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고 싶은 미미 <58> 은잔의 비밀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최문형의 아침 동화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5-25 10:40:46

“래빗, 그렇담 숲을 지키는 그 열쇠가 뭐야?” 궁금해진 미미가 얼른 래빗에게 물었다. 래빗은 가만히 손을 모았다. 이 동작은 래빗이 신중하게 무언가를 생각할 때 나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래빗은 두 눈을 감았다. 마치 꿈속으로 들어가듯이 래빗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 래빗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래빗이 대답했다. “아빠가 나를 인목(사람나무)으로 만들어 주신 다음에 아빠의 발치에 묻힌 은잔을 찾도록 하셨어. 손이 생긴 나는 아빠의 뿌리 근방에서 은잔을 찾아냈어. 미미, 바로 네가 여기 왔을 때 나타난 은잔 말이야, 기억하지?” “응” 미미가 대답했다. “내가 오고 은잔이 다시 나타나서 아주 좋아했잖아!” “맞아. 아빠는 나에게 은잔에 대해서 말씀 하셨어.”

“‘래빗, 너는 상반신이 사람이 되어 팔과 손을 가졌으니 이 은잔을 잘 간수할 수 있단다. 이 잔에는 파샤를 구할 비밀이 담겨 있어.’ ‘그게 뭐예요, 아빠? 알려주세요.’ 나는 아빠를 재촉했어. ‘사랑하는 내 딸 래빗, 이 잔을 잘 간직해야 한단다. 아빠는 네가 해낼 수….’ 여기까지 말씀했을 때 갑자기 아빠의 허리가 잘렸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도끼가 아빠의 허리를 찍어 버렸어. 푸른 피를 철철 흘리면서 아빠는 돌아가셨지. 나는 더 이상 아빠와 이야기할 수 없었어.”

래빗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작은 두 손에 파묻혔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다가 폭포처럼 흘렀다. 셀 수 없이 많은 래빗의 눈물은 바닥을 적시면서 교향곡이 되었다. “누가 파샤를 구할까, 누가 파샤를 구할까? 아빠가 못 다 하신 말씀은 무얼까? 은잔이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어떻게? 그런데 어떻게? 미미는 그 방법을 알까? 알프 요정이 도와줄 수 있을까?”

음표들의 연주는 래빗이 진정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미미와 알프는 음표들의 연주를 들으며 멍하니 있었다. 래빗의 아빠인 물푸레나무의 덧없는 죽음과 은잔의 비밀, 우탄의 배신과 레드의 충성, 가녀린 래빗의 막중한 임무…. 이 모든 것이 뒤엉켜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음표들의 가락은 메아리가 되어 아몬드 숲 요정의 궁정으로 흘러 들어갔다. 아몬드 숲 요정의 궁정에는 빅이 와 있었다. 한동안 소식이 없는 미미가 궁금해진 빅이 떡갈나무 요정 리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정들은 원래 동물들에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지난 번 떡갈나무 사건을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빅은 요정과 이야기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그러니까 빅, 미미가 새로운 임무를 맡은 거야. 나도 함께 가고 싶었는데 알프만 미미와 파샤로 떠났단다. 그들에게만 노랫소리가 들리니까 나는 갈 수 없었어. 노래에 실려야 파사에 갈 수 있거든.” “제가 일개미를 하면서 많은 곳을 다니고 별별 이야기를 들었지만 노래를 타고 어딘가로 갔다는 건 처음이에요, 정말 신기한 일이군요. 지금 미미와 알프 요정님은 무얼 하고 있을까요?”

순간 빅의 귀에는 래빗의 음표들이 연주하는 노래가 들려왔다. 가사를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은은하고 애절한 소리는 빅의 마음을 노크하고 있었다. “가만! 이게 무슨 소리예요? 리리 요정님, 무슨 소리 안 들려요?” “소리라니? 빅!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래?” “노랫소리 말이에요. 속삭이듯 들려오는 노랫소리요.” “맙소사! 빅! 파샤에서 전해오는 그 노랫소리는 아니겠지? 설마….”

리리가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이 빅의 눈 앞에는 사닥다리가 보였다. “리리 요정님, 미미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요. 가서 미미를 돕고 올 게요!” 빅은 회오리를 타고 어느 새 미미의 곁에 도착했다.

[글: 최문형 / 그림: 정수연]

최문형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