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지 사기와 테라·루나 코인의 불투명한 미래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스카이 View]- 테라·루나 코인 폭락 사태

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5-18 00:02:40

‘폰지 사기’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찰스 폰지가 1910년대 미국에서 자행한 사기 수법을 말한다. 실제로는 이윤을 내지 못하면서도 신규 투자자의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폰지는 우편 발송인이 받는 사람의 답신 요금을 면제할 수 있는 국제반신우표권(IRC) 가격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는 IRC를 싼 곳에서 사서 비싼 곳에서 파는 차익거래로 큰 수익을 낼 것이라고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이어 초기 투자자들이 낸 돈 일부를 수익금으로 돌려주고 이를 미끼로 더 많은 투자자를 모으는 수법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이런 점에서 폰지를 전형적인 다단계 금융 사기의 원조로 보기도 한다.

이후에도 폰지 사기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냈다. 70조원이 넘는 피해액으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기로 꼽히는 미국 월가의 버나드 메이도프 사건을 비롯해 국내에서는 피해 추정액 5조원대의 조희팔 사건, 2조원대의 주수도 사건도 대표적인 폰지 사기 수법을 활용한 사례다.

최근 테라USD(UST)와 루나(LUNA) 코인이 폭락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루나의 경우 어린이날에만 해도 루나당 87달러(약 11만원)를 기록했지만 17일 현재 0.1센트(1원)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다. 불과 며칠 만에 휴지 조각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테라·루나 코인은 애플 엔지니어 출신 권도형 대표와 티몬 창업자 신현성 대표가 공동창업한 테라폼랩스에서 발행했다. 이들은 이중토큰시스템을 도입해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와 루나를 알고리즘 기반으로 연결해 운영했다.

테라는 ‘1테라=1달러’로 미국 달러화와 연동해 자산 가치를 유지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테라의 가치가 1달러 밑으로 하락하면 루나를 발행하고 테라를 사들여 테라 가격을 1달러에 근접시킨다. 다시 테라 가치가 1달러를 넘기면 테라로 루나를 사들여서 조정을 가하는 방식이다. 루나는 한 때 시가총액 50조원을 넘어서면서 시가총액 2위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에 이어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에서 두 번째 규모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글로벌 공급망 불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빅스텝 등으로 투자심리가 안전 자산으로 이동하면서 불거졌다. 코인 매도는 넘치는데 매수는 없으니 테라의 가치가 1달러 밑으로 떨어졌고, 루나를 발행해 테라를 사들였지만 루나 투자자들이 대규모로 매도하는 ‘패닉셀’이 일어난 것이다.

애초에 경제계 등에서는 테라·루나를 두고 일종의 ‘폰지 사기’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테라폼랩스는 투자자가 테라를 구매해 예치하면 루나로 변경해 주고 예치에 대한 20%의 이자를 보장했다. 누군가가 사 줘야만 가격이 유지되는데, 사실상 이론만 거창한 피라미드 방식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도 이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투자펀드도 이런 약속을 할 수 없다”면서 “탑 플레이어의 수익률이 몇조 원 한정 자산 내에서 비용을 제외하고 10∼15% 정도지만 이것도 약속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사실상 사기라고 꼬집은 셈이다.

이러한 의문이나 문제 제기에 대한 권 대표의 대응 역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모델의 실패 가능성을 지적한 영국의 한 경제학자에게 권 대표는 “나는 가난한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초 ‘앵커프로토콜에 있는 자금 3억달러를 어디서 마련할 거냐’는 질문에 상대방의 어머니를 언급하는 무례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권 대표는 최근 인터넷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테라USD 코인을 없애고 이 블록체인의 코드를 복사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이러한 계획에 여전히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최고경영자(CEO)는 “아무런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고 혹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더리움의 아버지 비탈릭 부테린은 ‘폰지 사기와 알고리즘 방식의 스테이블 코인, 수익률 파밍 등 지속 불가능한 헛소리를 중단하고 그런 실험도 멈춰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루나와 테라의 폭락 1주일 전에 한 외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권 대표는 “암호화폐의 95%는 사라질 것”이라면서 “그런 망해 가는 회사들을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해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권 대표의 시도가 루나·테라를 사라지지 않는 5%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원석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