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을 둘러싼 자유의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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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낙태론과 부르카

여성의 몸을 둘러싼 자유의 스펙트럼

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5-20 00:02:40

지금 세계는 여성의 몸을 놓고 전쟁 중인 곳이 두 군데 있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이다. 미국에서는 낙태법과 관련해서 찬반 양 진영이 격렬히 대립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독재 정권으로부터 여성의 얼굴을 드러내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져 여성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미국에서 낙태권을 둘러싼 논란은 보수와 진보 진영을 가르는 가장 뚜렷한 이슈 중 하나다. 그만큼 어느 한편에서도 양보할 기색 없이 목숨을 걸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는 각자의 소신과 철학, 양심, 종교 등과 관련되는 사안이므로 개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이슈이기도 하다. 물론, 대부분의 이슈가 그렇듯이 정치적 계산이나 경제적 손익, 개인의 이해관계와 전혀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미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49년 전 판결을 뒤집는 초안이 유출되면서 낙태권 논쟁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1973년 내려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은 이후 약 반세기 동안 미국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했다. 이는 ‘낙태 행위 처벌은 헌법이 보장한 사생활의 권리 침해’라면서 낙태를 여성의 사생활에 관한 결정권으로 인정한 기념비적 판결로 평가된다.

하지만 당시에도 낙태를 원한다고 해서 다 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낙태는 다른 생명체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1973년 당시 미 대법원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단계인 임신 23~24주 이전에만 낙태가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24주 이후에는 태아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 독립된 생명체로 본 것이다.

그런데 낙태 가능 기준을 임신 15주로 좁힌 미시시피주 법률을 연방대법원이 심의하면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초안이 작성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어 미국 전역을 뒤흔드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권리를 떠나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자 종교와 양심의 문제와도 결부되어 상당히 복잡하고 쉽게 답을 얻기 어려운 문제다.

만일 대법원이 미시시피의 15주 이상 낙태 금지 법안의 손을 들어 준다면, 낙태찬성론자들은 크게 반발할 것이고 반대론자들은 이를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15주라고 해서 태아에 생명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면 23주 이상 낙태 금지인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특히 23주 혹은 24주를 정하는 것이 태아의 자기생존력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도 결국 인위적인 판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낙태찬성론자의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24주가 지난 태아는 생명체이고 그 이전엔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이렇게 보면 격렬히 맞서고 있는 두 입장이 결국은 논리적으로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프가니스탄으로 가 보자. 그곳에서는 현재 여성이 다른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는 것조차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외출시 얼굴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르카는 두 눈이 있는 부분만 비치는 천으로 만들어진 전신을 가리는 복장이다.

지난해 미국이 물러가면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 정치조직인 탈레반 정권은 초기에 여성인권을 존중하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실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악몽의 연속이 되고 말았다.

여성의 교육, 외출 등에 압박과 구속을 가하던 탈레반 정권은 급기야는 여성의 얼굴을 완전히 가리라는 지침을 내렸다. 과거 1990년 탈레반 독재 정권의 폭압적 통제 사회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BBC 보도에 따르면 거리에서 얼굴이 드러나는 복장을 한 여성이 있으면 누군가가 다가와 얼굴을 가리라고 압력을 가한다. 상점에 가서도 얼굴을 가린 후에야 물건을 살 수가 있다. 한 여성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마치 죄인처럼 느껴진다”고 BBC에 말했다. 그는 얼굴을 가려야 외출할 수 있다면 아예 집 밖을 나가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구의 한편에서는 여성의 몸에서 가장 내밀한 부분인 자궁과 관련된 자유와 권리의 논쟁이 뜨거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의 몸에서 가장 외면적인 자아인 얼굴마저 내놓을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다. 여성의 몸과 관련된 자유의 스펙트럼 속에서 양 극단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한끝에서는 논쟁이 살아 있다면 다른 한끝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권리가 침묵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