어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거머쥐어 이듬해 LPGA에 직행해 5승을 쌓았고, 지난해 8월애는 태극 마크를 달고 2020년 도쿄올림픽에도 출전했다.
3라운드까지 단독선두를 달린 김효주는 KLPGA 챔피언십에서도 승수를 보탤 것이 유력시됐지만 언니와 함께한 최종 4라운드 후반 9개홀에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공동 4위로 밀려났다. 버디는 1개뿐이고 트리플 보기 1개, 더블보기 1개, 보기 3개를 쏟아내며 아마추어 수준인 7오버파 79타라는 불상사를 내서는 결코 우승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하의 김효주와 결코 어울리지 않는 스코어였다. 우승은 김효주에 무려 6타나 앞선 역시 LPGA에서 활약중인 김아림이 가져갔다.
챔피언 조에 속한 김효주 등은 전반 9번째 홀에서 경기진행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이후 경기시간을 재겠다”는 경기위원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뒤 타수를 잃었다고 한다. 성격이 명랑하고 유쾌한 김효주는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 10년차인데도 후반에 집중력을 잃고 흔들렸다는 얘기다. 노련한 고참 캐디와 호흡을 맞춰도 극복하기가 어려운 여건이었는데도 캐디 일이 처음인 주연 씨가 동생을 다독이고 보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늘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게 프로정신
골프는 결과가 좋은 때도 나쁠 때도 있기 마련이지만 모든 선수는 대회에 출전할 때에는 늘 우승을 목표로 한다. 김효주 역시 모처럼 출전한 이번 국내 대회에서 다 잡았던 우승 기회를 놓쳐 아쉬움이 적지 않을 듯하다. 결과론적으로 언니와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더라면 필드 위에서 더욱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금상첨화가 되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아무리 규모가 작고 하찮은 대회라도 선수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함은 당연하다. 그것이 진정한 프로정신이다. 호랑이는 굶어 죽을지언정 결코 풀을 먹지 않으며, 토끼 한 마리를 먹잇감으로 사냥할 때에도 전력을 다한다는 동서고금의 메시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대회 최종일에 친언니가 아닌 전문 캐디를 대동했더라면 결과는 어떠 했을지가 자못 궁금하다. 앞날이 창창한 김효주가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더욱 정진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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