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의 일상과 뗄 수 없는 ‘펍(Pub)’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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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안토니 디쉴드의 한국영국 두 나라 이야기

지역공동체 구심점이자 인간관계의 필수 매개체 역할
누군가 한턱 쏘면 나머지도 돌아가면서 내는 게 예의

이진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6-07 09:35:18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라고도 하는 영국의 ‘펍’은 앵글로 색슨인들이 로마인들의 아이디어를 이어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앵글로 색슨인들이 가정에서 맥주집을 개업하게 되고 이것이 차츰 지역 주민들이 만나 잡담도 하고 중요한 사항들을 논의하는 장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현재 펍은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이자 교제의 필수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는 영국의 대표적 문화가 되었다.

펍이 영국인들의 일상과 얼마나 밀접한지는 영국의 어느 지역이든 거리에 나서면 코너를 돌때마다 만나는 건물이 펍일 정도로 그 수가 많다는 점으로도 알 수 있다. 펍이 있는 건물은 대개 고풍스럽고 특이해 눈길을 한 번 더 주게 되지만 이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가게 팻말들이다. 그림을 새겨 넣든 두상을 그려 놓든 각각 개성을 살려 저마다 유일함을 자랑한다.

이름도 각양각색이어서 ‘붉은 사자 (Red Lion)’ ‘천사(Angel)’ ‘장미와 왕관(Rose and Crown)’ ‘왕의 머리(King's Head)’, 그리고 영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예루살렘으로의 여행(Trip to Jerusalem)’ 등 모두 고풍스러운 매력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한국의 교회들이 대부분 ‘금주’를 강조하는 까닭에 교회와 술집의 거리가 그리 가깝지 않은 데 비해 영국의 펍은 전통적으로 교회 맞은편에 위치한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The Swan’ 영국 서북, 그라스미어(Grasmere) 소재. [사진=필자 제공]

현재 펍은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이자 인간관계의 필수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는 영국의 대표적 문화가 되었다. 어떤 지역의 펍은 매주 ‘퀴즈의 밤’을 주최하거나 ‘재즈의 밤’ 행사를 열기도 하며, 중요한 축구경기가 있는 날엔 대형 화면을 설치하고 생중계를 방영하기도 한다.

영국 남자들에게 펍은 매우 특별한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 애호하는 ‘로컬(Local: 근처의 단골 펍’)이 있기 마련인데, 그곳 카운터에 자신들의 컵을 맡겨둘 정도다. 대부분의 펍은 테이블과 의자가 많지 않아 누구나 서 있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실내는 금연이라 문가에 서서 담배를 피울 것이다. 비좁은 공간에 모두 서서 주문하고 기다리고 마시는 덕분에 펍의 분위기는 옆에 있는 사람과 처음 만나는 사이일지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마련이다.

▲‘The Hole in the Wall’ 영국 동부, 스템포드(Stamford) 소재. 영화 ‘교만과 편견’ 등 촬영장소로 자주 등장하는 마을.

코로나 팬데믹이 펍문화에 끼친 영향

최근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영국에서도 활동제한조치가 시행되어 의사·간호원·수퍼마켓 종사자 등 일선에서 일하는 직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집에 머물러야 했을 때, 펍들도 당연히 휴업에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업종과 달리 펍 만이 가진 특수한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펍이 일정기간 이상 문을 닫을 경우 맥주(Beer)의 맛이 변해 내버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영국의 약 4만7000개의 펍에 있는 맥주의 양을 가늠해 본 결과, 거의 올림픽경기 규격의 수영장 16개 정도를 채울 수 있는 양이 하수구로 흘러갈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다행히 2020년 말에 활동제한 해제 논의가 시작됐고 음식을 제공하는 펍의 경우 문을 열고 술을 팔 수 있게 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는데, 이에 붙은 단서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 과연 ‘스코티쉬 에그(Scottish eggs: 삶은 달걀을 소시지와 빵가루 반죽으로 싸서 튀기거나 오븐에 구운 것)’이 식사 음식인가 간식인가 하는 문제였다. 만약 이것이 식사 음식으로 인정되면 원칙상 펍 문을 열 수 있게 되는 결정적인 요건 충족이 되는지라, 논의의 핫이슈로 떠오르는 해프닝이 벌어졌던 것이다.

영국 펍에서의 몇가지 팁

레스토랑을 겸한 고급 펍이 아닌 이상 카운터에 직접 가서 주문해야 한다. 영국에서 흔히 경험하듯이 ‘롱 큐(Long queue; 길게 늘어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줄)’의 일원이 되어 인내심을 갖고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이 “뭘로 드릴까요?(What can I get you? 혹은 What are you having?)”라고 물으면 주문을 하는데, 이때 “맥주 주세요(A beer, please)”라고 하는 건 너무 막연하다. 펍에서는 보통 술(Spirits)과 와인 몇 종류, 그리고 여러 종류의 맥주를 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맥주 종류에 대해 미리 공부해 두는 게 좋다. 아울러 맥주를 주문하면서 “하프(half, 절반)”라고 말하지 않으면 파인트(0.57리터)를 내준다는 것도 알아 두자.

영국 펍에서는 팁을 주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영국인들과 함께 펍에 가는 경우, 한 사람이 ‘Getting around in(그룹 중 한 사람이 그룹 전부에게 술을 사는 것)’을 제공하면 당신도 보답해야 하는 게 관례다. 그럴 땐 “다음은 내가 쏠게(It's my turn to get the next around in)”라고 말한다면 현지 문화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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