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남들 앞에서 칭찬 좀 하지 말라는 일본 젊은이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이혁재의 지구촌 IN & OUT

칭찬 받고 튀기보다는 평온·보통의 삶 희망
20년 후 일본인에게서 이질감 느꼈다면
그들에게 ‘보통 풍조’가 있음을 기억하길

이혁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6-07 09:27:06

요즘 일본에서 젊은이들의 ‘착한 아이 증후군’이 화제다. 선생님이 칭찬이라도 할라치면 “제발 남들 보는 앞에서 칭찬 좀 말라”며 울상 짓는다. 이해가 잘 안 되지만 분명한 건 이들 가운데서 20년 후 일본의 주력이 나올 것이란 사실이다.

‘착한 아이 증후군을 앓는 젊은이들’이란 저서에서 그런 흐름을 짚어 낸 가나마 다이스케(金間大介) 교수도, 요즘 젊은이 비슷하게 그리 ‘순리적인’ 사람은 아니다. ‘이과 지상주의’인 우리 흐름과는 반대로 자연과학에서 박사까지 딴 뒤 사회과학으로 전향했다.

착한 아이 증후군

저자 가나마는 착한 아이 증후군을 앓는 ‘환자 연령’이 대학생에서 20대 중반까지라고 했다. 중요한 건 이런 현상을 우습게 보기보단 자세히 봐야 한다는 점이다. 20여년 후에 이 증후군을 앓던 친구들이 일본의 주력이 됐을 때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착한 아이 증후군의 증상은 10여 가지가 넘는데 이중 중요한 몇 가지를 자세히 보자.

첫째 이 증후군 환자들은 대학의 ‘1교시’ 강의를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대학을 다닌 ‘라떼’ 중에는 1교시 수업을 싫어했던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강의를 들으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1교시 수업이란 이유만으로 수강률이 떨어지는 법은 없다. 저자가 가나자와(金澤)대학은 물론 도쿄대학에서도 강의하고 있기 때문에 맞는 말일 것이다.

학생들에게 ‘일찍 일어나야 하는 1교시 수업을 굳이 듣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그렇게 해야 하루를 보다 빨리, 보다 길게 사용할 수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건 모범답안일 뿐이다. 이른 아침에 대학을 찾을 정도로 그들에게 의욕이 넘치는 것도, 의식이 높은 것도 아니라고 대학교수 가나마는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탐문하고 다닌 결과 얻어낸 결론은 1교시 수업이 중요한 강의인데도 수강하지 않으면 교수는 물론 친구들도 “왜 X는 수강 안 할까”하며 자신을 화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존재가 눈에 띄어버리고, 주목받게 되고, 왠지 불안해져 버린다. 그럴 바에야 좀 힘들더라도 아침 일찍 일어나 수강하러 가는 길을 택한다. 그러면 하루가 편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전체의 부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1교시 수업일지라도 열심히 수강하게 되는 것이다.

성실하지만 열의는 없다

또다른 주요 특징도 익명성과 관련 있다. 요즘 젊은이는 교수가 칠판에 적은 걸 열심히 받아 적는다. “이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면 밑줄도 쫙 친다. 자리를 정해 주면 수업 때 그 지정석에만 앉는다. 그렇지만 이해 안 되는 게 있어도 질문하진 않는다. 강의 내용 중 틀린 게 있어도 지적하지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리액션이 없다. 이런 상황은 교수에게 몹시 공포스럽다.

하지만 익명성이 보장되면 활기를 띤다. 교수의 강의에 적극적으로 손을 들며 질문하는 모습까지 기대하긴 힘들지만, 활기 있는 분위기는 만들 수 있다. 비결은 익명성 보장. 그러면 참여도가 엄청 높아진다. 이런 식이다. 수업 시간에 강의 내용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 혹은 질문을 보내고 대답할 수 있는 스마트폰용 앱을 채택하면 수업 참여가 적극적으로 변한다. 강의실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학생들과 교수 간에 오가는 질문과 답변을 공개해도 좋다. 다만 ‘튀고 싶어 하지 않는’ 학생들의 익명성만은 철저히 지켜 줘야 한다.

칭찬은 압박이다

대중 속으로 숨으려는 일본 젊은이에게 칭찬은 ‘압박’이며 스트레스다. 질문도 많고 적극적이던 학생이 칭찬해 주는 순간 새침데기로 변해 입을 닫는다.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젊은이가 칭찬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실력도 없는데 칭찬을 들으면 앞으로 그 평가에 부응하기 위해 죽어라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칭찬 때문에 자신의 이미지가 ‘멋진 젊은이’로 굳어지는 걸 두려워한다. 칭찬은 압박일 뿐이다.”

그런 일본의 20대가 절실히 원하는 것은 안정과 보통이다. 안정은 꼬치꼬치 잔소리 안 하고, 상사나 선배가 눈알을 부라리지 않고, “자네는 꿈이 뭔가” 같은 말을 하는 라떼가 없는 ‘루틴’한 세상이다.

최대 소망은 평온과 보통

‘보통’을 바라는 젊은이들은 영업직 보다는 자리에 앉아 일하는 사무직, 가능하다면 공무원을 희망한다. 특별한 뭔가를 바라기보다는 평온하게 하루하루 보내는 상태를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보통이라 부른다. 그런 평온과 보통이 보장된 삶을 자신들이 얻어낼 수 있는 최상급 인생이라고 본다.

“정신차려라. 그건 평온한 보통의 삶이 아니다. 로또 정도는 당첨돼야 누릴 수 있는 최상류층의 삶이다”라고 호통치는 라떼들이 없기를 바란다. 더불어 남들 보는 데서 칭찬하는 라떼들도 없기를 바란다.

일본 젊은이들이 ‘이런 정도의 놈이었냐’며 자만심에 빠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며, 이런 수준의 일본 젊은이 중에서 20년 후 일본의 핵심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이 20년 후 일본의 정치인·경제인·교수·공무원·운동선수·사회활동가·노숙자 그리고 극히 평범한 일반인이 된다.

2022년 우리의 젊은이가 20년 후 일본의 핵심들과 만났을 때 혹시 그들의 발언과 생각에서 이해 안 되는 부분을 발견했다면, 그들의 바탕에 이런 보통과 안정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음을 떠올렸으면 한다.

이혁재 필진페이지 +