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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로 대한민국 온 국민이 경제위기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1998년 7월 7일 새벽 미국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열린 제53회 US여자오픈 골프대회 20홀 연장전(정규 연장전 18홀+ 서든 데스 2홀)에서 21살의 소녀 박세리가 역전과 재역전을 주고 받으며 ‘맨발의 투혼’을 펼친 끝에 태국계 아마추어 제니 추아시리폰를 꺾고 여자골프 최고봉에 오르는 감격의 우승을 거머쥔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 숨죽이며 TV를 시청하던 국민은 그의 우승에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고, 큰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여자골프 최고 권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니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렇게도 환호한 것은 그의 우승에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박세리의 ‘맨발 투혼’ 감동과 용기 줘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신인이었던 박세리의 우승은 대한민국 여자 골프의 금자탑이자 분수령이었다. 대한민국 여자 골프는 박세리의 우승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박세리의 US오픈 우승은 대한민국 여자골프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신호탄이었고 대한민국 스포츠의 위대한 역사였다.
한국인들은 US여자오픈이라면 맨 먼저 그때의 명장면을 떠올린다. 우리 사회에 전달한 임팩트가 크고 강하기 때문이다.
2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열리는 올해 제77회 US여자오픈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우승 경쟁이 예상된다. 총 상금이 지난해 550만달러(한화 약 66억원)에서 1000만달러로 대폭 늘어났고, 우승 상금만 해도 무려 180만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돈잔치로 치러진다. 이 대회에서만 우승해도 지난 시즌 기준으로 상금 랭킹 4위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시즌 상금 총액이 180만달러를 넘긴 선수는 고진영, 넬리 코르다(미국), 하타오카 나사(일본) 3명뿐이었다. US여자오픈의 우승 상금이 얼마나 큰 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회 주최측인 미국골프협회(USGA)는 대회 상금을 2023년에는 1100만달러, 그리고 향후 5년 동안 1200만달러로 올린다는 방침이어서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총상금 1250만달러로 열린 ‘남자 메이저’ 대회인 US오픈 상금을 거의 따라잡게 된다.
LPGA 투어 메이저 중 메이저
US여자오픈 골프대회는 셰브론 챔피언십,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AIG 브리티시 여자오픈,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과 함께 LPGA 투어 5대 메이저 대회다. 5대 메이저 대회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녀 ‘메이저 중 메이저’로 꼽히고 있으며, 모두가 정상등극을 탐내는 대회이기도 하다.
상금 랭킹에 따른 LPGA 투어 선수를 포함해 미국내 지역 예선을 통과한 선수와 한국 등 해외의 예선을 통과한 선수 등 150여명에게만 출전권이 주어져 우승하기 어려운 대회로도 그 명성이 자자하다. 아마추어들에게도 문호가 대폭 열려 있기 때문에 오픈 대회라고 부른다.
1998년의 박세리 우승 이후 2005년 김주연, 2008년 박인비, 2009년 지은희, 2011년 유소연, 2012년 최나연, 2013년 박인비, 2015년 전인지, 2017년 박성현, 2019년 이정은, 2020년 김아림 등 한국 선수들이 꾸준히 우승 기록을 세운 대회가 바로 US여자오픈이다.
특히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장타자인 김아림은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로 지역 예선을 치르지 못한 채 USGA가 대회 출전 자격을 확대하면서 첫 출전에 우승을 따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US여자오픈에 유독 강한 면모 보여
지난 23년간 무려 11번이나 태극낭자들이 챔피언에 올랐고, 5대 메이저 가운데 태극 낭자들이 유독 US여자오픈에서 강세를 보여 왔던 게 사실이다. 매년 코스를 바꿔 가며 열리지만 비교적 까다롭고 어렵게 세팅되는 US여자오픈 코스는 산악 지형의 코스에 누구보다 적응이 잘 된 태극 낭자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제 샷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이라 유독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골프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태극 낭자들이 LPGA 투어에서 성적이 예년에 비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올시즌 열린 12개 대회에서 우승을 맛본 선수는 1995년생 동갑내기인 고진영과 김효주와 며칠 전 뱅크 오브 호프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베테랑 지은희 등 3명에 불과하다. 예년에 비하면 다소 저조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를 질주 중인 고진영과 LPGA투어 8년차로 세계랭킹 10위인 김세영은 US여자오픈 우승을 목표로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 출전하지 않고 샷 다듬기에 돌입했다. 독기를 품고 US 여자오픈에 맞춰 컨디션 조절에 돌입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5승을 쓸어 담은 고진영에게는 왼쪽 팔 혈전증으로 투어 활동을 중단했던 세계 랭킹 2위 넬리 코르다가 3개월여 만에 투어에 복귀하는 게 큰 자극제가 될 전망이다. 부모님이 오래 전 미국에 들어가 뒷바라지를 열심히 해 준 덕분에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힘이 된 것은 물론이다.
고진영은 지금까지 5대 메이저 가운데 ANA 인스퍼레인션 챔피언십, 에비앙 챔피언십(이상 2019년) 두 개 대회에서만 정상에 올랐을 뿐이며, US여자오픈에서는 2020년 공동 2위가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LPGA투어를 호령하고 있는 고진영이지만 아직 US여자오픈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점도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빨간 바지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장타자 김세영은 2020년 11월 펠리컨 챔피언십 이후 승수를 쌓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 경기를 부활의 기회로 삼겠다는 각오가 남다르다. US여자오픈에만 나가면 좋은 경기를 펼친 기억이 있는 박인비가 컨디션 난조 탓으로 출전을 포기한 게 무엇보다도 아쉽다. 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태극낭자들 모두가 잠재적인 우승 후보임에는 틀림없다.
생활고 시달리는 국민에게 큰 빛 됐으면
지금 한국민은 IMF 때처럼은 아니지만 여전히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생활 물가와 기름값, 은행 금리 인상 등으로 국민의 삶은 빡빡하기가 그지 없다. 삶에 큰 즐거움이 없는 나날의 연속이다. 중소 상인이나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고통 속에서 여전히 신음 중이다.
US여자오픈 우승은 개인에게 크나큰 영광이겠지만 국민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 확실하다. 24년 전 큰 빛이 되었던 박세리의 ‘맨발 투혼’ 쾌거처럼 이번에도 태극 낭자들이 조국의 국민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태극 낭자들의 우승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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