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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광개토왕의 신라구원 사건 속으로 (III)

삼한백성 엑소더스는 일본열도의 축복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5-19 11:30:51

 
▲ 정재수 역사작가
광개토왕릉비의 ‘영락10년(서기 400년) 신라 구원’ 사건은 옛 부여백제(왜잔국) 삼한백성이 일본열도로의 엑소더스를 위해 경남 남해안에 집결하며 발생했다. 삼한백성이 신라의 국경을 범탈하자 내물왕은 고구려에 급히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광개토왕은 5만 군사를 내려보내 삼한백성의 소요사태를 진압하며 남방을 평정한다. 이번 회는 광개토왕의 군사행동 이후 전개된 삼한백성의 엑소더스 결과이다.
 
삼한백성의 일본열도 엑소더스
 
‘영락10년 신라 구원’ 사건 이후 전개된 상황이다. 광개토왕의 남방 평정(400년) 이후의 궁월군과 120현 삼한백성의 행방으로 일본열도로의 엑소더스 성공 여부다.
 
일본서기’ <응신기>다. ‘16년(서기 401년) 8월, 평군목토숙니와 적호전숙니를 가라에 보냈다. 정병을 주며 이르길 “습진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필시 신라가 막아서 지체하고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빨리 가서 신라를 치고 길을 열라”했다. 이에 목토숙니 등이 정병을 거느리고 진격해 신라의 국경에 이르렀다. 신라왕은 두려워하며 복죄했다. 그래서 궁월군의 인부(백성)를 이끌고 습진언과 함께 돌아왔다(十六年 八月 遣平群木菟宿禰的戶田宿禰於加羅 仍授精兵詔之曰襲津彦久之不還 必由新羅人 拒而滯之 汝等急往之擊新羅披其道路 於是木菟宿禰等進精兵 莅于新羅之境新羅王愕之服其罪乃率弓月之人夫與襲津彦共來).’
 
이때는 광개토왕의 남방 평정 이듬해인 서기 401년이다. 야마토 응신왕은 갈성습진언(葛城襲津彦)이 궁월군과 120현의 삼한백성 엑소더스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자 추가로 평군목토숙니(平群木菟宿禰)와 적호전숙니(的戶田宿禰)에게 군사를 주어 가라(임나)에 파견했다. 평군목토숙니는 군사를 이끌고 신라 국경에 이르고 당황한 신라왕은 복죄하며 삼한백성의 엑소더스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 4세기 후반 대규모 한반도인의 일본열도 이동. [사진=필자 제공]
    
신라왕의 복죄는 무엇일까? 복죄는 죄를 인정하는 행위다. 기록대로라면 신라왕의 죄는 삼한백성의 엑소더스를 방해한 행위다. 방해의 실체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내물왕은 야마토의 군사적 압박에 굴복했다. 이듬해인 402년 내물왕의 뒤를 이은 실성왕이 미사흔(未斯欣) 왕자를 야마토에 볼모로 보내며 삼한백성의 엑소더스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또한 일본열도로의 엑소더스는 한 차례 더 이뤄진다. 아지사주(阿知使主)가 이끄는 17현민이다. 일본서기’ <응신기>다. ‘20년(서기 403년) 9월, 왜한직의 조상 아지사주와 그의 아들 도가사주가 17현민을 이끌고 돌아왔다(二十年 秋九月 倭漢直祖阿知使主其子都加使主並率己之黨類十七縣而來歸焉).’  속일본기에는 아지사주와 17현민의 출신이 대방(帶方·황해도)이며 응신왕의 부름을 받고 야마토로 건너왔다고 적고 있다.
 
궁월군의 삼한백성과 아지사주의 대방백성은 이후 야마토정권으로부터 각각 하타(秦)씨와 아야(漢)씨의 성씨를 하사받는다. 하타씨는 오사카 일대, 아야씨는 나라현 금래(今來·이마키)군에 정착해 토목과 양잠기술 그리고 행정관리체제 등 선진화된 문물과 문화를 일본열도에 전파했다. 이들 두 집단은 일본열도의 뉴커머(new comer)이다.
 
우리가 잘 아는 문자와 학문을 전한 왕인(王仁) 박사도 이 시기 일본열도로 건너갔다. 일본열도는 이들 한반도에서 건너간 엑소더스 집단으로 인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일본은 본격적인 국가체제를 갖추고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가히 ‘역사의 신(神)’이 일본열도에 내린 축복 중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
 
광개토왕의 신라 구원 사건 정리
 
▲ 오사카에 소재한 응신왕릉과 인덕왕릉. [사진=필자 제공]
     
‘영락10년 신라 구원’은 한반도 왜잔국(부여백제)이 광개토왕에게 무참히 깨진 ‘영락6년 왜잔국 정벌(396년)’을 배경으로 한다. 그 결과로 왜잔국의 주류세력이 일본열도에 급히 망명해 야마토정권을 수립하고(397년), 이를 뒤따르려던 옛 부여백제(왜잔국)의 삼한백성(궁월군과 120현민)이 일본열도로 건너가기 위해 한꺼번에 경남 남해안에 집결했다(400년).
 
광개토왕은 5만 군사를 보내 삼한백성의 소요사태를 진압하고 신라를 구원한다. 이후 야마토는 군사를 파견해 신라를 압박하고 또한 협상을 통해 삼한백성의 엑소더스를 완결했다(402년). 다만 이 과정에 백제(한성백제)는 옛 왜잔국(부여백제)의 삼한 땅을 얻기 위해 전지 태자를, 신라는 삼한백성의 엑소더스를 보장하기 위해 미사흔 왕자를 각각 야마토(倭國)에 볼모로 보냈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부여기마족의 대장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대륙(서부여)에서 출발하여 한반도(부여백제)를 거쳐 일본열도(야마토)로 건너간 부여기마족의 위대한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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