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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이 보는 ‘남편 나라의 여왕’
며칠 전 점심 식사 후 빵 반죽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느닷없이 격앙된 어조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죠?”하며 밀가루 범벅인 손을 들고 뛰다시피 나가 보니 남편은 웃음 지으며 말했다. “여왕의 플라티넘 쥬빌리(영국 사람들은 ‘플래티넘’이 아니라 ‘플라티넘’이라고 발음한다) 공식 축하일이 오늘부터 일주일 지난 다음다음 날인 목요일이야!” 무슨 일이 일어났나 염려했던 가슴을 진정하고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올해 초 우리 부부가 영국에 있을 때 여왕의 즉위 70년째를 맞이하여 ‘플라티넘 쥬빌리’를 기념하고자 버킹엄 궁전은 6월 초 4일간의 공휴일을 선포했고, 정부는 ‘일생 한 번 있는 쇼’를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 남편이 말했다. “우리끼리 조촐하게 축하파티 하자고. 우리가 한국에 있으니 다른 건 할 수 있는 게 없고, 그렇게라도 해서 쥬빌리를 기념하는 수밖에 없잖아?”
영국에 처음 유학 갔을 때 그 나라에는 우리 한국에 없는 여왕이 있어서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옛날의 군주체제를 현재 정치체제에 통용할 수 있는 형태로 도입하여 보존하고 유지할 수 있는 그네들의 포용력이라고나 할까, 민족성이 참 독특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조선왕조가 붕괴해 버렸는데 말이다. 지나간 역사를 두고 ‘만약’을 가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일제의 결정 대신 우리 국민의 자유의사대로 조선왕조 이후의 국가 체제를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한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궁금했고, 한편 그 기회를 박탈당한 한국의 역사적 과거가 애석했었다.
영국에서 여왕의 근황을 접하는 기회는 미디어를 통한 보도나, 잡지와 신문기사와 사진이나, 크리스마스 메시지 등 여왕의 특별 발표 등을 통해서다. 버킹엄 궁전의 가든파티에 초대되었든지 작위를 수여받기 위해 여왕을 대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대하게 되는 여왕은 내게 국민과 국가를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는 봉사자의 모습으로 비쳐졌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이해하게 된 계기가 있다. 1953년 6월 2일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여왕의 대관식 비디오에서 본 한 장면 때문이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여왕의 양쪽 손목에 두꺼운 팔찌를 채워 주는 예식의 순간이 내게는 마치 평생동안 국민과 국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봉사하겠노라고 맹세한 공약의 볼모로 여왕에게 마치 족쇄를 채우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공약한대로 맡겨진 의무를 오늘까지 충성으로 실천하는 여왕께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Long live the Queen!(여왕 폐하 만세)”
플라티넘 쥬빌리에 즈음하여 안토니 디쉴드가 기억하는 여왕
2022년 6월2일은 엘리자베스 2세의 플라티넘 쥬빌리다. 이날은 영국 군주로서는 최초로 70년째 왕위에 있다는 뜻깊은 의미를 지닌다. 여왕의 부친 조지 6세의 예기치 않았던 죽음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고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공식상 왕위를 계승하게 되지만, 왕위 즉위식은 1953년에 런던에 위치한 ‘웨스터민스터 아비’라고 불리는 아주 크고 오래된 교회에서 거행됐다.
이 대관식은 대단한 의식으로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었다. TV가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라 사람들은 TV가 있는 친척이나 친구의 집에 빼곡히 모여 목을 길게 빼고 200mm나 250mm정도의 작은 화면에 흑백으로 방영되는 대관식을 보기도 했다. 적잖은 사람은 라디오로 이를 청취하고 나중에 극장에 갔을 때 5분정도의 발췌부분을 시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관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모든 사람이 ‘God save the queen(여왕께 신의 가호를)’을 외치는 소리와 함께 에드워드 왕관이 여왕의 머리에 씌워지는 순간이었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왕관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왕관을 자신의 머리에 써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 낸 때였을 것이다.
의식의 절정이자 황홀경을 자아내는 순간이었던 만큼, 자신의 왕관이 없던 사람들은 이 순간을 위해 가짜 왕관을 만들어 준비해 두었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받은 울긋불긋한 색깔의 왕관을 가지고 이에 동참했다.
각 가정에서는 사람들이 왕관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었고, 어떤 가정에서는 대관식 마차를 케익 꼭대기에 얹어 놓기도 했다.
온통 금도금이 입혀져 4마리의 말이 끌었던 이 마차는 아주 크고 오래된 것으로 에드워드 왕관을 쓴 여왕이 대관식을 마친 후 런던 시가를 행진할 때 사용했었다. 다른 나라 국가 원수들은 그들의 마차에 타 여왕이 탄 대관식 마차를 따랐는데, 이때 런던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여왕이 탄 마차는 지붕이 있었으므로 상관없었지만 다른 이들은 지붕덮개를 접고 있었던 터라 마차를 세우고 지붕덮개를 펼쳐 다시 행렬에 합류하니 환영 군중은 국가원수들이 지붕덮개에 가려져 그들을 볼 수 없었다.
단, 통가의 여왕 쌀로티는 비가 온다고 마차에 덮개를 씌우는 것은 명예로운 행동이 아니라며, 개방 마차를 타고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계속 전진해 환영 군중들의 환호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다.
안토니의 추억 어린 영어 한마디
‘Going to the pictures’. 이 구절은 근처의 극장에 2편의 영화와 지난주의 뉴스를 다룬 뉴스영화를 보러 간다는 뜻이다. 요즈음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디오나 신문을 통해 뉴스를 접했던 시절이라 이는 아주 특별한 이벤트를 나타내는 구절로 애용됐다.
따라서 극장에 가는 일은 보통 가족단위의 나들이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연애하는 커플들의 경우엔 극장의 뒷좌석에 숨어 애인과 함께 만남의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를 암시하기도 했다.
약 2000명 정도의 사람이 사는 읍 단위는 대부분 극장을 한 개 정도 가지고 있고, 규모가 큰 읍은 4개까지 있었다. 대도시들은 물론 극장 수가 훨씬 많았고 크기도 커,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에서 제일 큰 극장의 경우 4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영화가 끝난 후 집단 퇴장할 때는 정말 장난 아닌 광경을 연출해 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영화가 끝나면 여왕의 영화소식과 더불어 애국가가 연주되는데, 때가 마침 집으로 돌아가는 전차역에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하는 시간인 만큼 이러한 사정상의 이유가 애국가가 연주될 때 일어서 예의를 표해야 하는 애국심을 제압해 버렸고 누구를 막론하고 애국가가 연주되기 전 출입구로 달려 나가는 게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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