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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딸의 복수를 위해 고구려에게 원병을 청한 김춘추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5-26 18:12:22

 
백제 의자왕은 등극 이듬해인 642년 8월에 윤충 장군으로 하여금 병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게 했다대야성주 품석(品釋)이 처자식을 데리고 나와 항복했는데 윤충이 이들을 모두 죽이고 품석의 목을 베어 도성으로 보냈다사로잡은 남녀 1천여 명을 서쪽 지방의 주와 현에 나누어 살게 하고 병사를 남겨 그 성을 지키도록 했다.
  
이때 죽어간 대야성주 품석의 부인이 바로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었다. 김춘추는 딸의 비보를 접하고는 기둥에 의지해 종일토록 눈 한번 깜박이지 않더니만 얼마 후 슬프구나! 대장부가 되어 어찌 백제를 손에 넣지 못하겠는가?”라고 한탄하며 뭔가 다짐을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선덕여왕을 찾아가 신이 고구려로 가서 원병을 청해 백제를 쳐서 이 원한을 갚고야 말겠습니다.”라고 말해 윤허를 받아냈다고구려에 원병을 청하려는 이유는 당시 신라 자체의 군사력만으로는 백제와 대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백제군에게 사로잡힌 신라 대야성주 [KBS 역사저널 그날]
  
김춘추는 길을 떠나면서 김유신에게 나와 공은 일심동체로 나라에서 가장 중시 여기는 신하가 되었소. 이번에 내가 만일 고구려에 들어가 해를 당한다면 공이 어찌 무심할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그러자 김유신이 공께서 만일 가서 못 돌아오신다면 저의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와 백제 두 왕의 궁정을 짓밟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이 나라 사람을 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답하니 김춘추가 감격해 기뻐했다.
 
두 사람은 함께 서로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마시고는 내가 60일이면 돌아올 것이오. 만약 이 기한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시 만날 기약이 없을 것이오라고 맹세하며 작별했다고 한다.
 
고구려 땅으로 들어가니 보장왕이 연개소문을 보내 머물 곳을 정해주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번에 신라에서 온 사신은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아마도 온 이유는 우리의 형세를 살펴보려는 것일 겁니다. 대왕께서는 대책을 마련하셔서 후환이 없도록 하시옵소서라고 아뢰니, 보장왕은 김춘추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으로 그를 시험하고자 했다.
 
김춘추가 보장왕에게 지금 백제가 무도하게도 독사와 돼지처럼 되어 우리 신라의 영토를 침범하고 있습니다. 저희 임금께서는 대국(고구려)에게 병사를 얻어 그 치욕을 씻고자 저로 하여금 대왕께 명을 전하라 하셨습니다라며 원병을 요청했다.
 
그러자 보장왕은 죽령(竹嶺)은 본시 우리 땅이었는데 지금은 신라가 차지하고 있다. 만일 죽령 서북의 땅을 반환한다면 우리 군사를 내어줄 수도 있다.”라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김춘추는 국가의 영토는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니, 신은 감히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거부했다.
 
아울러 저는 저희 임금의 명을 받들어 군대를 청하고자 하는데, 대왕께서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구원해 그들과 좋게 지내실 뜻이 없고 단지 남의 나라 사신을 위협해 땅을 돌려 줄 것을 요구하시는군요. 저는 죽을지언정 다른 것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자 보장왕이 노해 김춘추를 별관에 가두어놓고 죽이려고 했다.
 
▲ 연개소문을 만난 김춘추 [KBS9 드라마 대왕의 꿈]
  
태백일사에는 위 삼국사기에 없는 대목이 있다. 연개소문이 자기 집에 김춘추를 머무르게 하며 말하기를 당나라 사람들은 패역하기를 짐승에 가깝습니다. 청컨대 고구려와 신라는 사사로운 원한을 잊고 지금부터 삼국이 서로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곧바로 당나라 장안으로 쳐들어가면 그 괴수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오.
 
전쟁에 이긴 후에 옛 영토에 따라 연정(聯政)을 실시하고 인의로써 함께 다스리기를 약속하여 서로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영원히 준수토록 하는 계책을 마련함이 어떻겠소?”라고 권하였으나 김춘추가 듣지 않았으니 애석한 일이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